[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 - 김명환 안드레아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 (마지막 편)
9월 28일 (수요일 Day 7: Rubiaes – Tui)
방에 침대가 네개 밖에 없고 화장실도 딸려 있는 알베르게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 아침 6시경이 되니 모두 깨어 서로 조심하며 손전등을 켜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방의 불을 켰다.
아침 식사를 7시부터 제공한다고 해서 10분 전에 갔더니 벌써 한참 진행중이다. 들어가 보니 빵도 커피도 없다. 앉을 자리도 없고 완전 도떼기 시장이다. 주인은 어제 식사비 3유로를 받았는데 보이지도 않았고 준비를 해 놓은 것이 너무 부실하고 성의 없다. 주인과 연락을 하려고 어제 예약한 번호로 전화를 했다. 어제는 영어를 조금 할 줄아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오늘은 전혀 영어 소통이 되지 않았다. 작년 불란서 길에서는 한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오늘은 20km 를 걸어 스페인으로 넘어 간다. Minho 강을 사이로 포르투갈의 Valenca 와 스페인의 Tui 시가 위치해 있다. 날씨도 길도 어제처럼 상쾌했다. 내리막 길이 더 많다. 로마길 표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 걸로 보아 이 지역 카미노는 대부분 옛날 로마시대 길인 것 같다.
작년에 불란서 길을 걸으며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많이 보았던 Horreo 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포르투갈이지만 스페인과 같은 문화권인 것 같다. Horreo 는 쥐로부터 곡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곳간이다.
Valenca 는 스페인과 최접경에 위치한 도시답게 옛날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포르투갈은 12세기 독립 이후 항상 스페인의 위협을 받아왔는데 16세기 말부터 60년 이상을 스페인에 정복되었다가 영국의 도움으로 다시 독립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르투갈의 관광객이나 부동산 투자자 중에 영국 사람들이 많다. 성 안쪽에 관광지가 있어 좁은 성문으로 차들이 많이 다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다.
시내는 gift shop 과 레스토랑으로 가득 차 있다. AD 47년 Cladius 황제 때에 세웠다는 이정표를 찾아서 본 다음 가까이 있는 12세기에 지었다는 성당에 들렀다.
성당을 나와 Minho 강과 Tui 시가 보이는 성벽으로 갔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이어주는 다리가 보인다. 이제 저 다리를 건너면 스페인이 된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압록강에서 신의주와 단동을 잇는 다리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성벽에서 걸어 내려와 다리로 가는데 카미노 싼티아고의 마지막 포르투갈 Bar 라고 선전해 놓은 집이 보인다. 순례자들의 주목을 끌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다리 중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을 표시해 놓은 지점이 포토존이다. 우리도 기념사진을 찍고 스페인으로 넘어 갔다.
다리를 건너자 곧바로 오늘 묵을 Parador Tui 호텔이 나왔다. Parador 호텔은 스페인 정부에서 운영하는 4-5 성급 호텔 체인인데 옛날의 궁전이나 수도원등 역사적 건물을 개조해서 운영하고 있다. Martin Sheen 이 주연한 싼티아고 순례 영화 “The Way” 에 나오는 Leon 의 Parador 호텔은 불란서 길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이고 싼티아고의 Parador 호텔은 대성당과 함께 Obradoiro 광장을 공유하고 있다. 한번쯤은 Parador 에서 묵고 싶었지만 작년에는 혼자 이용하기에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곳은 가격도 괜찮고 두사람이 묵을 것을 생각해 예약을 했는데 숙박객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갈리시아 지방 영주의 저택을 개조한 이 호텔은 객실이 고풍이 나도록 꾸며져 있었다. 짐을 내려 놓고 1km 정도 떨어진 중심가로 나가 점심을 했다. 순례자 메뉴를 주문하니 빵, 쌘드위치 appetizer, 생선/고기 메인, 디저트, 커피가 나온다. 5.5 유로의 식사로는 상당히 좋은 가격이다. 점심 후 대성당으로 갔다. 입장료 4유로를 받고 오디오를 빌려 준다. 성으로 쓸 수 있게 지어진 대성당은 그 역사가 1120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당 내부도 인상적이었지만 정원도 특별하고, 특히 성당 바깥 정원에서 보는 Mino 강 주변 풍경이 평화로웠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와 빨래를 한 후 supermarket 에서 사온 와인과 치즈로 저녁을 대신했다. 오른쪽 발바닥에 물집이 생길 것 같아 반창고로 예방 조치를 했다.
9월 29일 (목요일 Day 8: Tui – Redondela)
오늘 예정 구간인 Tui 에서 Redondela 까지는 32km 가 넘는다. Redondela 까지 걷는 것을 목표로 하긴 했지만 힘들면 중간에서 숙소를 잡기로 했다. 긴 거리를 목표로 했으니 아침 일찍 출발하고 싶어서 7시에 프론트에 내려왔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 몇번 소리쳐 불러 봐도 응답이 없다. 멀리 주방에 인기척이 있어 그쪽으로 가서 불러 보니 그 안에서 프론트 직원이 나온다. 손님이 별로 없어 주방에 가서 노닥거린 모양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서 그럴까? 활기도 없고 손님도 많지 않은것 같고 종업원의 직업 의식도 의심이 간다.
호텔을 나오니 아직 어둡다. 이렇게 이른 출발은 처음이다. 어제 눈여겨 보아 두었던 café 에서 아침을 했다. 메뉴에 유기농 건강식이 많았고 실내 장식이나 분위기도 현대적이고 단순했다. 꼭 쌘프란시스코의 yuppie 지역에서 볼 수 있는 café 였다. 커피도 미국식으로 넉넉히 주었다.
