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이야기 제 20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1편) -김명환 안드레아

기사/사진 제공: 김명환 안드레아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1편) -지금 보시는 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2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3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4편)

 

4월 24일 (금:  Day 0)   파리 – Bayonne – St. Jean Pied de Port 
아침 10시에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서Bayonne으로 가는 TGV를 탔다.  지난 2년 동안 준비해온 싼티아고 순례길 (Camino de Santiago)의 시작이다.   파리에서 묵은 호텔이 큰 회사 사무실이 많은 지역이라  지하철에서 내려 출근하는 직장인의 무리를 거슬러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러 가고 있는 내가 낯설다.  예전에 실리콘 밸리에서 일할때 출근길 트래픽이 많은 프리웨이 지점 옆에 골프장이 있었는데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움직이지 않는 차안에서 골프치는 사람들을 보며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늘 아침은 내가 그곳에서 골프치던 사람들 처럼 느껴졌다.

 내가 Camino de Santiago를 알게된 것은 3년전 파울로 코엘료의 Pilgrimage (순례기) 라는 소설을 읽고 나서다.  오랫동안 소설에는 흥미가 없었는데 옆지기가 코엘료의  Alchemist (연금술사) 라는 소설이 좋다고 해서 읽고  완전 코엘료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곧이어Pilgrimage를 읽었고 그 책에서 카미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관심이 생겨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할 즈음 고등학교 동기 병준이가 카미노를 다녀왔다. 병준이가 등산 잡지에 쓴 글도 읽어보고 또래 산행때 이것 저것 물어 보기도 했다.  은퇴 시기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즈음에는 카미노를 걷는 것이 은퇴후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의 1순위가 되어 있었다.

Sant Iago (야고보 성인, St. James) 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다.  예수님이 돌아가신후 현재의 스페인인 이베리아 반도에 와서 전교하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12제자중 최초로 순교했다.  성인의 제자들이 시신을 다시 이베리아 반도로 모시고와  매장했다고 한다.  813년에 한 목동이 밝은 별빛을 따라가다  San Tiago의 묘를 발견했다고 한다.  주교가 성인의 묘로 인정하고  그곳에 성당을 지어 그후부터 순례가 시작되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의 많은 부분이 이슬람인 모로코 왕국의 지배하에 있어 기독교 왕들이 영토 회복 전쟁을 수세기에 걸쳐 했는데 결정적 전투마다 San Tiago 가 나타나 전세를 바꾸어 놨다고 한다.  그래서 San Tiago 는 스페인의 주보 성인이고 성인을 묘사하는 조각이나 그림은 순례자나 전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싼티아고는 중요한 순례지로 떠올랐고 로마나 예루살렘을 능가했다고 한다.  

Bayonne 행 TGV는 만원이었다.  나흘전 파리에 도착했을때 미리 표를 사 놓았기 망정이지 오늘 이곳에 와서 표를 사려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었겠다.  원래는 프랑스 철도청 (SNCF) website에서 예약을 하려 했는데 credit card가 계속  reject 되어 불가능 했다. 나중에 들으니 debit card를 쓰면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기차가 Bordeaux에 도착했을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은 2000년대 초에 서너번 출장을 온 곳이다.  한번 출장에 대개 2주일씩 있었으니 꽤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나중에 프랑스의 first lady가 된 Carla Bruni의 CD를 처음 발견해서 산 곳도 여기다.  Bayonne에 도착하니 Saint Jean Pied de Port (쌩장) 가는 버스 시간 까지 3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시내 구경을 나섰다.  Bayonne은 프랑스에서 Basque 민족이 사는 제일 큰 도시이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중심가의 건물들은 4-5층 건물들인데 아래층은 상점이고 2층부터는 주거지 같은데 창문이 일정하게 지어져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성당앞에는 남미의 원주민처럼 생긴 여자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기차역으로 돌아 오니 아주 많은 순례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에서 12시에 출발하는 TGV에서 많이 내린 것 같다. 버스를 기다리는 순례객이 40명 이상 되는데 그중 10명 이상이 한국사람인 것 같다.  젊은이들이 많았다. 

버스는 프랑스 철도청 (SNCF)에서 운영하는데 Bayonne에서 쌩장까지의 조그만 기차역들은 모두 들렸다.  비수기여서인지 아니면 어딘가 수리중이어서인지 기차 대신 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지역은 피레네 산맥에서 내려오는 강이 있는데 물이 맑고 양도 많았다.  Rafting 선전도 보이고 boutique 가게도 많이 보이는 것이 여름에는 기차를 타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것 같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들은 꼬불꼬불 했지만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을도 모두 깨끗하게 잘 다듬어져 있고 윤택해 보였다.  양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아 목축이 주산업인 것 같다.  길에서 보이는 산등성의 조그만 창고벽에 ‘독립’이라고 페인트로 써 놓은 것을 보니 이곳 Basque민족중에는 아직 독립 국가를 갈망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90년대에 스페인의 Basque민족들이 폭력을 써가며 독립운동을 했던 기억이 났다.

