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김명환 안드레아
Camino Portuguese 김명환 안드레아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2015년 봄에 싼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을 걸었다. 한 석달쯤 지나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걸은 프랑스 길 (Camino France)을 다시 걷기보다는 북쪽 길 (Camino Norte)이나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에 흥미를 느꼈다. 가이드북을 사서 읽어보고 인터넷에서 그곳을 걷고 있거나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 보았다. 그리고는 포르투갈 길로 결정했다. 새로운 나라를 경험할 수 있고 Port에서 시작하면 거리도 (242km) 적당했다. 시기는 2016년 봄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싼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순례를 시도하는것 같다. 동호회 페이스북을 보면 다시 걸을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두 세번이상 걸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고생한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이 더 많이 남아 있는가 보다.
그런데 순례를 마친 그해 가을 한국에 나갔을 때 설악산, 북한산과 서울시 둘레길, 성곽길을 여기 저기 다니며 즐겼는데 다리와 무릎을 과용한 모양이었다. 무릎이 아프고 허벅지가 땅겨 매일 저녁 식사후 걷던 3km 정도의 산책도 할 수 없었다. 수영장에서 다리운동을 하고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으며 약간 나아졌지만 봄이 되었는데도 아직 집앞 산책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Gym에서 만난 트레이너가 Foam Roller를 이용한 스트레칭과 무릎을 튼튼하게 만드는 몇가지 운동을 가르쳐 주었다. 그 스트레칭은 나에게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Foam Roller를 집에 비치해 놓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편리하고 여행용도 있어 어디든 갖고 다니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7월쯤 되니 많이 회복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걷는 것이 부상을 악화 시키지 않고 회복에 도움이 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통증을 느끼더라도 회복되는 과정이라고 믿게 되었다.
8월부터 카미노를 염두에 두고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에 15km 이상을 며칠동안 연달아 걸어 보고 무릎과 다리를 조심해서 살펴 봤는데 모두 잘 버텨주었다. 연습 하이킹에 몇번 따라 나선 딸아이가 (Anne) 자기도 카미노를 걷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시작해서 스페인의 싼티아고까지이며 전 구간이 614km 이다. John Brierley의 가이드북은 이 구간을 23일에 나누어 걷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포르투갈의 Porto나 (242 km) 스페인의 Tui에서 (117km) 시작한다. 카미노를 걸었다는 수료증은 Tui 부터 걷기 시작해서 싼티아고에 도착하면 받을 수 있다. 포르투갈 길은 카미노 싼티아고 가운데 두번째로 순례자가 많은 길이지만 전체 수료증 발급의 13% 정도이니 70% 이상을 차지하는 프랑스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이 한가한 편이다.
우리는 리스본에서 Porto까지의 여정은 버스로 움직이고 Porto부터 걷기로 했다. Porto까지는 옆지기도 동행해서 Lisbon에서 3박, Fatima와 Tomar에서 각각 1박, Porto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9/14/16 (수요일 Day -8: San Francisco - Paris )
파리행 비행기가 오후 2시 50분 출발이어서 집 안팎으로 챙길 것들을 여유있게 다 돌아보고 10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나무에 물을 더 효율적으로 주기위해 며칠전에 새로 설치한 drip system이 시간 조절이 잘 안 되어 어제까지 씨름했었는데 아침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인다. 집을 비우고 떠날 때는 항상 불안하다. 일단 떠나고 나면 잊어 버리는데.
공항으로 가면서 walking stick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나는 스틱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언덕을 오르고 내릴 때는 체력 소모도 줄여주고 균형을 유지해 주어서 넘어지는 것도 방지해준다. 그런데 가져 가는 것이 문제다. 비행기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으면 제일 간단한데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각 나라 공항의 경비 담당자에 따라 다를 수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 일단은 체크인 화물로 부칠 준비를 했지만 그러면 파리 공항에 도착후 찾아서 리스본으로 가는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에 다시 부쳐야한다. 저가 항공사는 대부분 $30 - $40 정도의 요금을 부과한다. 비용도 들고 상당히 번거롭다. 카미노를 끝내고 올 때도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작년에 프랑스 길을 마친 다음에는 싼티아고에서 우편으로 부쳤는데 포장하고 부치는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내린 결론은 그곳에서 싼것을 사서 쓰다가 버리고 오는 것으로 했다.