포르투갈 길에서 카미노 수료증을 받기 위해 최소한으로 걸어야 하는 거리는 Tui 에서 싼티아고까지이다. 그래서인지 순례자 숫자가 현저히 많아졌다. 어쩌면 잠자리를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곳 스페인 사람들은 순례자들에게 상당히 친절하다. 길을 잘못 들거나 하면 자진해서 가르쳐 준다.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인사를 해도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든 포르투갈 사람들과는 대조적이다.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문화가 그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를 나오며 보니 이곳에도 한국의 정자 같은 것이 있었다. 용도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카미노는 숲속으로 흙을 밟고 갈 수 있는 기분 좋은 길이 많다. 작년에 걸은 불란서 길의 마지막 구간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양쪽 모두 갈리시아 지역이라 지형이 비슷한가 보다. 예전에는 카미노가 Porrino 시의 공장 지역을 지나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 외곽지대의 숲길로 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단지 새 길에는 아직 café 가 없어서 6km 이상을 걸으면서 쉴 곳이 없는 것이 불편했다. 원래의 길에 있는 비지네스가 타격을 많이 받는 모양인지 새로난 길로 들어가는 화살표를 지우고 원래의 길로 가도록 만들어 놓아 혼동이 되기도 했다.
새로난 길로 6km 이상을 걸은후 화장실도 들릴겸 점심을 먹기 위해 원래의 길을 다시 택해서 Porrino 중심가로 들어갔다. Porrino 는 인구 18,000 의 산업 도시로 화강암 생산을 많이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분홍색 화강암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곳의 이름난 건물인 Casa Consistorial 의 외부가 우아해 보였다.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점심을 먹고 서둘러 일어났다. 도심을 벗어나자 계속 옥수수 밭이 나온다. 까마귀가 옥수수를 잘 파먹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 보이는 허수아비 (scarecrow) 는 모두 옥수수 밭에 세워져 있다. 허수아비를 보면 가만히 서 있는 놈이 새를 쫓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다. 새를 쫓기 보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김새가 사람들 보기 즐거우라고 세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Horreo 도 많이 보인다. 새로 건축한 집에도 설치를 해 놓은 것을 보면 곡물을 저장하는 기능이라기보다는 전통을 지키는 장식용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Horreo 의 크기가 그집의 재산 크기를 나타냈다고 한다. 걸으면서 제일 큰 Horreo 를 보았다. 작년 불란서 길에서도 보지 못한 크기였다.
23km 를 걸어 알베르게가 있는 Mos 에 도착했는데 아직은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정대로 9.5km를 더 걸어 Redondela 까지 가기로 했다. 이곳부터는 235m 언덕을 넘어 계속 내리막 길로 Redondela 까지 가게 된다. 낮은 고도의 비행기를 자주 보게 되어 가까이 공항이 있는가 했더니 Vigo airport 이었다. Vigo 는 갈리시아 지역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도시이고 경제의 중심지이다. Camino Portugues 의 해안길이 Vigo 를 거친다. 내려오면서 보이는 Redondela 시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그림같이 평화롭다.
Redondela 를 5km 정도 남기고 싼티아고 까지 90.036km 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났다. 이곳 이정표는 1m 단위까지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싼티아고까지 100km 가 남았다는 상징적 의미가 큰 이정표는 보지 못했다. 작년 불란서 길에는 두곳이나 있어 양쪽에서 모두 사진을 찍었었는데 포르투갈 길은 그런 상징적 이정표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저녁 6시가 지나도록 계속 걸어 Redondela 에 도착했으니 오늘도 32km 이상을 걸은 셈이다. 작년 불란서 길에서는 한번도 못했던 32km (20 mile) 이상 걷기를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오는 도중에 예약한 아파트는 네 명이 잘 수 있도록 거실의 sofa bed 를 아예 잠자리로 만들어 놓았다. 오늘은 아주 편안히 잘 수 있겠다.
가이드 북에는 이곳의 Santiago 성당에서 매일 8시30분에 순례자 미사가 있다고 나와 있어 확인하러 찾아 갔다. 나이 든 몇사람이 묵주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미사는 없는것 같았다. 성당 입구 지붕에 세워 놓은 Santiago 상이 눈에 들어온다.
Supermarket에 들려 저녁거리와 와인 그리고 내일 아침 먹을것을 샀다. 오늘 저녁은 숙소에서 파스타와 샐러드를 해서 먹을 것이다. 수퍼와 숙소 사이에 아이들의 운동장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운동을 할 수 있고 놀이 기구도 다양하게 마련해 놓았다. 목요일 저녁인데도 마치 이 도시의 아이들이 모두 놀러 나온 것 같다. 무리지어 축구와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며 왁짜지껄 활기차게 놀고 있다. 옆의 간이 café 에서는 어른들이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앉아 있다. 아이와 어른 모두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9/30/16 (금요일 Day 9: Redondela – Pontevedra)
오늘은 20km 미만의 거리를 걸을 예정이라서 7시까지 잤다. 어제 사다 놓은 과일과 요구르트로 아침을 했다. 어젯밤은 아주 잘 잤는데도 베낭을 꾸리는데 피곤하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걷기 시작 하기전에 café 에 들려 커피와 pastry 를 먹고 나니 기운이 회복되었다.