옆에 앉은 한국 여자분이 창문을 열 수 없느냐고 묻는다.  차멀미가 난단다.  버스는 창문을 열수 없게 되어 있었다. 어제 한국을 출발해 오늘 아침 파리에 도착한 후 그길로 기차를 타고 Bayonne에 왔단다.  버스가 꼬불 꼬불한 길을 돌아 마을 기차역을 들리니 멀미가 나게도 생겼다.  앞으로도 버스를 40분 이상 더 타야되는데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조금씩 이야기를 시켜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고 나중에는 몇분만 더 가면 도착한다고 알려주며 참을 수 있도록 응원했다.  다행이 최악의 사태는 피하고 쌩장에 도착했다.

쌩장의 카미노 안내 쎈터에 들려 간단한 등록을 하고 ‘순례자 패스포드’를 받았다. 카미노를 걸으며 이 패스포드에 묵은 숙소, 먹은 음식점, 방문한 교회, 수도원과 명소들의 도장을 받아 흔적을 담고 나중에 싼티아고에 도착해서는 그것을 근거로 카미노를 걸었다는 증명서를 받는다.  옆자리의 안내 쎈터 봉사자가 한국어와 영어를 통역할 사람을 찾는다.  내가 도와 주겠다고 하니 그 멀미난 여자분과 소통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등록을 마치고 municipal albergue (시립 알베르게) 에 묵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순례자를 위한 hostel.  카미노 곳곳에 위치하고 가격이 저렴한데 순례자 패스포드가 있어야 묵을 수 있다). 침대가 6개가 있는 방에 5명이 묵었는데 3명이 한국 젊은이 였다.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보니 다른 방에도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묵고 있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 한국인 같았다.  한국에서 카미노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실감이 났다.

차멀미한 여자분과 저녁을 같이 했는데 20일간 휴가를 내어 걷는단다.  가능한한 많이 걷고 싶어 하루 40km를 예정했었는데 오늘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가는데 까지 가보겠단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너무 좋아해 100번 이상 읽었고  코엘료의 번역된 소설은 다 읽었는데 ‘순례기’를 읽고 이곳을 알게되어 꼭 걷고 싶었단다.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최대한의 휴가를 내어 오게 된것이란다.  어차피 20일 안에는  싼티아고까지 다 걸을 수 없을테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을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에 같은 방에 묵은 한국 아가씨와 같이 떠난다며 인사하고 나섰는데 그 이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쌩장의 시립 알베르게는 깨끗했다.  내가 잔 방에는 침대가 6개만 있어 번잡하지도 않었다.  가격은 다른 시립 알베르게들에 비해 약간 비싼편 (10 유로) 이었지만 무료인 아침 식사도 (빵, 비스켓, 커피, 우유등) 건실한 편이었다.

 4/25 (토:  Day 1)  쌩장 – Orisson            
대부분의 카미노 프랑스 가이드 북에 첫 구간으로 나오는 프랑스 쌩장에서 스페인 Roncesvalles 까지 가는 길은 둘이 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온 길’과 차도 옆을 따라 걷는 길이다.  날씨가 아주 나쁘지 않는한 모두들 나폴레온 길을 추천한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이길은 나폴레온이 스페인을 점령할때 이용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 졌지만 실은 중세때 지금의 차도 옆으로 난 길에 자주 나타나는 강도를 피해 순례자들이 산을 넘어 다니며 생겼다고 한다.  지도상 거리는 25.1km 이지만 산을 넘기 때문에 실제 걷는 거리는 32km 라고 한다.  그래서 이 첫 구간이 카미노중 가장 힘든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구간을 이틀에 나누어 걸으라는 경험자들이 많다.  쌩장에서 8km정도 올라온 Orisson이라는 곳에 private albergue (사설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곳에서 하루를 자라고 한다.  첫날부터 무리하는 것을 피할 수 있고 또 그 사설 알베르게에서 보내는 경험이 좋다고 했다.  숙박 인원이 한정되어 예약을 권장했는데 나도 일정이 결정된후 즉시 예약을 했다.  예약은 paypal로 대금을 지불하고 나서야 효력을 발휘했다.

오늘밤 잘곳이 확정되어 있고 Orisson까지는 별로 멀지도 않아 아침에 쌩장을 구경했다.  옛날에 Basque의 수도였다는데 내가 묵은 옛 시가지로 들어가는 문, 성터 그리고 교회등을 둘러 보았다.  카미노의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 지정을 알리는 안내판과 카미노 프랑스길 지도가 문 옆에 붙어 있었다.  이곳은 스페인 순례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카미노 프랑스 길의 출발점으로 이용하고 있다.