9/15/16 (목요일 Day -7: Paris - Lisbon)
비행기에서 잠을 3 시간 이상 자고 나니 기분이 좋다. 비행기는 정시에 샤르 드골 (CDG) 공항에 도착했다. 리스본으로 가는 Portugal Airlines (TAP)은 파리 시내 건너편 OLY 공항에서 출발한다. 그곳으로 가려면 기차로 한시간 이상을 달려 Anthony 역에 내린 다음 OLY 공항으로 가는 Tram을 타고 6분 정도 가면 된다. 기차 요금이 10유로이고 Tram 요금이 9.3 유로이다. 공항과 관련되면 모두 비싸진다.
OLY 공항은 규모가 작지만 깨끗하고 편리했다.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TAP 카운터는 운영이나 시스템이 느리고 낡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카운터 직원 역시 바쁠것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기내 서비스는 훌륭했다. 승무원들은 친절하고 한시간 반 정도의 짧은 비행시간인데도 쌘드위치와 와인 써비스를 했는데 수준급이었다. 리스본 공항은 시설이 빈약한지 아니면 수리중인지 터미날 게이트에 비행기를 대지 않고 외곽에서 트랩을 내려와 버스로 이동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비행기들이 그런것 같았다.
우선 공항안에 있는 Vodafone 판매소에 들려 전화 sim card를 사서 갈아 끼웠다. 1G data와 5유로 가치의 전화를 할 수 있는 카드가 15유로였다. 작년에 스페인에서 샀던 Vodafone 카드에 비하면 상당히 조건이 나쁜편이다. 같은 회사라도 나라마다 많이 차이가 난다.
나는 외국의 큰 도시를 여행하기 전에는 그 도시에 관한 Wikitravel 기사를 읽어 본다. 볼 곳, 할 것, 먹을 것(곳) 등 이외에 조심할 것(곳) 등을 상당히 정확하게 알려 준다. 리스본 공항에서는 택시 운전기사가 바가지를 잘 씌운다는 경고가 있었다. 밤 9시가 되었고 일행도 셋이니 택시를 타면 편하겠는데 망서려졌다. 공항 안내소에 물어보니 역시 그렇다고 한다. 솔직하게 알려 주어 고마웠다. Metro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그래도 공항이 도심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호텔방에 짐을 두고 곧바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구글에서 찾은 곳을 가보니 30분후에 문을 닫는다며 새 손님을 받을 수 없단다. 그 근처를 살피다가 포르투갈 음식을 한다는 레스토랑이 있어 들어갔다. 길에 호객하는 종업원이 나와 있고 들어가니 여러명의 종업원이 맞아주어 관광객 상대의 식당같아 잘못 선택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래도 모두 인상이 좋아 보였다. Vegetable soup과 문어 구이를 주문했는데 soup도 구수했지만 큼직한 다리를 연하게 제 맛을 살린 문어 구이는 아주 훌륭했다. 특히 곁들여 나온 감자는 알맞게 잘 익어 맛과 식감이 모두 좋았다. 이 집에서는 Fado를 했다. 처음에는 다른 손님이 없어 우리만을 위해 노래하는 것이 약간 불편했는데 로칼들이 2-3명씩 들어와 앉기 시작하고 주방의 chef도 나와서 같이 들으며 꽤 좋은 목청으로 따라 부르기도 하니 분위기가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얼마후 열명이 넘는 단체가 들어와 자리잡으니 우리 가족 셋만 있을때 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물론 가수들도 노래할 맛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50대 남자 2명이 반주를 하고 여자 가수 둘과 남자 가수 둘이 번갈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가수들 모두 정말 진지하게 노래에 빠져 있었다. 아주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 모습과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선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슬프고 한이 맺힌듯한 노래도 있고, 경쾌하고 밝은 느낌의 노래도 있다. 창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정서적으로 코드가 맞는 음악이었다. 빠져들어 즐길 수 있었다.
