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다' 와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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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머리 속에 모래와 자갈이 가득 차서 숨 쉬기조차 힘든 것 같은 기분일 때가 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아무 느낌도 없을 때, 그래도 무언가를 써야 할 때 나는 지난 시간들의 메모를 뒤적거린다. 거기서 만나게 되는 보석 같은 사유의 조각들이 참 반갑다. 비로소 나는 다시 물줄기를 찾아 길을 떠난다. 메모는 이래서 필요하다. '주님께 무언가를 청하지 않고 문제들을 주님 앞에 던져 놓는다. 그래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포코랄레 창시자인 끼아라의 말이다. 번역자가 내려놓다와 던지다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고 번역을 했는지 아니면 끼아라의 의도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메모를 할 때가 전에 살던 고장에서 포코랄레 모임에 나갈 때이니 그 사이 제법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과의 만남은 새삼스럽고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참에 내려 놓다와 던져 놓다의 의미를 짚어 본다. 내려놓다 : 위에 있는 것이나 들고 있는 것을 아래로 놓는 것. 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그러니까 내려놓다의 어감이 부드럽듯이 언제든 다시 주워들 수도 있다는 여지를 풍긴다. 그런 반면 저 멀리 거리를 두고 던져 놓으면 역동성의 작용에 따라 나와의 거리감과 단호함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던진 물건을 다시 주워 들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해도 무리는 없을 게다. 영화 미션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한 평생 살자면 누구나 여러 가지 위기에 처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힘든 문제가 생기면 십자가 앞에서 주님 앞에 맡깁니다, 당신께 내려놓습니다 도와 주십시요. 애절하게 기도한다. 하지만 정말 주님을 믿고 맡기며 내려놓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 역시 칠십 여 년 살아오는 동안 수도 없는 절박한 지경에 이르러 하느님께 매달린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십자가 앞을 떠나 어느 순간 돌아보면 십자가 아래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문제들이 어느 틈에 내 어깨와 등에 떡 하니 매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루의 끈을 싹뚝 잘라 흐르는 시간에 던져 놓기가 그렇게 어렵다. 내가 십 수 년 전에 본 영화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 멍에의 큰 자루를 메고 강도 건너고 바위 산도 오르며 왜 내 삶은 이렇게 고된가 한탄하는 순간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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