     

  
 
Orisson 으로 올라가는 길은 포장 도로와 비포장 도로가 섞여 있었는데 경사가 비교적 완만했다.  올라가며 보이는 마을 풍경이 아름답고 평화스러웠다.  대부분 양을 기르고 있었고 소도 가끔 눈에 띄었다.  흰양 흰소들이 파란 풀밭에 방목되어 있고 흰벽에 빨간 기와지붕을 한 집들이 듬성 듬성  보이는것이 잘 어울렸다.  바쁠것 없다는 듯 한가로이 양떼를 몰고가는 아빠 뒤를 따라가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건강하게 보기 좋았다.     
 

 

올라가며 South Africa에서 왔다는 두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배낭여행을 좋아해 900km 여행을 얼마전에 끝내고 다시 카미노를 시작한단다.   Orisson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소문대로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1시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묵을 방은 침대가 12개 있었는데 일회용 침대 쉬트와 벼개 커버를 쓰고 담요도 깨끗해 보였다.  샤워는 token을 넣으면 5분간 작동되는데 그것도 단추를 누를 때마다  물이 30초 정도 나오고는 그쳤다.  물을 아끼려는 노력이 대단해 완전히 준비를 한 후에 token을 집어 넣어야 겨우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한가이 맥주를 마시며 오후를 보냈다.  Kindle에 있는 코엘료의 Pilgrimage 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을때보다는 훨씬 실감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Orisson 알베르게는 6시30분에 숙박객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다.  이곳과 500m 아래에 있는 숙소에서 묵는 사람들이 모이니 5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저녁은 pumpkin soup, braised chicken, pasta 와 디저트였는데 모두 맛있었다.  와인도 무한정 나왔다.  주위에 앉은 사람들과 서로 소개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는데 내 주위에는 덴마크에서 온 40대 여자 둘, 독일에서 온 50대 쌍둥이 형제,  50대 한국인 부부,  카나다와 미국에서 온 사람들로 다양했다.  식사를 마친후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 소개를 했는데 은퇴한 Korean American (나), 영국에서 공부를 마친 독일 청년,  Africa 에서 peace corp. 봉사를 마친 젊은 Chicago 여자 둘,  매년 일주일씩 걷는다는 50대 프랑스 부부 그룹 (금년이 7번째라는데 처음으로 스페인을 걷게 된단다),  동생이 죽어 걷기로 했다는 40대의 미국 남자, 브라질에서 온 그룹, 첫날인데 벌써 “C8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는 유타에서 온 40대 여자,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어 왔다는 71살의 캘리포니아 여자등이 자기 소개를 했다.   분위기는 아주 친근하고 우호적이었다.  대부분 카미노 첫날이어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모두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동료의식이 서로를 가깝게 만들어 주는것 같았다.  정말 기분 좋은 저녁 식사였다.

4월 26일 (일:  Day 2)   Orisson – Roncesvalles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날씨가  많이 흐려 있더니 조금 지나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Rain jacket을 꺼내입고 피레네 산맥을 계속 오르는데 비는 많이 오지 않았지만 바람이 미친듯이 불었다.  Orisson에서 고개 정상까지는 10km 정도 되는데 경사는 지리산 둘레길의 고개들에 비해 가파르지 않았다.  8km 이상 차도를 따라 올라가며 바람과 씨름하고 있을때 간식을 파는 트럭이 보였다.  바람이 막히는 아주 몫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순례자들에게 잠시 쉬어갈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Hot chocolate을 사서 마시며 쉬었다.   그곳에서 어제 죽기전에 카미노를 걷고 싶었다고 자기 소개를 한 71살 캘리포니아에서 온  Malia를 만났다.  알고보니 Malia는 내가 사는 곳에서 15마일 쯤 떨어진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렇게 비오고 바람불고 추운데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판초로 비막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바람이 세서 판초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배낭도 내것보다 컸다.  대단한  여장부였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인데 양 사료용인듯한 목초를 기르는 밭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자주 눈에 띄었다.  조그만 규모가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다랭이 논을 생각나게 했다.  조금이라도 쓸 수있는 모든 땅을 활용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동서양에 차이가 없어 보였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지 카미노 표시와 함께 Navarra지역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해발  1300m 가 넘는 이곳은 짙은 구름에 덮혀 시야가 20-30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카미노 피레네 산맥 고개 정상 Col de Lepoeder (1450m) 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Roncesvalles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조금 멀지만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쉬운 길과  가파른 짧은 길이 있는데 날씨도 좋지않아 쉬운 길을 택했다.

  

 

Roncesvalles 의 알베르게는 수도원을 개조해 만들었다.  기숙사 형태로 한칸 (cubicle)에 이층으로 침대 4개가 있다.  모두 184개의 침대가 있는 큰 시설이다.  처음 배정 받은 침대가 2층이어서 다시 사무실로 가서 아래층으로 바꾸었다.  비수기인 4월말인데도 150명도 넘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묵는것 같다.  스페인 순례자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카미노를 시작한다.  접수하는 곳에 wi fi가  있어 가족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메쎄지를 보내고 가족 여행 싸이트에 사진 몇장을 올렸다.  Facebook에도 올리려고 했지만 wi fi가 힘이 없어 실패했다.