9/16/16 (금요일 Day -6: Lisbon)
어제 알러지 약을 먹고 자서인지 아침 8시까지 한번만 깨고 푹 잤다. 가족들이 곤하게 자고 있어 조용히 나와 호텔근처를 둘러보았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Café들은 간단히 아침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런데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담배 연기를 피하기 힘들다. 내가 다녀본 어느 도시보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실외에서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한 규제가 아직은 없는 모양이다. 호텔에 돌아와 슈퍼마켓을 알아보고 물을 사왔다. 5리터 물 한병에 0.45유로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게 싸다. 어제 저녁 식사도 질이나 양, 써비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고 생각했는데 포르투갈의 물가가 상당히 싼것을 느낄 수 있었다.
10시 정도까지 잘 잔 가족들과 함께 11시쯤 호텔을 나서서 시내로 나왔다. Santa Justa Elevator가 보여 우선 타기로 했다. 1902년에 세워진 이 Elevator는 높이가 수십 미터 차이나는 언덕 위와 아래의 길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기다리는 사람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굳이 기다려 탈 가치가 있을까 망설이는데 다행이 두대의 Elevator를 모두 운용하기 시작했는지 줄이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Elevator는 수동식으로 운영하고 탑승 인원을 제한해 편안하게 바깥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위에 내려서 바라보는 리스본 시내의 전망이 좋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과 타는 시간의 비율은 디즈니 랜드의 인기있는 놀이기구 보다 훨씬 나쁜편이다.
Elevator에서 내려 나오는 길에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예전에 카멜 수도원이었던 곳이다. 수도원의 주요 건물들은 1755년 대지진 때 파괴된 상태로 남아 있는데 당시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페루의 16세기 소녀 미라가 눈에 들어왔다.
포르투갈에서는 타일 (azulejo)을 많이 쓴다. 건물의 외장제로도 흔히 쓰고 내부의 벽도 타일로 꾸며 놓은 경우가 많다. 큰 건물의 내부 벽으로 쓸 때는 주로 역사적 사건이나 성서의 이야기를 담아 놓는다. 잘 디자인된 타일로 치장한 건물은 주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든다.
리스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 있다. Livraria Bertrand는 1732년에 개점한 곳에서 아직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50개 이상의 지점을 갖고 있는 포르투갈에서 제일 큰 서점 체인이다. 리스본도 그렇고 나중에 걸으며 들린 도시에서도 서점들은 자주 눈에 띄었다. 아직은 인터넷 서점의 세력이 약한 것인지 아니면 포르투갈 사람들이 편리함보다는 전통적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지 알수 없다.
점심을 먹고 Tejo 강가에 있는 중심가인 Baixa 지역에 들렸다가 대성당으로 갔다. Baixa 지역은 1755년 대지진 이후 완전히 새롭게 계획해서 개발되었단다. 도시 계획에 18세기 계몽주의 이상을 잘 반영시켰다고 한다.
리스본은 어떤면에서는 짝퉁도시이다. 1966년에 지은 “4월25일 다리”는 쌘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꼭 빼닮았고 1959년에 세운 Christ the King (Cristo Rei) 성상 역시 브라질 리오에 있는 Christ the Redeemer (Cristo Redentor) 에서 영감을 받고 시작했다고 한다. Cristo Rei는 다리에 비하면 덜 짝퉁이지만 아무래도 독창성이 부족하여 관심을 갖게 만드는데 한계가 있는것 같다.
대성당에서 순례자 패스포드를 사고 첫번째 도장을 받았다. 리스본 대성당은 싼티아고 순례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의 공식 출발점이다. 공식 출발점에 들려 도장까지 받으니 이곳부터 걷기를 시작하지 않는 아쉬움이 약간 위로가 되었다.
대성당에서 나와 바로 아래에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에 들렸다가 언덕 위에 있는 Sao Jorge 성으로 갔다. Moors (아프리카 북서부의 회교도) 가 지배 하고 있을 때 지은 견고한 성으로 리스본의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Tram 28 을 타고 가고 싶었지만 그시간에는 너무 만원이고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버스를 이용했다. 그리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경고에 옆지기와 Anne은 Tram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씨 속에서 선선한 바람을 받으며 성벽위에 서서 바라보니 햇살을 받고 있는 리스본의 중심가와 Tejo 강의 풍경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성벽에 걸터 앉아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만든 간이 술집과 무궁화와 너무 닮은 멋진 나무를 배경으로 테이블을 설치해 놓은 café 가 손님을 끌고 있었다.