오늘 카미노에는 150m정도 되는 언덕이 둘이 있다. 높이는 지난 며칠 동안 넘어온 언덕들보다 낮지만 경사가 급해 오히려 힘들었다. 첫째 언덕을 내려오니 노점이 보인다. 카미노에서 노점은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Café 가 없는 곳에서는 주로 음료와 음식을 팔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주로 기념품을 판다. 가끔 자기가 만든 기념품을 파는 사람도 있는데 이곳은 주로 상점에서 파는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Anne이 이 노점을 Instagram 에서 보았다고 한다. 주인이 젊은 여자인데 자리를 계속 옮겨가며 손님과 사진을 찍어 Instagram에 올린단다. 아닌게 아니라 주인의 차로 보이는 BMW가 옆에 세워져 있다. 노점에는 볼리비아에서 온 두 남자와 아이랜드에서 온 부부가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아일랜드 부부의 남편이 우리 모임이 UN 같다며 반기문은 나보고 하라고 해서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Redondela에서 출발해서 8km 정도를 걸으니 Arcade시가 나온다. Verdugo 강을 건너는 Ponte Sampaio는 묵직한 돌다리에 배인 오랜 연륜의 색조가 건너편 마을의 빨간 지붕과 대조되며 멋이 있었다. 이곳에서 지역 민병대가 나폴레온 군대를 대패시켰다고 한다. 그 승리를 기념하는 비가 다리 끝에 세워져 있었다.
카미노는 이제 주택가 언덕길을 따라 올라 가기 시작하는 데 길이 아주 가파르고 좁아서 차가 들어 갈 수 없는 길도 많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건강해야 할 것 같다. 이곳도 언덕에 지은 집들이 많은데 포르투갈과는 다른 것이 앞마당에서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현관으로 들어가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포르트갈 집들이 이곳보다는 더 깔끔이 단장되어 있고 정원도 더 잘 가꾸어져 있었던것 같다. 아직까지 카미노에서 똑같이 생긴 집들이 나란히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작년 불란서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집들이 나란히 있다는 것은 집 장사가 지은 집일 가능성이 큰데 미국에서는 아주 흔히 접하지만 카미노에서는 오늘 처음 보았다.
오늘 카미노에서는 순례자 구경꾼을 만났다. 아주 몫 좋은 곳에 자리잡고 앉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은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두번째 언덕을 넘어 내려가니 오늘의 목적지인 Pontevedra 로 내려 가는 카미노 길이 둘로 갈라진다. 교외 주택가를 걷는 것보다는 강변길이 좋다고 가이드 북이 추천을 하여 그 길을 택했더니 이 강은 개천 정도의 크기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강 (rio) 이나 산 (monte)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의 크기는 천차 만별이다. 폭이 몇백 미터가 되는 강이 있는 반면 개천 같은 곳도 강이라 부르며 200m 미만의 조그만 언덕도 산이라고 부른다.
Pontevedra 는 인구 82,000의 군 소재지 같은 곳이다. 순례자 광장 (Praza Peregrina)이 있고 그곳에 우아한 순례자 성당이 있다. 이곳 성당들은 모두 열려있고 기념 도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14세기에 지은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은 규모도 커 보이고 앞의 광장은 조경이 잘 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성모 발현 (Santuario da Aparacions) 소성당이 있다. Fatima 에서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목동중에서 제일 맏이인 Lucia가 수녀가 된 후 학생들을 가르치며 기거하던 곳을 소성당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다. 차분하게 꾸며 놓은 것이 보기 좋았다.
주말이어선지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성당들을 돌아 보고 있다. Basilica de Santa Maria 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곳인 것 같았는데 입구의 조각이 아주 정교했다.
시장기가 들어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tapas 집들을 가 보았는데 문을 연 집을 찾을 수 없었다. Café 부분은 열어 놓았지만 tapas 를 파는 레스토랑은 8시에 시작 한단다. 관광객이 상당한 것 같은데 일찍 음식을 파는 곳이 없는 것을 보니 관광객 대부분이 스페인 사람들이고 아직은 외국인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작년에 걸었던 불란서 길의 레스토랑 주인들 보다는 더 고집이 센 편인지도 모르겠다. 불란서 길에는 일찍 저녁 식사를 파는 레스토랑들이 상당히 있었다.
호텔에 들어와 샤워와 빨래를 한 후 9시가 넘은 후 나갔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인지 많은 사람들로 활기가 차 있었다. 원래 마음 먹은대로 tapas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특별 요리인 scallop(가리비)을 시키고 이틀후 지나게 될 Padron 지역에서 나오는 pepper도 시켰다. Padron pepper는 기름을 발라 구워서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하였는데 고추의 제맛이 잘 살아 있다. 대체로 순한 고추인데 가끔 아주 매운 고추가 섞여 있어 놀라게 만든다. 매운 고추를 잘 못 먹는 Anne에게 매운 것이 모두 걸려 드는 것이 재미있었다.
밤에 보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더 운치가 있다.
10월 1일 (토요일 Day 10: Pontevedera – Carracedo)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한 후 길에 나서니 8시30분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순례객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주말에만 걷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도시를 나오는 다리, Burgo Bridge에는 카미노 상징인 scallop 모양이 새겨져 있다. 로마 때 지었던 자리에 지금의 다리를 12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 길은 갈리시아 지방의 전형적인 시골 길이 많았다. 이미 사진으로 올렸던 것처럼 나무 숲 사이로 만들어진 길도 있었지만 옆으로 밭을 끼고 걷는 길이 더 많았다.