저녁 6시에 있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4명의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는데 주례는 40대 신부가 하고 거동이 힘들 정도로 연세가 많은 신부와 60대로 보이는 두분의 신부가 거들었다.  이 지역의 상주 인구가 30명 정도라니 일요일이였지만 미사에 참석한 대부분이 순례자일 것 같다.  200명도 넘는 사람이 참석했는데 영성체하는 사람은 반도 안되었다.  카미노를 걸으며 참례한 첫 미사여서 감회가 깊었다.  제2독서를 3번 읽었는데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마지막은 지역 언어인 Basque어 일거라 추측했다.  미사끝에 순례자 강복이 있었는데 오늘 알베르게에 등록한 사람들의 모국어로 해주었다.  한국어도 물론 들어 있었는데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이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10유로를 주고 산 식권으로 식당에서 먹었다.  사람들이 많아 식사 시간을 두 차례에 나누어 제공했다.  4명이 앉은 내 테이블에는 36살의 일본 청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직장 시작하기전에 카미노를 걷는다는 37살의 독일 청년, 그리고 32살의 독일 아가씨가 같이했다.  이 독일 남녀는 걸으며 여러번 지나쳤고 어제 Orisson 알베르게에서 자기 소개를 할때도 같이 있어 함께 여행을 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카미노에서 만났다고 한다.  일본 청년은 HP Japan에서 일하고 독일 청년도 전공이 Computer Science 이고, 나도 computer system 감사로 많은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IT, 카미노, 여행, 역사, 문화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차례 식사 시간이 되어 일어났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같은 cubicle에서 자게 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침낭으로 들어 갔다.  브라질, 독일, 프랑스에서 온 청년들이다.
  
4월 27일 (월: Day 3)  Roncesvalles – Zubiri  

아침 6시가 되니 알베르게 직원이 모두 깨운다.  그전부터 이미 사람들이 화장실을 쓰기 시작했는데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크게 나서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어제밤 잘 자서 기분이 좋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 줄기가 굵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변할지 몰라 비옷 상하를 다입고 장갑까지 끼고 나왔다.  아직 약간 어두웠지만 불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카미노 시작길이 확실치 않아 젊은 커플에게 물어 보았다.  키큰 카나다 여자와 키작은 스페인 남자였는데 이들과는 그후 자주 만났다.  걷기 시작해 얼마 안되어 큰 나무 뿌리를 밟고 지나다 미끌어졌다.  카미노를 시작하고 사흘째인데 어쩐지 아직도 정신적으로 나사가 빠진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조그만 실수들이 여러번 있었는데 끝내 넘어지는 사고까지 생긴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첫 배낭여행이라서 처음부터 정신이 잘 조여진 상태였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 다친데는 없었다.  정신이 버쩍 드는 계기가 되었다.  

3km 정도 걷고 도착한 Burgueta에서 커피와 크로쌍으로 아침을 먹고 잠시 쉬었다 다시 4km 걷고 도착한 Espinal의 카페에서 smoothie로 보충했다.  Roncesvalles에는 아침 먹을 곳이 없었지만 조금 걸어 나온 곳에 먹고 쉴 곳이 계속 있어 편했다.  Espinal 카페에서는 어제 알베르게에서 얼핏 보았던 한국 아가씨 둘이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같이 왔느냐고 물으니 쌩장에서 만났단다.  혼자 오더라도 또래의 동행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보였다.  

걷는 동안 계속 가랑비가 왔다.  그래도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 괜찮았다.  오늘 목적지인 Zubiri까지의 마자막 3.5km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 길이 많이 있었다.  아침에 넘어진 경험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스틱이 균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Zubiri에는 사설 알베르게가 여럿 있었는데 어제 묵은 수도원 알베르게가 너무 크고 번잡해 오늘은 조그만 곳을 가고 싶었다.  사설 알베르게  ‘El Palo de Avellano’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여럿이 자는 방과 2인실등이 있었다.  6유로에 빨래를 해서 말려 준다기에 밀린 빨래와 비가와서 안마른 것까지 모두 맡겼다.  Wi fi 성능도 좋아 어제 실패한 Facebook posting 도 하고 새로 하나 더 올렸다.

이곳도 저녁을 같이 먹는데 내 테이블에는 연인인 한국 젊은 남녀,  21살의 이스라엘 아가씨, 60대 후반의 미국인 Mary, 직장을 그만 두고서라도 카미노에 오려고 했는데 장기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Indiana 에서 온  40대 후반의 Steve와 같은 여행 팩캐지로 온 5주전에 은퇴한 Paul, 그리고 60대의 프랑스 남자가 같이했다.  프랑스 남자외에는 모두가 영어로 소통할 수 있었다.  프랑스 아저씨는 내 앞에 앉았는데 다른 사람이 못 알아듣는 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 불어로 이야기를 하였다.  앞에 앉은 내가 응답해줘야 될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아이폰에 있는 카미노 프랑스 길의 사진까지 동원해 알아들었다고 생각한 바로는 그가 사는 곳이 프로방스 지역이고  프랑스 Vezelay에서 시작해 40일간  걸어왔고 내일 Pamplona 까지 가서 카미노를 마칠 예정이란다.  그리고 Pamplona 는 Basque 지역이고 스페인에서는 한동안 Basque 민족이 폭력적인 독립운동을 했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정이 들었다.  좋은 사람이란 것이 느껴져 같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한국 젊은 연인들은 사람들이 카미노를 하는 이유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단다.  Mary와 인터뷰 한 후에 나와도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져 다음에 만나면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4/28 (화:  Day 4)   Zubiri - Pamplona   