저녁은 어제 너무 늦어 들어 갈 수 없었던 레스토랑에서 했다. Seafood를 주로 하는데 구글의 높은 평점이 상당히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9/17/16 (토요일 Day – 5: Lisbon)
아침겸 점심을 Farmer’s Market에 가서 먹었다. Lisbon의 최고 식당들을 한 지붕아래 모아 놓았다고 선전하는 food court는 규모가 크고 종류도 다양했다. 12시부터 여는 곳이 많은데 기다리고 싶지 않아 열려있는 곳에서 panini, pizza, soup 등 몇가지를 사다 먹어보니 맛은 기대 이하였다. 식품을 파는 farmer’s market 자체는 규모가 크지 않은걸로 보아 이곳은 food court가 중심인 것 같다.
Farmer’s Market을 나와 버스를 타고 Belem 지역으로 갔다. 우선 Jeronimos Monastery를 보았다. 포르투갈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며 부강해진 16세기 초부터 짓기 시작하여 100년이 걸린 이 수도원은 화려하고 정교하며 규모가 장대하였다. 이 수도원을 시주한 King Manuel은 이곳의 수도사들에게 자신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빌어줄 것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러 나가 있는 항해사와 선원들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단다.
성당도 리스본 대성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결혼식이 연달아 거행되고 있어 제대를 가까이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수도원을 나와 옆의 Navy Museum으로 갔다. 포르투갈의 화려한 해상 탐험/무역 역사를 모형배와 함께 전시해 놓은 아주 흥미있는 박물관이었다. 포르투갈은 1498년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까지 가는 항로를 처음 개척했고 1535년에는 인도에 군사기지를 설치하였다. 이 화려한 역사의 길을 닦은 일등공신으로 Henry 왕자 (1394 – 1460) 를 꼽는다. 그의 지도아래 더 멀리 항해할 수 있고 조종하기 쉬운 가벼운 배가 개발되었고 항해 기술도 발달되어 “발견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지 그의 석상을 여러곳에서 볼 수 있었다. Jeronimos Monastery의 성당 입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도 그의 석상이 차지하고 있다.
1589년에 건조된 인도 항해에 쓰인 선박
1502년애 포르투갈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Belem에는 리스본에서 custard tart를 제일 잘 한다고 소문난 bakery가 있다. 내가 Navy Museum을 보고 있는 동안 옆지기와 Anne은 그곳으로 먼저 갔다. 박물관을 보고 가니 기다리는 줄이 질리게 길어서 족히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될 것 같다. 다행이 나는 이미 자리잡고 있는 가족에 합류했다. Custard tart는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bakery나 딤섬집에서 많이 접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중국 고유의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포르투갈에 오니 bakery 마다 팔고 있고 쥬스나 커피와 함께 아침으로도 먹는다. 미국에서 도넛이나 베글, 머핀을 보는 것 보다 더 흔하다. 포르투갈이 원조인 것 같다. 이집은 사람이 많아 계속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븐에서 금방 나온 따뜻한 tarts를 제공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게 입에서 맛있게 녹는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집의 레서피는 수녀원에서 전수 받았는데 3명만 알고 있단다. 그 세명은 같은 차를 탈 수도 없고 식당에서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단다.
저녁은 Moorish style로 생선요리를 잘 한다는 곳에서 했다. 특히 여러 가지 대구 요리를 잘 한다고 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대구를 소금에 절여 말린 다음 (Bacalhau) 다시 물에 불려 요리에 많이 쓴다. 구이, 찜등 1000가지의 레서피가 있다고 한다. 찜과 채로 썰어 파스타처럼 만든 것을 시켰는데 맛이 훌륭했다. 정어리 구이도 좋았다. 포르투갈에 있는 동안 여러가지 대구 요리를 먹어 봤는데 그래도 지난 1월 부산 해운대에서 먹은 대구지리의 시원한 맛을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 포르투갈 레스토랑은 가격도 괜찮은 편이지만 양도 많은 편이다. Main dish와 appetizer를 시키면 양이 너무 많아져서 주문에 좀 신경을 써야 한다.
