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년 3월12일 ~3월 22일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년 3월12일 ~3월 22일

[교우 이야기]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년 3월12일 ~3월 22일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계신 천국에도 부활절이 있나요?
오늘 이 곳 지상은 부활절이라네 !
" 죽을을 이기신 예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 알렐루야 !
엄마 딸 안젤라도 사흘밤낮을 꼬박 앓고 나서
부활했다네.
내가 예수님도 아니면서 예수님처럼 사흘밤낮을 지독한 감기몸살로 아프고 나서 거울속에 비친 내모습에 "눈이 십리나 들어간 거울속 저 여인은 누구신가? " 했다니까...

엄마~
내가 감기 몸살이 날만도 했어요.
엄마 만나겠다. 고 지구를 한바퀴 돌고 왔으니까요.
돌아가신 엄마를 만나겠다. 니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 고 할 이야기를 믿고 메주고리예 성모님께 갔으니까요.

재작년에 공지영씨가 쓴
"수도원기행 2에 공지영씨
아는 지인이 아들을 잃고 너무 슬퍼했는데 메주고리예 가서 기도 중에 환시로 아들이 보이며
아들이 엄마에게 "자기는 천국에서 잘 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하느님을 사랑하라." 는 내용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어 나도 메주고리예 가면 기도중에 엄마를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었어요.
엄마~
남들이 들으면 내가 무지 효녀같다. 고 생각할 지 모르겠는데 엄마 보내고 나서 나 정말 무지 많이
울었어요.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사람의 몸에 이리 물이 많을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너무 많이 울어 안구건조증이 와서 안경을
써야 했어요.
작년에 과다루페 성모님께 가서 " 나 이제 그만 좀
울게 해주세요. " 하고 기도드렸더니 이젠 눈물이 잦아 들긴 했지만 지금도
엄마생각이 나면 그리움에 울컥울컥 해요.
사람들 말이 "3년이 지나야 좀 잊혀진다. " 고
하는데 다른사람들 보다 엄마를 더 못 잊는 것은 엄마가 4년동안 투병하던 그 모습이,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하던 모습이 내마음에 상처로 인이 박혔나봐요.
" 고통이 은총 " 이라고 하는 말을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말은 고통이 지나간 다음에 할 수 있는 말이지 싶어요.
엄마가 아픈 4년동안 나도 같이 아팠으니까...
어쨋든 엄마 ~
나는 여러가지로 엄마를 만나러 가기 쉽지 않은 상황에도 결단을 내려서 메주고리예로 향했어요.
메주고리예까지 직접 가 볼까 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한국에서 출발하는 순례팀과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인천으로 출발했어요.
그런데 엄마 ~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게 삶 인지 인천공항 착륙 한시간을 남겨 놓고 기장이 안내방송으로 인천공항 기상탓으로 회항하다가 제주공항에 착륙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비행기 타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좀 당황했어요.
제주공항에서 몇시간을 기다려야 할 지는 알수가 없다. 고 하네요.
어떠하지. . 난감.
한국순례팀과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30분에 만나기로 되 있는데..
제주공항에서 기다리며 성지순례책자를 보는 중
발현 목격인 미르야나의
"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 라는 글에 위로 받으며 3시간 정도 기다리던 중 관제탑에서 허락이 떨어져
인천공항 약속시간에 간신히 도착해서 드뎌 출발 !
모스코바까지 8시간.
모스코바에서 5시간 대기
또 비엔나까지 3시간.
도대체 엄마딸이 비행기를 몇시간 타느냐면 30시간을 넘게 타고 비행기안에서 잔다. 해도 토막잠 이어서 이틀밤을 새운 셈인데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너무 멀쩡해서 나도 내가 이상한 거예요.
평소 같으면 벌써 지치고 체력이 딸렸을텐데..
성모님이 함께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주고리예는 성모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고 해요.

엄마~
엄마딸이 사느라 바빠서 여행 이라곤 생각도 못하다가 아이들 결혼시키고 나니 이제 남은 삶은 나를 위해 살다.가 가야지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작년에 과다루페 성지순례를 처음으로 갔었고 유럽쪽 성지순례는
처음이지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본
크로아티아 라는 나라의
아름다움에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더구나 메주고리예까지 가는 성지순례이니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몰라요.
황창연신부님의 "심장이 뛸 때 떠나라." 는 말씀이 맞지만 그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예요.
어쨋든 엄마딸은 용기 내어
떠나 왔고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팀이 되어
여행을 하면서 엄마딸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사실 좀 걱정했는데..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어요.
순례팀은 신부님까지 27분이 함께 했는데 호주에서, 일본에서, 서울에서등 각자의삶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함께 하셨는데 제일 연장자이신 전주교구 신부님 어머님이신 지 데레사 어머니는 82세이신 데다 무릎관절염 수술까지 하시고 메주고리예를 오셨으니까.
얼마나 씩씩하시고 귀여우신지 우리 모두의 엄마로 불리셨지요.
엄마딸이 막내는 아니었지만 다 연세들이 많으시고, 신앙의 고수들 이셔서 화합이 참 좋았어요. 순례여정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거쳐서 메주고리예로 들어 갔다 가 다시 되돌아 오는 여정인데 투어버스로 매일매일 대 여섯시간을 달리는 강행군속에도 기도하며,
매일의 미사로 성체를 영하며 서로의 눈물과 아픔을 나누면서 가족처럼
한 팀이 재미있고, 웃고, 수다떠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엄마딸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많이 웃었던 시간들이었어요.
엄마딸이 이렇게 밝은 사람이었구나 !
사진을 보니 다 웃고 있네..
메주고리예 순례 들어 가기까지 발칸반도 지역의 아름다운 곳을 많이 스치며 지나갔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아드리아해의 죽 이어지는 푸르른 물과 파도와 빨간벽돌지붕이 아름답게 계속
기억에 남아 있어요.
어느 성에 올라 가서 내려다 본 아드리아해의 푸른 파도가 너무 아름다워서 빠져 보고 싶다.는 유혹이 오기도 했으니까요.
하느님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을까 ?