날씨가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아침 나절에 잠깐 비가 뿌려 혹시 몰라 rain jacket을 꺼내 입었다.  Zubiri에서 Pamplona는 평지길이다. 처음으로 말을 기르는 목장을 보니 신기했다.  말 목장을 볼때마다 어떤 용도로 말이 쓰여질까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데 물론 낯익은 얼굴도 많이 있었다.  Larrasoana를 지나  약간 언덕진 길을 올라 가는데 어린애 손을 잡고 걷는 가족의 뒷 모습이 보였다.  Teenage 아이들과 걷는 가족은 가끔 보았지만 어린애와 걷는 경우는 처음이었는데 보기가 좋았다.  속으로 카미노를 잠깐씩 할 수 있는 스페인 가족이려니 생각하며 옆을 지나치며 카미노 걷는 사람들의 통상 인사인 “Buen Camino” 라며 말을 붙였다.  돌아 보는 가족은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30대 후반의 성실하게 보이는 부부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걷고 있었다.  남자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아이는 학교를 빠지며 왔단다.  아이가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가능하면 캠핑을 한단다.  그러고 보니 부모의 배낭 크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이가 곧잘 걷는지 한 10분 정도 쉬고 나서 다음 마을에 도착하니 벌써 와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Pamplona를 벗어난 곳에서도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어린애를 데리고 걷는 카미노가 어찌 되었을지 가끔 궁금했다.

  

Irotz를 지날때 카미노 길에서 벗어나 Zabaldika에 위치한 San Estaben 성당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성당은 성심 수녀원 (Society of Sacred Heart) 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수녀님이 안내를 해 주고 있었다.  잠시 성당에 앉아 기도를 하고나니 조그만 종이를 주며 나의 염원을 적어 붙여 놓게 한다.   그리고 종탑에 올라가 이곳 Navarra 지역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종을 울리면서 나의 염원을 보내라고 하였다.  힘차게  종을 쳤다.  이성당은 알베르게도 운영하는데  시간이 맞았으면 묵어가고 싶은 곳이었다.  성당 소개문과 순례자 기도문을 여러 나라 말로 준비해 놓았는데 영어와 한국어를 가졌다.  기도문이 좋았다. 기도문의 한 구절 “이 길은 당신을 ‘단순함’에로 이끌어 줄 것 입니다.  등짐이 가벼울수록 걸을 때의 부담이 덜어지는 체험으로부터 당신은 살아가기 위해 정작 필요한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이 길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Pamplona는 쌩장에서 시작한 카미노에서 처음 접하는 큰 도시다.  인구 20만의 대학 도시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도시로 들어가는 성문에서 Orisson 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했던 한국 부부가 기념 사진을 찍어줬다.   묵으려고 했던 사설 알베르게를 찾아가니 바로 내 앞에서 만원이 되었다.  도시 입구에 있어 인기가 있는가 보다.  그곳과 반대편에 있는 둘째 순위  알베르게를 찾아 갔는데 가이드 북 지도로는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는 젊은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전혀 엉뚱한 곳을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내가 찾는 알베르게가 있는 거리 이름이 Ciudadela인데 그 사람들은 그 거리가 아니라 그곳의 명소인 Ciudadela (성터)를 가르쳐 준 것이었다.  한참을 헤매다 포기하고 마침 눈앞에 호텔이 보여 가격을 물어보니 나쁘지 않아 오늘은 호강하기로 결정했다.  


 

호텔에서 목욕과 빨래를 하고 이곳에서 해야 할 제일 큰 일을 하러 나섰다.  전화 카드를 사는 것이다.  오기 전에 알아 보니 스페인 Vodafone 에서 국내 전화 60분과 1.2G 의 data를 쓸 수 있는 카드를 15 유로에 팔고 있었다.   백화점에 있는 Vodafone 영업소를 찾아가 전화 카드를 사서 내 아이폰에 넣었다.  Data가 있으니 wi-fi가 안되는 곳에서도 카톡으로 메쎄지도 주고 받고 전화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전화는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하는데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중심 광장,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뜬다” 라는 소설에 소개되 유명해진 7월에 Bull Run 을 하는거리, 대성당등을 둘러 보았다.  대성당은 순례자에게 입장료 활인을 해 주었다.  