9/18/16 (일요일 Day -4: Lisbon – Fatima)
일어나 우선 짐을 싸놓고 나가서 아침을 먹고 들어왔다. 크로쌍, custard tart, orange juice, coffee 쎄트를 주문했는데 3유로도 안된다. 종업원 3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서 주문받고, 커피내리고, 써빙하고, 돈받고 하는데 아주 효율적이다. Yelp에는 이 집이 음식은 좋은데 써비스가 느리다는 불평이 많았는데 그사이 요령을 터득한 모양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일반적으로 써비스가 느리다는 느낌을 받는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는데도 한참 걸렸다. Fatima행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온 것이 다행이다.
리스본에서 파티마까지는 고속버스로 1시간 30분 걸린다. 길 옆의 밭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이 있었다. 파티마는 20세기에 성모님이 발현한 곳의 하나로 순례객이 많아 호텔, 음식점,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는 차분했다. 관광지 분위기는 아니었다.
파티마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달 13일에 성모님이 세명의 목동 (Lucia 와 그녀의 사촌 동생들) 에게 발현한 곳이다. 마지막 발현날인 10월 13일에는 수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다고 하며 그후 10년 동안 2백만의 순례자가 파티마를 방문했다고 한다. 1930년에 교회로 부터 공식 인정이 되었다. 많은 순례자가 다녀 가는데 특히 5월 13일과 10월 13에는 백만에 가까운 순례자가 찾는다고 한다.
오늘이 일요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두세명의 순례자가 수백 미터 거리의 광장을 무릎으로 걸어 성당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불교, 특히 라마교의 순례자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TV에서 본적이 있었지만 기독교 전통에서 그런 순례를 한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에 원래부터 있어 왔던 순례 관행인지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아 새로 생긴 관행인지 모르겠다. Sanctuary of Our Lady of Fatima 와 Basilica of Rosary 두 성당을 둘러보았다. Sanctuary의 중앙에 모신 현대적 감각의 예수님상에서 우리안에 함께 인간으로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느낄 수 있다고 옆지기가 감탄한다. 호텔로 돌아와 쉬었다가 Basilica에서 하는 6시 30분 미사를 참례하기로 했다.
일요일 저녁 미사였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이 참례했다. 미사후 초를 사서 봉헌했다. 초는 여러가지 크기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사람의 신체 부위를 만든 초도 있었다. 처음 접한 나는 약간 거북했는데 아마도 그 신체 부위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헌하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후에 카미노를 걸으며 다른 성당앞에서도 제공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포르투갈에서는 그런 초를 봉헌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행인 것 같다. 옆지기는 그런 초 봉헌의 의미를 신체의 불편한 곳을 모두 주님께 봉헌하여 맡겨서 그 불편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산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싶단다.
이곳은 봉헌하는 초가 너무 많아, 우리도 한몫 했지만, 그 연기가 상당하다. 오늘 오후에 들렸을 때는 봉헌초를 꽂을 자리가 없어 그냥 던져 놓았는지 붉은 화염에 검은 연기가 가득했었다. 환경 보존을 배려한다면 어떤 대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성당 뒤쪽으로 가다보니 RV Park가 있는데 상당히 많은 RV 가 주차해 있었다. 성당 바로 뒤에는 캠핑장이 있어 텐트도 여기 저기 있었다. 순례자를 위해 여러 형태의 숙박 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역에는 Camino Fatima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카미노 싼티아고가 노란 화살표를 쓰고 카미노 파티마는 파란 화살표를 쓴다. Porto는 Fatima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그곳의 카미노 싼티아고 길에는 두 화살표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저녁을 먹고 돌아 오는 시간이 밤 9시30분에 시작하는 묵주 기도 시간에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이 발현한 곳에 지은 소성당으로 가고 있었다. 한국인 순례자 그룹의 소리도 들렸다.
