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소식

작성자

양신옥 안나

작성날짜

12-14-2019 Saturday

GrayFox

 여우 한 마리가 언덕에서 햇살을 따라온다. 차가운 햇살이 매화 가지 사이로 비스듬히 내려앉는다. 매화나무 뒤에 몸을 숨겼던 여우가 담장 아래로 폴짝 내려온다. 여우와 낡은 담장 색이 비슷하다. 

회색여우가 작년에 이어 우리 집을 다시 찾아왔다. 녀석은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햇살에 데워진 데크 위로 올라갔다. 여우는 긴 꼬리를 방석 삼아 몸을 접은 채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먼 길을 돌아서 왔는지 잠든 녀석이 안쓰러워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었지만, 창문이 여우와 나 사이를 막고 있었다.

회색여우의 첫 방문 날은 공교롭게도 내가 미주 일간지에 이솝의 여우와 까마귀란 제목의 글을 실었던 다음 날이었다. 영리한 여우는 까마귀가 물고 있는 치즈가 탐이 나서 유혹한 것이 아니라, 평소 목소리에 열등감이 있는 까마귀를 격려하기 위하여 노래를 시키자, 까마귀는 감사한 마음으로 여우에게 음식을 주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처음, 오렌지 나무 아래 앉아있던 그를 만났을 때 놀라서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창문을 닫고 서 있던 나와 녀석의 눈이 마주치자, 블라인드 사이로 몰래 보기 시작했다. 여우는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녀석이 분명 우리 집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자신을 신문에서 변호해준 보은으로 인사차 들른 기특한 녀석이라고 결론을 내리니 오히려 녀석에게 민망했다.

그날 이후 그는 비가 그친 후에 양지바른 데크에서 일광욕을 하고 떠났다. 내가 창가에 서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선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한 다음 제자리에 앉아 그윽이 먼 산을 바라보거나 낮잠을 자고는 유유히 사라지곤 했다.

지역 신문에는 주택가로 내려오는 회색여우에게 치즈 등의 음식을 주지 말라고 적혀있었다. 아마도 야생에 적응력이 약해질까 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조용하고 제법 예의도 발랐다. 사람들은 영리한 이 녀석을 간교한 짐승으로 표현하는지 알 수 없다.

이 친구가 매일 와서 잠만 자고 가지는 않았다. 화분에 핀 새순을 똑똑 자르거나 고무호스를 갉아 놓는 말썽꾸러기 생쥐를 집 안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해줘서 고마웠다. 길고양이는 가끔 와서 깨끗이 쓸어둔 뒷마당에 비둘기 털을 수북이 쌓아두고 배를 두드리며 사라지지만, 녀석은 내가 싫어하는 분비물 등 흔적을 남긴 적이 없었다. 그가 머물렀던 자리는 항상 깔끔했다.

여우의 물결치듯 털이 풍성한 긴 꼬리 때문에 구전이나 드라마에서 요망한 구미호로 묘사되지만, 데크 시렁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까지 하다. 은혜 갚은 꿩이나 고양이, 생쥐의 전래동화는 있어도 여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진작에 이솝부터 찾아가서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을 것이다. 동물도 이렇게 억울한 일이 많은데, 사람은 깊은 속내를 오해받는 경우가 얼마나 더 많을까.

봄이 시작될 즈음, 여우는 구슬픈 울음소리로 작별을 고하듯이 꼬리를 흔들며 언덕으로 사라졌다. 여우가 떠나자 매화도 바람 따라 떠나갔다. 어린 새들이 오렌지 나뭇가지로 돌아와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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