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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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의 새 달력이 벽에 걸렸다. 잉크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듯한 백지 위에 선명한 그림 그리고 명료한 숫자들. 새 친구를 만나듯 반갑고 신선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1월의 서른 한 날. 나는 이 서른 한 날에 어떤 채색으로 어떤 그림 어떤 사연을 적을까? 자못 흥미롭기도 하다. 지난 해는 유난히 통증에 시달리며 그야말로 넋 놓고 살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생산적으로 키보드를 두들겨 본 지가 언제인지도 아득했다. 비록 지금 글을 쓰고 있지 않아도 우리는 노는 게 아니라고 글쟁이들은 곧잘 말한다. 머릿속은 창작의 더듬이가 쉬지 않고 움직이며 마음에 담은 온갖 풍경들이 창작과 연결 된다는 의미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면, 초조하고 때론 공허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할 일을 밀어놓고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는 죄의식도 살짝 끼어든다. 허리가 아파 오래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으니까, 키보드를 두들기면 어깨의 통증이 먼저 찾아오니까 등등의 핑계를 가져다 대도 개운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중심부를 섬광처럼 스치는 한 문장이 있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누구나 잘 알듯이 하와의 꾀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은 뒤 눈이 밝아져 숨어 버린 아담을 찾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이미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을 걸 하느님께선 예견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담이 어떤 꼴로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실 리가 없다. '너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은 하느님께서 바로 나에게, 즉 내가 아담임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 질문이다. 살아오는 동안 너는 어디서 무얼 했는가, 라는 물음. 아담은 자신의 생활 양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숨는다. 사람은 누구나 아담이고 아담의 처지에 놓였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든 현재든 이 물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은 과거가 아닌 바로 현재 진행형임을 알려주는 어느 랍비의 말이다. (마르틴 부버의 '인간의 길') '너 어디 있느냐?....' 대답이 궁해 멍 하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통증이라는 여러 색깔의 블록을 쌓으며 그걸 방패로 잘도 숨어 지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나? 나는 고국을 떠나며 사회적인 모든 허명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그래도 미국에 이주하여 종이 책을 출판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칼럼을 썼던 건 내 존재의 외침에 다름 아니었다. 자식들은 말한다. 그냥 편하게 건강 챙기며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살라고. 그 말 속에는 베스트 셀러 작가도 아니면서 글 쓰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하냐는 뜻이 숨어 있는 듯 해서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자식들 말 대로 나는 생활인으로서의 모든 의무와 책임에서는 벗어났다. 맛 있는 거 찾아 먹고 적당히 놀면서 나만 챙기며 살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게 있는 단 하나의 재능은 글 쓰기다. 이제 새삼 대작을 써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는 헛된 꿈은 꾸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글 쓰기에 연연하는 건 재능기부와 잠들기 십상인 의식 깨우기의 의미가 있다. 이건 내 스스로 내게 지운 의무와 책임이자 내 생존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꾀를 부리고 이런 저런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는 건 바로 비겁한 아담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이다. 너 어디 있느냐? 올 한 해는 나 자신과의 숨바꼭질을 멈추고 성실하게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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