 

저녁은 Basque 지역에서 잘하는 pintxos (tapas) 를 먹기로 하였다.  옛 시가지에 있는 Bar 들이 pintxos 를 잘 한다고 하여 그 거리를 돌아 보았다.  가이드 북에 추천된 집이 그중 제일 나아 보였고 먹고 나서 실망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 가는데 조그마한 서점에 사람들이 빼꼭이 들어 차있다.  밖에 붙은 포스터로 추측하건데 저자가 자신의 책 소개를 하는 것 같았다.  인구 20만 소도시의 조그만 책방에 가득찬 독자들, 보기 좋은 광경이었다.

4/29 (수:  Day 5)  Pamplona – Obanos   

7시까지 잘 자고 일어나 짐을 싼후 밖에 나가 아침을 먹었다.  아직까지는 카미노의 아침 식사가 마땅치 않다.  아침 메뉴로 파는 것이 크로쌍과 커피 (café con leche) 인데 2-3일 먹고 나니 물린다.  잼을 바른 토스트를 좋아 하는데 아직은 파는 곳을 보지 못했다.  마켓에서 과일, 토마토, 아보카도등을 사다놓고 아침으로 먹는 것이 오히려 좋을듯하다.  

9시쯤 호텔을 나와 시내를 벗어 나는데 커다란 대학 캠퍼스가 보인다.  이 대학이 Pamplona를 대학 도시로 만드는가 보다.  오늘은 790m 고개를 (Alto del Perdon) 넘는데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지 않았다. 고개 정상을 2.4km 남겨둔 Zariquiegui에서 점심을 먹을때 71살 여장부 Malia를 만났다.  둘쨋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때 잠깐 이야기 한 후에도 몇번 걸으며 만났지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자전거 동호인들과 지금 Barcelona에 와서 자전거를 타고 있고 카미노가 끝나면 가서 만날거란다.  벌써 Gaudi 의 성당을 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몇년전 딸과 Sarria 부터 Santiago까지 같이 걸었는데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을 만들었단다.  그래서 나머지 구간을 걸을 생각을 한 모양이다.  여러번 만나게 되어서인지 남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할거라고 농담한다.   젊은 남자 친구라고 하라고 정정해줬다.   어쩐 일인지 그날 이후에는 한번도 Malia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가끔 궁금했는데 아마도 나보다 먼저 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도 내것보다 더 큰 배낭을 가리키며 날이 갈수록 가벼워진다고 했었다.  


    

Alto del Perdon에는 순례자 조각이 있는데 카미노 풍경을 나타내는 사진에 많이 나온다.  모두들 그 순례자 조각의 일부분이 되어 사진을 찍는다.  나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다.

고개를 넘으니 밀밭이 많이 나타난다.  카미노를 시작해서 이 고개를 넘기까지는 곡류를 재배하는 밭을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유채화 밭이었다.  한참 꽃이 피는 시기라 노란꽃 바다를 이룬 유채화 들판을 많이 보았는데 기름도 짜고 가축 사료로도 쓸수있어 많이 기르지 않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개를 넘으니 유채는 별로 보이지 않고 밀밭이 많다.  고개를 넘으면 기르는 작물이 달라지는 것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보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면 밀밭이 파도를 치는데 홍수처럼 쏠리는 모습이 장관이고 마음을 후련하게 만든다.   

4월 29일 밀밭 파도 Video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Muruzabal에서 카미노 길을 벗어나 Eunate에 있는 8각형 성당을 보러갔다.  한 3km를 더 걸어야 하지만  내 가이드 북 저자가 (John Brierly) 카미노의 보석중에 하나라고 적극 추천하고 있는 곳이다.  성당은 조그만하고 소박했다.  8각형의 성당 건물 밖을 돌로 나즈막하게 담을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했다. 성당안으로 들어가면 제대뒤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님 상이 있다.  시원하게 올라간 돔 천정은 한곳으로 빛이 잘 들어 오도록 되어 있어 간결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기도나 묵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12세기에 건립되었다는데 지금은 밀밭가운게 뎅그라니 이 성당만 남아있다.  이 성당은 중세때 순레자들을 보호해 주며 대단한 세력을 떨치다가 하루 아침에 망해버린 Templar 기사단이 세웠다는 설이 유력하다.  Templar 기사단은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에게는 낭만의 대상인데 나중에 그 기사단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성을 지날때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Eunate성당을 보고 Obanos에 오니 5시가 넘어  오늘은 이곳에서 자기로 했다.  가이드 북에 Casa Rural 이라고 표시 된 곳을 찾아가니 잠겨있어  전화를 했다.  주인 여자가 나오는데 영어는 전혀 못했다.  눈치를 보니 내가 오랜만에 온 손님인 것 같다.  가격을 물었는데 그 대답을 잘 알아 듣지 못해 가만히 있으니 가격이 내려간다.  그곳에 묵기로하고 숙박비를 지불하였다.  가이드 북에는 Casa Rural 이 Bed and Breakfast 라고 되어 있는데 이집은 취사 시설이 있고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나중에 카미노를 걸으며Casa Rural,  Pension, Hostal이라고 된 곳에 묵어 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마을 구경을 하다 마켓이 있어 몇가지 사서 저녁과 내일 아침으로 먹기로 했다.  