날씨가 상당히 쌀쌀한데 오후가 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8km 정도를 걷는 동안 café 가 없어 불편했다. 마침내 도달한 café는 차고에 만들어 놓은 곳이었는데 긴 거리를 쉴 곳과 화장실을 기다렸던 순례자들로 붐비었다. 몇가지 음료를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sandwich는 부엌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커피를 시켰는데 인스탄트를 타서 주는지 맛이 형편없다. 완전 자리 덕을 보고있는 것이다. 불란서 길과는 달리 포르투갈 길은 아직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미약한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Caldas de Reis 도착전 10km 지점부터는 카미노가 하이웨이를 따라 걷게 되어 있다. 어떤 곳은 길 옆을 따라 가다가 일부러 틀어서 시골길로 들어가게 한 후 다시 하이웨이로 나오게 만든 것이 억지가 심한 것 같다. 우리는 Caldas de Reis 까지 21km를 걸은 후 늦은 점심을 먹고 5km 를 더 걷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Carracedo 까지 가서 펜션에 묵을 수 있다. 가이드 북에 나오는 구간보다 조금 더 걸어서 이틀 후 싼티아고에 정오 미사 시간 전에 도착하기로 계획했다.
Caldas de Reis 는 온천이 유명하다고 한다. 중심가에 있는 성 토마스 성당앞에서 며칠전 Rubiaes 사설 알베르게에서 같이 묵은 캐나다 동양 여자와 영국에서 온 부부를 만났다. 이미 알베르게에 체크인 하고 빨래 등 해야할 일들을 마치고 구경 나온 것 같다. 반가이 인사를 하고 싼티아고에서 보자며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지는 못했다.
스페인에는 빵을 배달 받아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시골의 한적한 곳에까지 배달을 해 주는지 빵 배달통을 만들어 놓은 집이 상당히 많다. 배달통이 없으면 배달차가 그냥 대문에 걸어 놓는다. 빵이 주식이고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니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리라.
Carracedo 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우리가 묵을 펜션은 마을 중심에서 1km 떨어진 하이웨이 옆에 있었다. BBQ 레스토랑도 같이 하고 있는데 오늘은 문을 닫았다. 우리가 오늘 첫 숙박객인 것 같다. 마을 중심에 supermarket 이 있다 해서 가보니 캔디와 아이스크림 종류를 곁들여 팔고 있는 Bar 처럼 보였고 물 이외에는 살 것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오며 근처의 café 에 들러 sandwich를 주문해서 들고 왔다. 아직 저녁 생각이 없는데 7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 사다 놓는 수밖에 없다.
동네에 성당이 보여 혹시 토요일 저녁 미사가 있을까 하고 가 보았더니 폐쇄된 성당이다. 주일 미사는 내일 알아 보기로 하고 돌아와 sandwich로 저녁을 해결했다. 한가하게 앉아 싼티아고에서 묵을 곳과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을 예약했다.
10월 2일 (일요일 Day 11: Carracedo – A Picarana)
아침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빠진 물건 확인하려 Anne 이 침대 시트를 벗겨 보니 아래쪽에 붉은 점이 보였다. 빈대 흔적같아서 기분이 엉망이 된다. 어제 오후에 체크인 해서는 방이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식간에 더러워 보였다. 마음 변하는 것이 이렇게 순간이다. 빈대는 순례자들이 모두 두려워 한다. 어젯밤 자기 전에 보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이 근처에는 다른 숙소가 없다. 아마도 가지고 다니던 방충 처리된 침낭 라이너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엎지러진 물이니 그저 별일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숙소를 나와 옆에 있는 café 에 아침을 하러 갔다. 7시 30분인데 아직 한가하다. 어제 저녁에 눈 여겨둔 American Breakfast 를 시켰더니 베이컨은 기름 투성이고 쏘세지는 hot dog 용이다. 작년 불란서 길에서도 오랜만에 American Breakfast가 메뉴에 있어 시켰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그사이 잊고 있었다.
조금 앉아 있으니 Caldas de Reis 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곧 café 가 가득 찼다. 이곳은 Caldas 에서 5km 쯤 떨어진 첫번째 café 이어서 장소가 너무 좋다. 자리를 내주고 걷기 시작했다. 동네를 나오는데 이곳에도 한국의 정자 같은 것이 보인다.
오늘은 날씨가 더 쌀쌀하다. 2-3km 를 걸었는데도 추위가 풀리지 않아 비옷을 꺼내 입었다. 오늘 카미노는 잘 자란 나무 가운데로 난 운치 있는 길들이 많다. 걷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작년 불란서 길의 갈리시아 지역이 생각났다. 그때도 걷는 맛이 정말 좋았다.
여기도 밤나무가 많다. 어떤 곳은 가로수처럼 서 있는데 길에 떨어진 밤송이를 까니 잘익은 커다란 밤이 보인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밤을 주으러 나온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오늘 카미노의 가장 큰 도시인 Padron 에 들어서는데 길가와 공터에 자동차들이 빽빽이 주차되어 있다. 무슨 행사가 있나 했더니 일요일마다 열리는 시장 때문이었다. 잡화, 야채, 과일, 생선, 빵을 파는 노점들이 난전으로 들어서 있다.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문어와 BBQ 갈비를 파는 간이 음식점과 추로스 (churros)를 즉석에서 만들어 파는 포장마차도 여럿 있다. 미사를 보고 와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Website에서 12시30분에 미사를 한다는 Santiago 성당에 갔으나 미사가 없다고 한다. 다리 건너 카르멜 수도원 성당에 미사가 있다고 하여 서둘러 가보니 이미 미사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12시에 시작한 모양이다. 그래도 성찬의 전례는 참례할 수 있었다. 성모 마리아 공경이 상당하여 성당 곳곳에 마리아 상이 여럿 있는데 특히 제대 오른쪽에 위치한 두 성모상은 꽃과 촟불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중 낮은곳에 위치한 마리아상 앞에는 기도문이 적힌 카드가 놓여 있는데 그것을 집어서 마리아 상에 비비고 나서 가져 간다. 그 마리아상에 지폐가 붙어 있어 마음이 불편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제물을 거래하는 상인들을 혼낸 예수님이 이 광경을 보면 무어라 하실까.