9월 19일 (월요일 Day -3: Fatima – Tomar)
아침에 일어나 성모님 발현을 목격한 목동들이 살던 마을로 가는 길을 걸었다. 2km 정도 되는 거리에 적당한 간격으로 십자가의 길 14처를 만들어 놓았다. 혼자나 부부가 같이 걷거나, 신부님과 함께 노래와 기도를 하며 걷는 구룹들이 보였다. 모두 경건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성모님이 발현하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 예고를 했다는 곳은 천사와 아이들을 하얀 석상으로 재현해 놓았는데 평화롭고 친근감이 있었다.
목동들이 거짓말 한다고 믿은 그곳 행정관이 8월 13일에는 아이들을 잡아 가두었기 때문에 대신19일에 발현했다는 곳에는 성모님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휠체어를 끌어 주며 걷는 이들의 기도와 노래가 평화로운 정적속에 울려 퍼졌다.
Fatima에서 하루만 잔 것이 너무 아쉬었다. 적어도 두 밤은 지내며 각 성당에서 행하는 미사에 참례하고 소성당의 묵주 기도에도 참석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9월 중순에 예상되지 않은 뜨거운 날씨였는데 옆지기는 오히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 마을을 둘러싼 고요와 평화를 더 강하게 느끼고 성모님의 발현 사실을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다.
Fatima에서 Tomar까지 가는 버스는 시골길을 지나며 손님이 있는 곳마다 섰다. 가는 길에 마을도 많았다. 포르투갈은 언덕이 많아서인지 마을이 대체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집을 언덕 비탈에 짓는 경우가 많아서 앞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뒤에서 보면 2층인 집이 많다. 그런데 지상층을 대부분 지면보다 조금 높게 지어 현관을 계단으로 올라가게 만들어 놓았다. 언덕이 아닌 평지에 지은 집도 지상층을 지면보다 높게 지어 계단으로 올라가서 입구가 있었다. 나중에 스페인에서도 비탈에 지은 집을 보았는데 계단을 만들어 놓은 집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포르투갈의 독특한 주택 양식인 모양이다.
Tomar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Templar 기사단의 성을 보러 갔다. Templar 기사단 (Knights of Templar) 은 12세기 초에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창설되었는데 본부를 예루살렘에 두고 교황청의 보호를 받으며 세력이 급속히 확장되었다고 한다. 유럽과 중동에 많은 지부를 설치하고 십자군 전쟁에 앞장서 참전하고 성지 순례자 보호외에 은행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귀족들이 재물을 한 지부에 맡기고 신용장을 받아 다른 지부에서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막강한 군사력과 재력으로 곳곳에 성과 교회를 세웠었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예루살렘을 잃자 세력이 약화되었는데 결정적인 몰락은 14세기 초 불란서 국왕 필립 4세가 Templar 기사단에 지은 엄청난 빚을 갚지 않으려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필립4세는 기사단이 비밀의식에서 배교 행위를 한다고 모함하여 간부들을 처형하였고 자신의 친척인 당시 교황에게 압력을 가해 Templar 기사단을 불법화 하는데 성공하였다. 교황은 기사단원을 모두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하도록 칙령을 내렸다고 한다.
Tomar는 12세기에 포르투갈 Templar 기사단의 첫 총수가 이곳에 본부를 설치하면서 커지기 시작했단다. 14세기 초 Templar 기사단이 교회로 부터 불법화되자 포르투갈 지부는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 (Knights of Christ) 으로 바꾸고 문장도 빨간 십자가안에 흰색을 넣어 정화 (purification)를 상징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를 교황이 받아들여 그리스도 기사단은 19세기 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해상왕국이 되도록 이끌은 Henry 왕자가 1417년 부터 1460년 까지 기사단 총수로 있으면서 성을 보수했고 그후 16세기에 대대적으로 증축을 하여 언덕위에 위치한 성은 거대한 규모가 되었다. 기사들이 말을 타고 미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팔각형 성당, 정원, 식당, 침실, 난방실, 정교한 창문등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저녁은 숙소 옆의 중국집에서 했다. 인구 20,000의 포르투갈 소도시에 중국집이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기대보다 질도 좋았다. 볶음밥과 면 요리는 훌륭했다.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을 때 중국 사람들이 이런 조그만 도시까지 와서 살게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일 Porto 로 갈 교통편이 불편하다. 기차를 타면 2-3번 갈아 타야하고 5시간 이상이 걸린다. 버스로 다시 Fatima로 가서 급행을 타는 편이 빠르다. 애초에 리스본에서 먼저 이곳으로 온 다음에 Fatima를 경유하여 Porto로 가도록 계획했어야 했다. 차편을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나의 불찰이다. Fatima로 돌아가서 Porto로 가기로 했다.