 Obanos는 역사가 깊은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Aquitaine의 공주 Felicia 가 싼티아고 순례를 한 후 자기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이곳에 교회를 지어 병든 순례자들을 돌보기로 결심했단다.  그녀의 오빠가 아버지의 명을 받고 공주를 데리러 왔다가 말을 안 듣자 화가 나서 동생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제 정신이 든 오빠는 로마로 가 교황에게 용서를 빌었다.  교황은 그에게 보속으로 싼티아고 순레길을 걸으라고 명했단다.  그런데 순례를 마치고 돌아 오는 길에 오빠도 이곳에서 여동생과 똑같은 충동을 받아 모든 것을 버리고 동생이 지은 교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교회는 (San Juan Basustia)  아주 아름다웠다.  입장료를 내고 본 Pamplona의 대성당보다  더 좋았다.  성당에 앉아 있는데 그곳 신자가 옆의 소성당에서 미사가 있다고 하여 참례했다.  남미 원주민 같은 젊은 신부님이 미사 집전을 했는데 동네 노인 열댓명이 있었다.  젊은 사람은 한국 여자 순례자가 유일했다.  주중 미사인데 헌금을 걷는 것이 색달랐다.

 

미사후 숙소에 들어와 저녁을 잘 먹고 들어와 침대에 누우려는데 목이 갑자기 아파온다.  감기가 들어 오는 것 같다.  집에서도 잘 안걸리는 감기를 이곳에 와서 걸리다니 막막해진다.  약을 먹었는데도 밤새 목이 아파 고생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아프면 얼마나 난처할가를 많이 생각한 밤이다.  그래도 약 덕분인지 잠을 많이 자고 나니 훨씬 기분이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 되는 알베르게에서 묵지 않은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4./30 (목:  Day 6)  Obanos – Estella   

아침은 어제 사온 과일, 토마토, 아보카도로 했다.  커피와 크로쌍보다는 훨씬 좋았다.  몸 상태가 좋아 졌지만 그래도 오늘은 조심해서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나섰다.  Puenta La Reina 의 십자가 성당에 들려 오늘의 지향을 바쳤다.  이 곳의 십자가는 14세기에 만든 Y자 모양의 특이한 십자가다.  중세때 독일의 순례자가 가져 왔단다.

 

이 마을의 이름이 된 왕비의 다리는 (Puenta La Reina) 점점 늘어나는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강을 건너기를 바라며 왕비가 만들어 준 다리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6개의 교각으로 받쳐진 다리는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카미노 경치 사진중에 많이 나오는 곳이다.

   

Puenta La Reina에서 Maneru로 올라가는 언덕이 은근히 길었다.  이 지역으로 오니 포도밭이 많이 눈에 띈다.  Cirauqui에서 점심을 먹으러 카페에 들르니 며칠전부터 카미노에서 가끔 만나던 60대 말의 한국인 부부가 있다.  부천에 사는 이 부부는 75일 정도 예정으로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단다.  이미 파리와 루루드를 거쳐 카미노에 왔고 카미노가 끝나면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을 여행할 예정이란다.  부부가 모두 건강해 보였다.

Lorca에 오니 스페인 남편과 한국 여자가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었다.  빠에야를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밥이 그리운 동양인들에게는 인기있는 메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식사 시간이 아니어서 병물을 사서 잠깐 쉬며 주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순례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체력과 시간이 괜찮을 것 같아 Estella까지 가기로 했다.  평평한 밀밭 사이로 걷는 길이 많은데 Martin Sheen이 싼티아고 순례길을 주제로 만든 The Way라는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의 길들이었다.

 Estella에 와서 혼자 잘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정하려고 펜션에 전화를 걸었다.  감기때문에 자유롭게 잠을 잘 곳을 원하는데 알베르게는 그럴 수가 없다.  영어를 못하는 주인과 어렵게 스페인어로 통화를 하여 방이 있다는 것과 숙박비를 알아냈다.  물어 보는 것은 미리 준비를 해서 괜찮은데 상대방이 대답을 있다 없다로 간단히 하지 않고 길게 설명을 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한다.  특히 숙박비는 끝자리가 0이나 5로 끝나지 않으면 헤메게 된다.  카미노에서 숙박업을 하는 주인들은 외국 손님을 많이 상대할텐데 간단한 영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펜션은 오래됐지만 깨끗했다.  이곳도 손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Estella는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인구 14,000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인데 중심 광장에는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 놀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노는 아이들, 아이들을 눈여겨 지켜 보고 있는 부모들, 그리고 카페에 앉아 맥주나 커피를 마시고 있는 노인들  3세대가  함께 있는 흐믓한 광경이었다.  그 다음날 (금요일)이 May Day 휴일이어서 연휴를 즐기는 주민으로 더 번잡한 것 같았다.