성당 아래에는 카르멜 분수 (Fuente del Carmen) 가 있다. 16세기에 만들어졌는데 Santiago (야고보 성인)가 처음 이베리아 반도에 와서 선교할 때 이교도 여왕 Lupa를 개종 시키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미사후 시장으로 다시 와서 문어와 BBQ 갈비로 점심을 했다. 갈비를 어떻게 주문할지를 몰라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 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몸통의 갈비뼈를 만져 주었더니 소통이 된다. 와인은 사발에 담아 준다.
디저트로 즉석에서 튀긴 추로스를 포장 마차에서 사 먹었는데 알맞게 방금 튀긴 추로스의 맛과 질감이 기가 막혔다.
점심후 Santiago 가 처음 선교를 시작했다는 Monte Santiaguino로 올라갔다. 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공원이 나오는데 그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기념 십자가가 서 있는데 안내판이 없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이 언덕에서 Santiago 가 이방인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했단다. 순례의 도착지인 싼티아고시가 성인의 죽음과 묻힘을 상징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성인의 삶과 활동을 상징하는 곳이다.
Padron 을 떠나 조금 걸으니 싼티아고가 19.59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넘어질 듯이 서 있다. 이제 20km 도 남지 않았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걷고 쉬면서 오늘 묵을 곳인 A Picarana에 숙소를 예약했다. 싼티아고에서 15km 떨어진 그곳에서 출발하면 내일 정오 미사에 맞춰 싼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3km 만 더 걸으면 숙소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꽤 큰 성당이 있는데 그 앞에 추로스 노점이 서넛 있고 봉헌초를 파는 곳도 있다. 봉헌초는 Fatima 에서 파는 것과 같은 종류로 신체 부위를 만든 것도 있었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성당이 열려 있어 들어가려는데 마침 장례미사를 끝내고 관이 나오고 있었다. 관은 영구차로 향하고 하객이 그 뒤를 따른다. 성당에서 잠깐 시간을 보내고 나와 카미노로 접어드니 그 장례 행렬이 앞에 가고 있다. 묘지는 성당에서 한 1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카미노에서 본 묘지들은 대부분 성당옆에 있거나 가까이 있다. 납골당처럼 생긴 것도 있는데 보관하는 곳이 상당히 커서 무엇이 다른 것일까 생각하곤 했다. 오늘 아침 걸으며 알게된 바로는 이런 곳은 화장한 재를 모시는 곳이 아니라 관을 그대로 모시는 곳이었다. 카톨릭 교회가 화장을 허용하고 있지만 (재를 뿌리거나 나누어 보관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아직 스페인에서는 문화적으로 잘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오후가 되면서 Anne이 종아리부터 시작해서 여기 저기가 가렵다고 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젯밤에 빈대에 물렸는지 아니면 음식이나 빨래한 세제에 알러지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싼티아고에 들어가면 우선 옷들을 기계 세탁하고 집에 돌아가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모든 장비와 옷, 신발을 검정 garbage bag 에 넣은 다음 잘 묶어서 밖에 며칠간 놓아 둘 것이다. 빈대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혹시라도 묻어 온 놈들이 모두 죽는단다.
6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이 펜션을 운영하는 주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café 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스페인 집밥 스타일인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잘 먹었다. 숙소로 돌아오며 보니 café 와 폔션 사이에 있는 건물이 스트립 쇼를 하는 곳이다. 카미노를 걸으며 처음 보는 성인 엔터테인먼트 영업 장소다. 건물 앞쪽에는 빨간 차 한대만 주차해 있었다. 뒷쪽에는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10월 3일 (일요일 Day 12: A Picarana – 싼티아고)
7시 조금 넘어 길에 나서니 아직 깜깜하다. 출발하여 조금 걷자 예상치 않게 café 가 나왔다. 가이드 북에서도 보지 못했고 app에도 나와 있지 않은 카페였다. 들어가 아침을 주문하니 빵 배달이 아직 되지 않아 커피와 corn bread 를 주었다. 커피 양도 많고 큼직한 corn bread는 너무 달지도 않고 부드러워서 맛이 있었다.
South Africa 여자 둘이 들어와서 아침을 먹으며 우리에게 하이웨이를 따라가는 원래의 도로로 갈 것인지 아니면 도로에서 벗어난 다른 길로 걸어 갈 계획인지 물어본다. 다른 길은 깜깜해서 표시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아 원래의 도로를 택할거라고 했다. 처음 1 km 이상은 말 그대로 도로 위를 걸었다. 다니는 차가 많아 위험해서 손전등을 깜빡이로 켜놓고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조그만 불빛 둘이 보인다. 그 여자들도 역시 이쪽으로 오는 것 같다.
하이웨이 도로길을 벗어나니 동이 트기 시작한다. 날씨가 추워 처음으로 다운자켓을 입고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싼티아고까지 이제 10km 도 안된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싼티아고를 6km 남긴 곳에서 휴식을 가졌다. 공공 건물의 카페테리아인데 가이드 북에는 없는 곳이니 app 덕을 본 셈이다. 남은 거리를 감안해서 도착 시간이 넉넉할 정도로 쉬고 출발했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직은 싼티아고 교외 지역에 들어서지 못했는지 밭이 많다. 허수아비도 여기 저기 보였는데 글래머 허수어미(?) 가 재미있었다.
