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

작성자

김춘희 아가다

작성날짜

06-22-2019 Saturday
 

 이 곳 메이플 리지로 이사 와 산 지가 벌써 8년이 넘는다. 이사 올 때만해도 이 동네는 마치 시골에 사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집을 나가면 농장이 있고 쉽게 소나 말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푸르고 넓었던 밭에 타운 하우스가 즐비하게 들어섰고 주택이 늘어난 만큼 차량이 늘어나 출퇴근 시간에는 가급적 멀리 가지 않는다. 코퀴틀람 쪽으로 갔다가 저녁 퇴근시간에 걸리면 꼼짝 없이 트래픽에 걸려 귀가 시간이 지체될 정도다.

  메이플리지로 들어오면서 왼쪽으로 듀드니 길이 나오면 그 길에서 240 까지 올라가는 동안 신호등이 자그마치 15개는 더 넘을 듯 싶다. 나는 매일 아침 7시 좀 지나면 집에서 나와 240 번 길로 들어갔다가 듀드니 길로 내려간다. 신호등 6개 쯤 지나서 엣지 (Edge) 길에 있는 성 파트릭 성당 미사에 참석한다. 이것은 내가 무슨 큰 믿음 생활을 해서라기보다는 아침을 여는 육체적 운동을 하기 전에 하는 하나의 정신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미사가 끝나고 그 날의 일을 설계하고 그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은 나의 하루 생활의 전주곡과도 같은 것이다.

  240번 길에서 듀드니로 내려가는 동안 신호등 6개 쯤 지나는 동안 아무리 빨리 달리고 싶어도 제한된 속도 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 더욱이 나는 젊은 운전자가 아니다. 나이 80에 운전하려면 젊었을 때보다 더욱 조심 운전을 해야 한다. 그러자니 속도위반은 내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고 아무리 신나게 빨리 달려봐야 제한 속도에서 10-15 이상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 성급한 젊은 운전자들이 나를 추월을 하거나 추월이 안 되면 안달을 하면서 뒤쫓아 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나는 ‘너 바쁘냐? 그럼 앞서 가 봐라” 하고 속도를 조금 더 느리게 가 준다. 다행히 1차선에 차가 없으면 수월하게 나를 추월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내가 양보 해 줘도 소용이 없다. 또 요행히 나를 추월했어도 빨간 신호등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하므로 결국은 추월해 봤자 겨우 내 앞에서 빨간 불에 서기는 매 한가지다. ‘니가 그리 성급하게 가려 해도 여기 듀드니 길에서는 신호등 때문에 더 빨리 갈 수 없단다. 이 젊은이야” 하며 나 혼자 중얼거린다. 어떤 때는 얄밉게 추월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그래 빨리 가봐! 결국은 신호등 앞에서 멈춰야 해” 하며 나를 위로 한다.아무리 빨리 갈려고 추월을 해도 빨간 불 신호등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야한다. 일단 서서 파란 불이 나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젊어서는 앞서 가는 인생을 살려고 아등댄다. 누가 성공을 했다 하면 그게 부럽고 또 좀 더 나이 들어 어느 집 아들이 박사가 됐대 하면 그게 선망이고, 뉘 집 딸이 어느 부잣집에 시집갔대! 하면 그것도 부럽고 젊어서는 부러울 것 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인생을 성큼 80을 넘겨보니 부러울 것도 후회 될 것도 아무것도 안 남는다는 결론이다. 아들 딸 모두 성공해도 살다보면 집안에 변고가 생기던가 또 부부 의가 좋아 잘 살아도 어느 날 갑자기 한 쪽이 세상을 뜨게 되어 혼자 남을 때도 있고 무엇 하나 인생에서 보증 수표로 남는 것이 없다.

  대학교 다닐 때 그렇게 미인이던 친구를 몇 십 년 후에 만나보니 알아 볼 수 없게 늙은 할망구가 되어 “얘 나 아무개야 나 몰라보게 늙었지?” 그토록 미인이였던 친구나 천하의 못 생긴 나나 뭐 다를 바가 없었다. 또 시집 잘 갔다고 모두들 부러워하던 친구는 젊어서 세상을 떴고, 모두가 신호등에 걸린 자동차 운전자의 꼴들이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 머리가 좋아서 늘 일등만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이담에 사회에서 뭐 한자리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저나 나나 별 뾰족한 수 없이 평범한 주부가 되어 아들 낳고 평범히 살더니 중년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떴다. 누구하나 인생의 보증 수표를 받고 행복하게 사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의 신호등 앞에서 쉴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공부는 별로 하신 분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지혜로운 분이셨던 것 같다. 내가 어느 집 아무개가 공부를 잘 해서 월반을 두 번이나 하고 재주도 많아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어머니는 ‘빨리 끓는 냄비는 쉬 식는다’ 하셨다. 빨리 성공하면 빨리 끝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호등 앞에서 잠시 쉬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가끔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동승할 때가 있다. 한번은 아들이 천천히 가는 운전자를 휙 추월하며 짜증스럽게 ‘너무 느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추월하며 보았더니 내 나이나 된 할아버지 운전자였다. 그래서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얘, 그러지 마라 ! 니 엄마도 저렇게 천천히 달린단다. ‘ 아들은 엄마도 그렇게 늙은이 운전을 한다는 소리에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모두 서야한다. 우리 모두 좀 쉬었다 갑시다.

 

 

   시편 90장 3-12

   당신께서는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쓸어 내시면 그들은 아침 잠과도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도 같습니다.

   아침에 돋아났다 사라져 갑니다.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립니다.

   정녕 저희는 당신의 진노로 스러져 가고 당신의 분노로 소스라칩니다.

   당신께서는 저희의 잘못을 당신 앞에, 저희의 감추어진 죄를 당신 얼굴의 빛 앞에 드러내십니다.

   정녕 저희의 모든 날이 당신의 노여움으로 없어져 가니 저희의 세월을 한숨처럼 보냅니다.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

   누가 당신 진노의 위력을, 누가 당신 노여움의 위세를 알겠습니까?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blue2  주보모음

blue2  미사시간

blue2  성당오시는 길

blue2  묵 상 글

blue2  독서자 주지사항


blue2  레지오 마리애

blue2 사진/동영상


blue2 매일미사/성경

blue2 매일미사/성경|영어

blue2 북가주 한인성당/
  가톨릭사이트 링크

오클랜드 성 김대건 성당 빈첸시오회

빈첸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