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40주년 묵상 2 - 가장 큰 계명 

작성자

김명환 안드레아

작성날짜

08-12-2021 Thursday

가장큰 계명

성서 40주년 묵상 2 - 가장 큰 계명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마태 22,34-40)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과 이웃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시며,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필요 조건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웃이나 하느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 자신을 엄격하게 대해 왔다.  나의 부족한 면에 계속 촛점을 맞추고 내가 잘못한 행동에 대해 오랫동안 곱씹으며 자책을 해왔다.  원래 타고난 성격 탓인지 아니면 수신을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나 자신이 나의 가장 큰 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를 비판이나 연민없이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신에 대해 편안해지는데 거의 60년이 걸린 것 같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러한 생각의 틀의 변화는 내 자존심 (에고)이 심하게 부서지는 경험들을 하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독교 신비가들은 우리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 하느님이 우리 본연의 모습, 참 자아 (True Self) 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본연의 모습은 사랑, 너그러움, 자비, 용서, 평온 등 모든 선함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살아 가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욕구, 애정과 존중을 받으려는 욕구, 그리고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욕구를 갖게 되고 이런 욕구 충족이 행복이라고 믿게 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우리의 모습을 신비가들은 거짓 자아 (False Self) 라고 하고 이 거짓 자아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에고 (ego) 라고 말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 (True Self) 을 의식하지 못하고 안정과 존중, 통제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살아간다고 신비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욕구 충족이 삶의 가치가 되면 우리 행동의 동력은 에고가 되고 경쟁에서 이기고, 남보다 앞서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고 비판적 시선으로 남이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현대의 기독교 신비가들은 영적 성장의 관점에서 우리들의 인생을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  전반기에는 안정의 욕구, 존중을 받으려는 욕구, 그리고 통제의 욕구 충족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후반기에서는 자신의 참 자아, 즉 자기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영적 여정에 훨씬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삶을 지향한다고 한다 .  

영적 성장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커다란 기쁨이나 웅장한 자연 풍광을 보며 하느님을 접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 하느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된다고 한다.  젊은 시절을 평범하게 보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중년을 넘기며 한번쯤은 큰 시련을 겪게 되고 이 경험을 통하여 생각의 틀이 바뀌는 영적 성장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우리 시대의 신비가들은 말한다, 그렇게 되면 전반기와는 다른 인생의 후반기를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큰 시련은 50대 후반에 왔었다.

우리는 큰 시련을 겪으며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런 깨달음은 자신의 통제 욕구가 아주 무력한 것임을 알게 해주고, 에고가 철저히 무너지는 경험을 맛보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자존심이 무너지고 비워지는 과정을 겪으며 신기하게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짐을 체험했다.  내가 싫어하고 있던 나의 결점, 내가 자책했던 과거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너그러워지게 되고 그것들이 내가 품고 살아야 하는 나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 자신을 비판없이 편안히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나 완벽주의는 모두 에고의 산물이라는 심리학자들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생각의 틀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었다.  나에게 잘못된 행동이 가해지면 순간적으로 분노 반응은 일어나지만, 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데는 훨씬 신중해진 것 같다.  적어도 시간을 내어 그 행동에 깔려 있을지 모르는 사연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엄격하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듯이 다른 사람들을 경솔하게 판단하는 일은 되도록 피해 보자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큰 시련의 경험은 나의 의식 수준이나 포용력도 조금은 깊고 넓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옳고 그름,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누기에는 훨씬 사연이 많고, 서로 모순인 사실도 나름대로의 각각의 이유를 갖고 존재 할 수 있음을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순과 역설적인 삶의 모습도 어느정도는 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의 인생 전반부를 지배하던 현세적 욕구 충족에서도 조금은 자유스러워지고 영적 여정에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그 상황에 대해 나를 포함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리고 내가 마치 희생자인 것 같이 행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드리는 지혜를 약간은 터득한 것 같다.   

이러한 변화는 나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나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선물이었다.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전통의 침묵기도인 향심기도 (Centering Prayer) 를 창안하여 보급하신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토마스 키딩 신부님은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에고를 무너뜨리는 일련의 고통들을 만들어 주시는데 그것이 은총이라고 한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전적으로 수긍이 가는 말이다. 

얼마전 Facebook의 Richard Rohr 신부 Discussion Group에서 칼리 지브란 (레바논계 미국 시인/화가) 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접했을 때 상당히 가슴에 닿았다. “하느님께서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래서 나를 사랑했다.”   내 노력과 상관없이 나 자신이 변화된 은총에 대해 정말 감사하고 있다.  

나는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확신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이 조금 거창하다면  적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 들이는 상태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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