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그 뙤약볕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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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노동절 연휴에 산타바바라로 야영을 떠났다. 그해 9월 초 캘리포니아는 11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이었다.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싱그러움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던 도시는 시 당국의 물 절약 정책으로 인해 초록이 갈색으로 변해서 마음마저 황량했던 해였다. 우리 일행은 밤늦게 길을 떠나서 다음날 희뿌연 아침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이른 봄부터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산타바바라 야영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내가 사는 베이에어리어보다 더 더웠고 습도까지 겸한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우리는 1786년에 건립된 올드 미션 산타바바라(Old Mission Santa Barbara)로 향했다. 미션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과 예술적 건축양식으로 유명하다. 오래전 원주민인, 츄마시인디안 (Chumash Indian)이 심었던, 가뭄에 잘 견딜 수 있는 꽃과 과실수가 지금까지 아름다운 정원으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이 미션은 서부의 대표적인 스페인 식민지 건축양식으로 역사적 유적지이기도 하다. 옆 정원을 따라가니 십자가의 길, 14처가 예쁘게 설치되어 있었다. 함께 길을 떠날 때면, 운전 중에도 차에 동승한 멤버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기를 종용하는 ㅈ 형제님이 이곳을 그냥 지나칠 리가 만무했다. ㅈ 형제님의 주관으로 태양에 익은 길을 걸으며 한처 한처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가장 낮게 옆드린 채 이수익 시인의 시처럼 가장 빈약한 손으로 주님을 향해 기도를 바쳤다. "주님, 아직도 흔들리는 저의 신앙을 굽어살피소서." 관광객이 주변에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끝까지 14처를 끝마쳤다. "눈물이 흘러서..."라며 자매님들이 안경 너머로 눈물을 닦으며 겸연쩍어했다. 나는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쳐다보면 울음이 금방 터질 것 같았다. 숲속의 야영지에서 밤하늘의 별을 함께 바라보고 고민을 나누며, 한솥밥을 지어 먹다 보면 기도의 마음도, 회개하는 마음도 동화되곤 한다.예수님의 수난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죄의 용서를 빌기에도 나는 부족했다. 다만 약한 영혼이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기억 속에 남는 그해 여름, 미션 산타바바라의 십자가의 길을 잊을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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