9/20/16 (화요일 Day -2: Tomar – Fatima – Porto)
Tomar에서 Fatima, 그리고 Fatima에서 Porto 까지의 버스는 순조로이 연결되었다. Porto에 가까워지니 포도밭이 많아진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서 집집마다 기르는 케일 galleo도 눈에 많이 띈다.
Porto는 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시 자체의 인구는 300,000이지만 metropolitan 인구는 250만이다. 12 세기에 포르투갈이 독립할 때 이곳에서 나라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Porto는 옛날부터 상업도시였고 포르투갈 해양탐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에는 “돈은 Porto가 벌고, 기도는 Braga가 하고, 공부는 Coimbra가 하고, 걷어 들이기는 Lisbon이 한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대체로 고지식하고, 그중에서 특히 Porto 사람들은 물어보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
Porto의 old town은 반경이 2-3km 정도여서 걸어 다니며 볼 수 있다. 이 old town 전체가 UNESCO 세계 문화 유산이다. 우선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선전하는 서점을 들렸다. Harry Porter 소설에 영감을 준 곳으로 알려져 있어서인지 입장료를 3유로나 받는데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 입장료는 책을 사면 크레딧으로 준단다. 서점은 예쁜 색조와 구조로 되어 있어 독특했다. 입장료 크레딧은 문구나 기념품 구입에는 적용 안 되고 오직 책에만 해당되며 한권에 한사람 입장료만 크레딧을 준다고 한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단한 마켓팅이고 상술이다.
서점을 나와 Clergymen’s Church에 들렸다. 타원형의 성당 내부가 아름다운 곳이다. 성당에 붙어있는 Tower는 높이가 75m로 막힘없이 시내를 볼 수 있어 Porto의 인기있는 관광지이다. 이 성당과 Tower를 지은 건축가는 하느님께 다가가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 공이 인정되어 이 성당에 묻히는 영예를 누렸다 한다.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하기로 했다. 맥도날드는 나라마다 지역성을 고려한 메뉴를 개발해서 약간씩 다른 것을 판매한다. 여행중 한번 정도 들려 무엇이 있나 보고 시도해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다. 이곳은 주문도 컴퓨터 터치 스크린으로 할 수 있었고 음료수 선택에 맥주나 와인도 있다. Chicken sandwich도 미국과는 달랐고 Salad dressing도 조그만 일회용 용기에 담아 주었는데 두 모녀가 귀엽다고 즐거워 한다.
Porto의 중앙 기차역은 그 자리에 있던 베네딕트 수도원을 기념하여 Sao Bento 역이라 이름 지어졌다. 내부 벽을 타일로 표현한 포르투갈 독립전쟁 장면이 독특하고 근사했는데 관광객이 승객보다 더 많은것 같았다.
대성당은 언덕위에 성의 역활도 할 수 있도록 지어졌다. 시내와 Douro 강이 잘 보였다. 대성당에서 순례자 패스포드에 도장을 받았다.
강가로 내려오면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몰려 있다. 마음에 두고 찾아간 곳들은 이미 예약이 모두 되었다고 한다. 화요일이어서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빗나갔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로컬도 많이 이용하는것 같다. 저녁을 먹고 강을 따라 걸었다. 낮에 보는 강변 경치도 좋았지만 밤의 모습은 다른 멋이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려면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마침 Funicular라는 cable railway가 가까이 있는 것을 알아 편안하게 언덕 위까지 올 수 있었다. 2.5유로가 아깝지 않았다.