꼬불 꼬불한 동네길을 걸어 돌아와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카미노 방향이 정반대인 두개의 이정표가 나란히 서 있다. 가이드 북을 꺼내 보아도 도움이 되지 않아 마침 그곳에서 전화하고 있는 사람을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물어 보았다. 둘 다 카미노가 맞으며 한쪽은 시내를 걷는 길이고 다른쪽은 외곽지대가 계속되는 길이란다. 시내길이 짧다고 하여 그쪽을 택했다.
우리가 쓰는 포르투갈 길 app에 의하면 이 시내길이 싼티아고 교외중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라고 한다. 작년 불란서 길에서 걸어 들어 오던 교외와는 확실히 다르게 윤택해 보였다. 도시에 들어 와서도 한참을 걸은 다음 대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는데 경비원이 (물론 영어는 못한다) 배낭을 지고는 성당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건너편 상점을 가르키며 배낭을 맡기라고 한다. 그곳은 배낭 하나에 2.5유로를 받고 맡아 주고 있었다. 둘이 서둘러 배낭을 맡기고 돌아오니 바로 그 경비원이 시간이 늦었다고 못 들어가게 한다. 황당했다. 네가 배낭 맡기라고 해서 그러고 오는 길이라고 했지만 소통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면 알면서도 뻔뻔하게 모르는 척하는지도 모르겠다. 할 수 없이 배낭 맡긴 집으로 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refund를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물론 No 다. 이렇게 되면 돈의 액수에 관계없이 기분이 엉망되기 쉽다. 하지만 빨리 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소한 일에 지배당하게 된다. 우선 대성당 앞 광장으로 가서 도착 기념 사진을 찍고 서로 축하했다.
내가 정오 미사에 참례하고 싶었던 큰 이유는 향로 예식 (Botafumeilo)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이 있어서였다. 대성당에서는 금요일 저녁 미사에 꼭 향로 예식을 하기 때문에 금요일에 도착한 작년에는 문제가 없었다. 작년 미사 때 누군가에게서 다른 요일에는 정오 미사에 향로 예식이 있다고 들었기에 싼티아고 도착 예정 며칠전 확인을 해보려고 대성당 website 에 들어가 보았었다. 그러나 향로 예식 스케쥴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Tourism Office 에 들렀을 때 알아보니 금요일 저녁 이외에는 정해진 스케줄이 없고 누군가 봉헌을 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미사 시간에 (12시 또는 7시 30분) 거행한단다. 후에 대성당 website 에서 공식 스케줄을 찾을 수 있었는데 금요일 저녁 미사와 전례상 중요한 축일 미사에 (년중 12일) 거행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외에는 요청이 있을 때 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호텔로 가는 길에 있는 self laundry 에 들러 옷, 내의, 양말 등 빨래 거리의 반을 우선 세탁했다. 주인이 친절하고 영어를 잘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데 SNS 를 통해 많이 알려져 손님이 많았다. 호텔에 첵크인한 후 가려운데 바르는 약을 사고 빨래도 찾아 왔다. Anne은 여기 저기가 가려운 모양이다. 찾아온 옷으로 모두 갈아입고 나머지도 빨래를 마쳤다.
카미노 수료증을 받으러 가보니 줄이 너무 길어 7시30분 미사에 늦을 것 같았다. 내일 다시 오기로 했다. 순례자 수가 많아져서인지 사무실이 작년보다 더 큰 장소로 옮겨져 있었다.
대성당으로 와서 우선 Santiago (야고보 성인) 성상과 무덤이 있는 곳을 들렀다. 작년과는 달리 성당 밖에서 지정된 문으로 들어와 성상과 무덤을 보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이 문이 희년 (Jubilee Year) 에만 열리는 East Gate 이었다. 금년은 Santiago의 희년은 아니다. Santiago 성인의 축일은 7월 25일인데 그날이 일요일이면 그 해가 희년이 된다. 2010년이 희년이었고 다음 희년은 2021년이다. 그러나 금년은 교황이 희년으로 선포한 “자비의 해 (Year of Mercy)” 이기 때문에 East Gate을 열어놓은 것 같다. 우선 제대 뒤에 높이 있는 성상으로 올라가 뒤에서 안고 염원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지하에 있는 무덤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다시 기도했다.
미사 시간에 넉넉히 여유를 두고 가서 자리잡았다. 혹시 향로 의식을 하게 되면 제일 보기 좋을 자리를 골랐다. 그곳은 제대를 정면으로 바라 보는 자리가 아니라 제대를 향해 왼쪽 측면에 위치한 긴 의자의 제일 앞 오른쪽 자리이다. 향로가 제대 좌우로 움직이고, 향로 의식 준비와 마무리를 제대 왼쪽에서 하기 때문이다.
