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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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탄식처럼 내뱉으며 성경을 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공동번역인 성서를 이름이다. 나는 어쩐지 공동번역 성서의 말씀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아마도 여러번 통독하며 정이 들어서인지 모르겠다.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코에 숨이 붙어있을 뿐 아무 보잘것 없느니……" 이사야 2,22(성서 공동번역) 마치 내 속마음을 읽고 있던 이사야 예언자가 들려주는 말씀 같았다. 그 구절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서 구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가면서 믿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정을 주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잔뜩 믿고 있다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내가 말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란 실상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을 뜻한다. 외모가 아닌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 즉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는 사람, 말과 행동을 함께 하려는 사람, 신의를 지키는 사람. 거기에 공감대가 큰 사람이면 더 바랄 게 없다. 사실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조건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을 잘 믿는 편이다. 몇 번 아니, 첫 만남에서도 말이 통한다 싶으면 속내를 다 털어놓는다. 더러는 감추었다가 나중에 보이는 면도 있어야 신비한 매력도 있을 터인데 그런 면에서 나는 매력 빵 점이다. 내 성품을 잘 아는 집안 동생은 곧잘 충고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속을 다 내보이면 그 사람의 밥이 되거나 나중에는 이용을 당한다는 거였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응수를 한다. 돌이켜 보면 내 불찰이 큰 거 같다.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며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의 안경 나의 잣대로 판단하며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여 마음을 앓는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부모 세대의 어른들을 보면서 이다음에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게 만들던 온갖 노추(老醜)의 모습들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부쩍 늘었다. 나이가 들면 집착이나 아집 따위는 쉰 떡 버리듯 쉽게 버리게 되는 줄 알았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걸 더 좋아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부터도 보잘것없는 존재인 게 분명하다. 내가 자신도 믿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이기에 '보잘것없는' 다른 이를 믿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니 다시 배신감과 서운함을 맛보게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게 바로 사는 것이며 그렇게 관계 안에서 깨지며 변화되고 성장하는 게 사람이니까 말이다. 요즘 미투 운동의 여파가 거센 바람으로 사회를 혼란케 한다. 사회 유명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이들의 민낯을 맞대면하면서 실망을 넘어 슬픔을 느낀다. 인간의 본성 안에 그렇게 보잘것없고 추악하고 잔인한 면이 숨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인간의 권력이나 인기나 재력은 목에 힘을 주고 만용을 부릴만한 것이 못 된다. 하느님이 부르시는 날에는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고 마니까. "다시는 사람을 믿지 말라. 코에 숨이 붙어있을 뿐 아무 보잘것 없느니...." 이사야 예언자가 무얼 강조하고 있는지 알지만 나는 그 행간을 읽게 된다. 무력하고 ‘아무 보잘것없는 사람’끼리 서로 관심과 사랑을 거두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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