9/21/16 (수요일 Day -1: Porto)
옆지기는 오늘 파리로 가서 내일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Anne은 내일부터 걷기 시작한다. 숙소 (게스트 하우스) 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옆지기의 짐을 싸 놓은 다음 리스본 재래시장에 갔다.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 관광객을 위한 gift shop이 많았다. 그래도 야채가게, 생선가게, nursery들이 있어 시장 기분은 내 주었고 소규모 가게의 생선인데도 반짝 반짝 싱싱한 것에 옆지기가 감탄이었다.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거리의 상점에서 파는 가격의 반 값에 살 수 있었다. 시장을 나와 St. Francisco 성당을 들렀다. 지금은 성당 기능이 없는 박물관으로 4유로의 입장료를 받았다. 바로크 스타일로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는 내부가 특별했다.
St. Francisco 성당 가까이에 증권거래소가 있다. 안마당과 아랍룸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도 볼만하다고 했지만 항상 넉넉히 시간을 갖고 움직여야하는 모녀가 공항 갈 시간이 가까워 온다고 조바심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Henry 왕자 동상이 서있는 앞 광장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Nespresso 자판기를 그곳에서 처음 보았는데 decaf 커피도 있어 더 반가웠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Uber를 이용했다. 차도 금방 왔고 요금도 4유로 미만으로 아주 편리했다. 숙소에서 공항까지도 Uber를 이용했는데 20km가 넘는 거리를 20유로 미만으로 이용했으니 역시 편리했다. 리스본에서도 한번 이용해 봤는데 운전기사와 영어로 소통도 잘 되고 바가지를 쓸 염려도 없고 요금도 저렴해서 좋았다. 교통이 번잡하지 않아 20분만에 도착했다. Porto 공항은 현대식 건물로 깨끗했다. 지은지 얼마 안되는 것 같았다. 터미날로 들어가는 입구가 중앙에 하나밖에 없는데도 줄이 잘 움직였다.
옆지기 배웅후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시내로 나와 아예 다리를 건너 Monastery of Serra do Pilar로 갔다. 16세기에 지어진 이 수도원은 전략적 위치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많이 쓰여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old town 의 모습이 새롭다. Monastery가 있는 언덕에서 아래 강가로는 cable car를 운행했다. Old town의 건너편인 이쪽 강가에는 와인 시음장이 많다고 한다. 포르투갈 와인은 달달한 디저트 와인인 Port wine만 알고 있었는데 와보니 여러 종류가 있다. 지금까지 마신 포르투갈 와인들은 모두 입에 잘 맞았다.
어제 저녁에 덕을 보았던 Funicular가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다시한번 Funicular가 고마웠다.
다리를 걸어서 건너와 숙소로 돌아왔다. Old town에서 숙소로 가려면 조그만 공원을 거쳐간다. 오후에는 50대 이후로 보이는 남자들이 많이 나와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구경꾼이 많은 테이블은 아마도 걸린 판이 커서인 것 같다. 공원에 나와 소일하는 젊은 늙은이들을 보니 이곳도 일자리 문제가 어려운 것 같다.
저녁은 숙소에서 소개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포르투갈 가정요리를 잘 한다고 소개해 주었다. 정말 주방은 할머니 같은 분이 맡고 있고 hall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 주관하고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메뉴에 “포르투 내장탕 (Tripas a moda do Porto)” 이 있어 주문했다. 포르투 사람들은 내장만 먹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단다. 한참 해양 정복을 하던 시기에 고기는 모두 떠나는 선박에 실어 보내고 시민들은 내장만 먹었기 때문에 내장탕은 이곳의 별식이란다. 곱창, 천엽, 귀, 허파, 간등을 콩과 양배추를 넣고 토마도 국물에 끓였는데 구수했다. 매운 양념이 아닌 것이 오히려 내장 고유의 맛을 잘 살리는 것 같다. 내장탕을 좋아하는 옆지기가 없어 아쉬웠다.
음식이 나오기전에 먼저 빵을 가져다 주었는데 처음보는 빵이었다. 웨이터에게 이것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더니 “빵이다. 포르투갈의 특별한 빵이다.” 라고 대답한다. 웨이터는 심각하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답하고 있는 것 같아 전혀 장난기나 무례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Porto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 글자 그대로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경험을 해 본 경우였다. 우리가 “이 빵의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어야 했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빵 이름이 나왔다 “Broa de Avintes”.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이었다.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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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1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2 -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싼티아고 순례기 II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3 - 김명환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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