감사한 마음에 뭉클했어요.

엄마~
메주고리예는 "산과 산 사이의 지역 " 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속한 마을이름이예요.
영적인 체험이 많은 곳이라고 알려져서 수많은 순례객들이 다녀 갔고 지금도 수많은 순례객들이
오고 있어요.
엄마가 너무 통증으로 고생하실때 모시고 가고 싶다.고 생각만 했을 뿐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찾다 보니
조그만 시골 마을이 숙박시설들이 많이 들어서고 길거리는 관광지 같은 느낌 이었지만
사람들은 순박하고 신앙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이었어요.
아마도 성모님이 이런 순박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들을 사랑 하셨기 때문에 이 곳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메주고리예가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그 전은 유고슬라비아 연방)는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가 뒤 엉켜 사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이루고 있다. 고 해요.
성모님 발현 11년후에 일어난 서로 다른 민족간 종교간 전쟁인 보스니안 내전으로
"인종청소" 라는 슬픈 단어까지 생긴 비극적인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을 미리 내다 보시고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고 해요.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예수회후원회  소식지팀과 함께 발현산 정상의 십자가에서)

엄마 ~
사실 성지순례 하기 전 내 건강상태로 잘 할수 있을지 걱정을 좀 했어요.
무릎이 벌써 아프기 시작해서 삐걱거렸기 때문에 과연 성모님이 발현하신 발현산과 그 다음날은 3시간 이상 걸리는 험난한 십자가산을 올라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어요.
발현산 올라 가는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야고보 성당에 가서 기도 드리는 중 엄마의 따뜻한 위로에 많이 울었어요.
발현산을 오르며 내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 내가
날라 가고 있다.는 느낌과 성모님이 받쳐 주고 계시는구나..
십자가산도 마찬가지 이지만 굉장히 날카로운 돌산에다 진흙땅과 뒤엉켜 있어서 발에 힘이 조금만
빠지면 미끄러워서 넘어지면 사고가 날만한 험난한 돌산이었어요.
발현산을 오르며 눈물이 계속 흘렀어요.
엄마를 환시중 보고 싶다. 는 마음도 있었지만 메주고리예 가기 전 피정에 들어가서의 특별한 체험이 나를 그 곳으로 향하게 했던 것 같아요. 피정에서 나의 무질서함과 나태함을 보아서 더 회개하고 , 보속하고 변화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 가신 후 엎친데 덮친다는 식으로 관계속에서의 문제들로 엄마딸이 마음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올라 오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 있었지요.
사람들 만나기 싫어서 미국성당에 나가고 " 내가 점점 이상한 사람인가 ? 하는 생각에 심리상담도 받아 보곤 했지만 나락에서 올라 오지가 않았어요.
"저 좀 살려 달라." 고
수많은 밤을 하느님께 부르짖었어요..
근데 그게 모두 하느님이 중심에 없고 내가 중심이어서 힘들었다. 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하느님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그런데 그 걸 여태까지 깨닫지 못해서 내 안에다 상처, 화, 분노, 미움, 질투, 무시당함, 자존심 등의 나쁜 감정들로 꽉 채우고 , 지배당하며 무너져 있음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앙생활 40년만에서야
깨달았어요.

발현산을 올라 갈때 내가 발에 힘을 주며 오르는 돌들은 뽀죡하고 날카로운 돌들이었어요.
널직하고, 편편한 돌들은 자칫하며 미끄러워서 뒤로 넘어질 만큼 위험했어요.
그 돌들에서 깨달음이 왔어요.
"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준 원동력은 저 날카롭고, 뽀죡한 돌들 즉 고통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
36살 이라는 나이에 미국에 들어 왔을때의 내 모습은 참으로 미숙하고
영적으로 아기였구나..
그리고 계속된 영적 혼수상태로 지냈구나.
그래서 성장통을 주셔야 했구나.
저 편편한 돌들만 밟고 갔으며 계속 미끄러지며 올라 가지 못했을텐데..
"하느님은 나를 참으로 사랑하셨구나 "
당신께 가는 길은 끝이 없지만 이나마라도 깨닫게
해주시는구나..

감사함에 눈물.코물이 계속 흐르는 데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로 연싯 훔치느라 힘든 줄 모르고 정상에 오르니 발현하신 모습 그대로 재현한 성모님이 거기 계셨어요.

성모님이 " 사랑하는 안젤라야 !
멀리서 와 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늘 함께 한단다. "

엄마~
기적은 다른게 아니었어요. 엄마는 그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82세이신 전주교구신부님 어머니는 무릎수술을 하셨는데도
끝까지 다 오르셨구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이 사고 없이 정상까지 오른 신후에 내려 오셨지요.

(에필로그 )
제가 기억하는 한에서 제 일생에 열흘간의 순례여정은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고, 충만한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잘 살다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사랑하는 엄마 - 이진의 안젤라 -메주고리 순례기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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