오늘 미사에 참석한 사람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작년 금요일 저녁 미사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되는 것 같다. 영성체가 끝나니 향로 예식을 행하는 사람들이 (Tiraboleiros) 나와서 예식을 시작한다. 완전 VIP 석에 앉아 참관하게된 행운에 감사했다. 사진과 비데오를 금지 한다고 했는데도 여기 저기서 cell phone과 카메라를 꺼내 찍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고지식하게 안 된다고 하던 Anne도 조금 지나자 원하면 찍으라고 허락해 준다. (동영상 https://youtu.be/g_-1AJgqhmQ )
미사후 대성당 근처 seafood 레스토랑에서 이 지역 특산인 razor clam 과 꼬막 비슷하게 생긴 cockle clam 그리고 Padron pepper 로 저녁을 했다. 마침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던 불란서에서 온 60대 부부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동차로 여행을 한다는 그들과 서로 대조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며 여행담을 나누었다. 작년에 자신들이 했던 한국 여행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부부는 Bordeaux 근처에 산다고 하여 내가 그곳에 출장 갔을 때의 좋은 기억과 추억도 나눌 수 있었다. 음식도 좋고 대화도 좋은 유쾌한 저녁 식사였다. 오늘은 점심도 오랫만에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국수를 잘 삶고 pesto 소스가 상큼해서 맛있게 먹었었다.
10월 4일 (화요일 Day 12 + 1: Santiago)
호텔에서 아침을 먹자마자 수료증을 발급 받으러 가니 어제보다는 줄이 많이 짧았지만 그래도 4-50 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금년 9월에 발급된 수료증이 40,000을 넘는다고 하니 하루에 1,300개 이상 발급되는 셈이다. 기다리는 동안 Chicago 에서 온 내 또래 남자와 이야기가 시작됐다. Seville 에서부터 걸었다는데 그 길도 잠자리와 식사하는데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한다.
수료증을 발급 받은 다음에 시장을 보러 갔다. 인구 100,000 인 싼티아고에서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매일 열리는 이 시장은 시간이 일러서인지 아직 한산했다. 야채, 생선, bakery 가게들이 있었고 적어도 관광 기념품 상점은 없는 것이 지역 주민을 위한 시장다웠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상인들에게 커피를 배달하는 서비스가 눈에 띄었다. 커피에 케익 한 조각을 곁들여 배달하는데 종이컵에 배달하는 집도 있고 정식 컵에 배달하는 집도 보였다. 커피 대신에 밥과 찌개를 배달하는 한국 시장 풍경이 떠올라 아주 낯익은 친근감이 있었다.
대성당으로 가서 museum ticket 과 roof tour ticket을 샀다. Roof tour 는 오후 1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사이 museum 과 대성당을 오디오를 들으며 돌아 보았다. 대성당은 작년에 비해 수리하는 부분이 더 커진 것 같았다. 제대 뒤에도 지붕도 수리용 받침대들이 세워져 있었다.
Museum 이나 대성당은 작년에도 오디오를 들으며 돌아 보았는데 모두 새로 듣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다음 번에 와도 마찬가지로 새로울 것 같다. 작년에 보지 못한 전시관이 있어 그것도 돌아 보았다. 성모님 상이 아주 많았다.
Roof tour는 작년과는 다른 가이드여서 보는 곳과 관점이 달라 중복되는 점이 적어서 좋았다. 특히 대성당을 지은 건축가 마에스트로 마테오 석상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었다. 예전에는 순례자들이 그의 천재적 예술가 기를 받으려고 성당에 들어오면 우선 마테오 석상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맞대었다고 한다. 지금은 석상 보존을 위해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2층에서 보는 성당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2층에는 뒤쪽으로 성가대 자리가 있고 옆으로 난간이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서 순례자들이 잠을 잤다고 한다. 당연히 냄새가 많이 났고 향로의식은 이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싼티아고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다. 전체 인구 100,000 중 대학생이 30,000 이고 대학 본부가 대성당과 가까이 있었다. 작년에 보았던 베네딕토 봉쇄 수녀원은 여전히 38명의 수녀가 수도하고 있다고 한다. 종지기 가족이 기거하던 곳, 순례자가 입고 온 옷을 불태우던 곳, 옛날에는 굴뚝 크기가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 임금을 못 받은 석공이 주교의 엉덩이를 조각해 놓았다는 이야기등을 작년과 마찬가지로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죄인들이 싼티아고 순례를 마치면 죄를 사면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죄인들은 용서의 문인 North Gate으로 들어와 South Gate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South Gate에는 알파 (시작) 와 오메가 (끝) 글자를 순서를 바꾸어 오메가와 알파로 써 놓았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기 위해서란다.
Roof tour 를 마치고 대성당 옆에 있는 순례자 museum으로 갔다. 모든 종교에 존재하는 순례 관습에 관해 사진을 곁들여 설명해 놓았고 기독교 순례 시작의 배경, 3대 성지 (예루살렘, 로마, 싼티아고), 싼티아고 순례의 시작과 역사등을 상당히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보여 주고 있었다. 선사시대에 이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에서 순례를 했다는 흔적이 있고 힌두교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집단 순례가 행해졌다고 한다. 기독교의 순례 전통은 유대교에서 유래되었고 예수님의 행적지와 사도들과 순교자의 유해가 있는 곳이 주요 순례지가 되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되면서 순례는 더욱 활발해졌지만 16세기에는 당시의 순례 행태에 대해 종교 개혁파와 가톨릭 내부에서 심한 비판이 일어 났다고 한다. 어쩌면 이 비판이 순례 전통을 쇠퇴하게 만든 큰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Museum 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가 쉬었다. 오늘 보려고 계획했던 곳 가운데 Galicia Museum 이 남아 있었는데 이곳은 쉬고 나서 시간이 되면 보고 그럴수 없으면 건너 뛰어도 될 것 같다. 샤워하고 foam roller stretching 을 한참 한후 facebook 에 포르투갈 길의 스페인 부분을 올렸다. 여유있게 쉬고 있으니 다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녁은 구글에서 찾은 아주 fancy한 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했다.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가서인지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지역 음식을 한번 더 맛보려고 문어, scallop, Pedron Pepper 를 시켰는데 모두 훌륭했다. 디저트 중의 하나가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맛이 있었다.
스페인이나 포루투갈에서는 대부분의 café 와 레스토랑이 decaf coffee를 원두로 갈아 제공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는데 그사이 많이 바뀐 덕분에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10월 5일 (수요일 Day 12 + 2: Santiago – Madrid – Paris)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다. 여행이 즐거운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호텔에서 기차역은 상당히 가까웠다. Online 으로 사 놓은 스페인 국영 철도 (Renfe) 표를 역에서 프린트했다. 9시 40분에 출발해서 한 정거장 간 후 갈아타면 마드리드에 3시 15분에 도착한다.
싼티아고에서 마드리드까지 기차는 대부분 높은 지대를 달려서인지 창밖으로 밭이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차표에는 마드리드 시내나 공항으로 가는 표가 포함이 되어 있다. 마드리드 기차역에 도착한 후 Renfe Customer Service 에 가서 SOL 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받았다. SOL 역에 내리면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시내에서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SOL 역의 안내소에 들려 나중에 공항 가는 차편을 알아보니 metro 를 두번 갈아 타라고 알려 준다. 1시간 정도 걸리고 5유로가 든다고 한다. Anne 이 알아본 구글에는 기차와 metro 를 섞어 타도록 추천되어 있는데 시간과 요금이 많이 단축되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마 이 역의 안내소는 metro 에서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우선 Mercado Miguel로 갔다. 2014년에 가족들과 왔을 때 좋았던 기억때문에 작년에도 비행기 탈 때까지 잠깐 있는 시간에 들렀고 오늘도 가고 있다. 추억이 담긴 콩 스낵을 사고, 올리브와 오징어, 멸치, 새우튀김 셋트를 와인 안주로 했다. 가격이 작년보다도 많이 비싸진 것 같다. 올 때마다 달라진 모습을 본다. Mercado 를 나와 추로스가 유명하다는 bakery에 들렀다. 맛있었지만 Padron 의 시장에서 먹은 것에는 못 미쳤다.
가족 여행때 아침을 먹었던 pastry shop, La Mallorquina 에서 몇가지 선물을 사고 SOL 역으로 다시 돌아 왔다. 공항가는 표를 사려고 machine 앞에서 궁리를 하고 있는데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어디로 가냐고 영어로 묻는다. 공항에 가려고 한다니까 표를 사는 시범을 보여 준다. 그대로 따라서 표를 사고나니 1유로만 줄 수 있냐고 한다. 물론이라고 주었다. 부탁하는 얼굴에 힘들어 하는 기색이 보인다.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여기도 심각함을 새삼 경험했다.
기차는 Terminal 4 에 도착하고 우리가 탈 Easyjet 는 Terminal 1 에서 떠나기로 되어 있다. 두 터미날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Shuttle Bus 를 타고 한참을 간다. 공항에 전화기를 충전할 곳이 별로 없어 한참을 찾아 헤맸다. 비행기표, 파리 호텔 예약, 호텔가는 셔틀 버스 정보 등이 모두 전화기에 있으니 battery 가 나가면 난처해진다. 최후의 수단으로 화장실에서 충전하려고 가다가 마침 빈 곳을 찾을 수 있었다. 50%만 충전하고 비행기에서 먹을 sandwich 를 사서 탑승했다. Easyjet 는 물도 그냥 주지 않는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security check을 할 때 혹시나 싶어 스틱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통과가 되지 않아 그냥 그곳에 버렸다.
파리 공항의 호텔에 들어와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으니 12시 반이다. 내일은 아침 6시 30분 셔틀로 공항으로 나가기로 했다.
10월 6일 (목요일 Day 12 + 3: Paris – San Francisco)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나보다. 5시 30분이 되니 저절로 잠이 깨어져서 예정대로 6시 30분 셔틀로 호텔을 떠났다. United Airline 이 떠나는 터미날까지 mono rail 을 타고 와서 출국 수속까지 다 마쳤는데도 7시 30분이다. 출발까지 아직 2시간 반이나 시간이 있다. United Airline lounge pass 를 쓸 수 있을까 하고 Star Alliance lounge 에 가서 알아 보았다. Pass 는 쓸 수 없지만 굳이 쓸 필요가 없다며 first class lounge 로 안내한다. 우리가 직원 가족이라 first class 에 standby 신청한 것을 혼동한 모양이다. 여하튼 덕분에 편히 쉬며 아침 식사를 했다. 컵라면이 있는데 신라면과 진라면이 있어 반가웠다. 아시아나 항공이 Star Alliance에 속해서 그런 모양이다. 해가 뜨는 시간의 공항의 모습은 조금 있으면 바빠질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이번 카미노를 통해 나와 Anne 이 오랜 시간 장거리를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큰 기쁨이다. 특히 하루에 32km (20 mile) 이상을 두번이나 걸은 것은 꽤 흐뭇하고 만족스러운 일이다. 작년 나의 카미노에서는 한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거리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계획한대로 차고에 들어가 집에 있는 옷으로 모두 갈아 입었다. 혹시나 카미노에서 따라 왔을 수도 있는 빈대에 대비해 약만 빼고 카미노에 가져갔던 모든 것을 검정 garbage bag 에 집어 넣었다. 이제 밖에서 한 일주일쯤 햇볕에 익힐 것이다. 역시 집에 돌아오니 좋다.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 - 김명환 안드레아
- 1458 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