스페인 사람들을 주로 상대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는 노력이 필요하다.  메뉴가 스페인어로 되어 있고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영어를 못한다.  그래도 이런 레스토랑들이 괜찮은 곳이 많기 때문에 사전을 찿아가며 메뉴를 짐작하고 몇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점심 메뉴는 대개 오후 1시 부터 제공하고 저녁은 전통을 고집하는 곳은 8시30분, 현대화 된 곳은 7시 부터 시작한다.  중심 광장에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역시 노력이 필요한 곳이었다.  아이폰에 있는 사전을 보고 대강 메뉴를 알아 보고 술을 써브하느라 바쁜 웨이터가 틈이 나기를 기다려 준비한 스페인어로 저녁 식사 시간을 물어 보니 7시라고 손가락 까지 보이며 알려 준다.  밖의 테이블에서 기다리면 된단다.  옆에서 관심있게 지켜보던 두 순례자가 나와 같은 처지였는지 밖으로 나오면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한다.  Lisa와 Gale은 Australia에서 왔는데 카미노에서 만나 같이 다니고 있었다.  Lisa는 초등학교 교장인데 3개월 안식월을 받아 라오스와 캄보디아 학교 견학을 하고 카미노에 왔고 Gale은 남가주에서 태어난 미국인인데 Australia에서 25년째 살고 있단다.  둘은 같이 펜션이나 호텔에 묵고 재미없는 구간은 버스를 타고 건너 뛰고 큰 도시에서는 2일씩 묵으며 관광하고 배낭은 다음 숙소로 부치면서 편하게 카미노를 여행하고 있었다.  첫날 Orisson에서 묵었는데 한국의 초등학교 합창단 동창들이 저녁식사후 노래를 불러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합창단원들을 만났는데 성당 중고등부 합창단 동창이었다. 13명이 단체로 카미노를 걷고 있었다.)  기분 좋게 저녁을 같이 먹고 기념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5월 1일 (금:  Day 7)  Estella – Los Acros  

아침에 일어나 어제 저녁에 못 들린 성 베드로 성당을 둘러 보았다.  계단을 한참 오른 곳에 위치한 성당은 옛날 이곳 Navarra 왕들이 대관식을 했던 곳이란다.  성당은 필요시 요새로 쓰일 수 있도록 지어졌다.

Estella의 교외 주택가를 벗어 나면서 포도밭이 많이 눈에 보인다.  이 지역이 Navarre 와인의 주산지 인가 보다.  이 지역의 큰 양조장이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 와인 분수대를 설치 하였다고 가이드 북에 나와 있었다.  어제 저녁 먹으면서 화제가 되어 모두들 공짜 와인을 시음하겠다고 별렀었다.  막상 와인 꼭지를 틀으니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속았다는 기분으로 나오는데 해명서가 붙어 있었다.  와인 도둑이 하도 많아 중지 했다고 써 놨다.  중지 된지가 일년 이상 되었는데 2015년 개정판 가이드 북에 아직 반영이 안 되어 있었다.  와인을 시음하고 싶은 사람은 그 옆의 와인 뮤지엄에 들려 1유로를 내고 사서 마시란다.  

정오경에 Villamayor del Monjardin에 도착했다.  종탑이 예쁜 성당이 있어 안으로 들어 가니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당안은 어제 Estella의 대 광장처럼 아이, 어른, 노인등 모든 연령층이 가득차 있었다.  유럽의 성당에서 이렇게 모든 세대가 골고루 가득한 미사를 보기는 처음이다.  집전하는 신부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애띤 얼굴의 동양계 신부다.  스페인어가 모국어 같다.  영성체때 가까이 보니 완전 한국 사람 얼굴이다.  영성체가 끝나고 파견을 하기전에 모든 신자가 다시 나가 신부님이 들고 있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그 옆에 서있는 자매님의 바구니에 봉헌을 한다.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은 성주간에 했던 기억만 있는데 오늘이 무슨 특별한 축일인지 아니면 May Day 미사를 이렇게 하는건지  모르겠다.  십자가 상은 미사후 성당 벽에 다시 잘 모셔 둔다.  신부님은 이곳에 상주를 안 하는지 미사가 끝난후 챙겨 나가면서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내부를 구경하는 나에게 “Buen Camino”라고 인사하며 떠난다.  표정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성당은 Eunate의 성당처럼 간결하고 밝았다.

   

  미사를 끝내고 나오니 둘쨋날 Roncesvalles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은 독일 아가씨가 있어 인사했다.  오늘도 역시 혼자다.   첫날 부터 여러번 마주쳤는데 항상 영국에서 학위를 한 독일 청년과 같이 다녀 함께 카미노를 왔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테이블에서 카미노를 걸으며 만난 것을 알았다.  젊은 남녀가 카미노에서 만나는 경우는 자주 본다.  내가 본 한국 젊은 여자들은 서로 의지하며 걸을 동성의 짝을 찾는 것 같은데 서양 젊은이들은 동성 보다는 이성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같이 걷는 이 두사람을 처음 사흘동안 자주 만났는데 행복해 보였다.  저녁 테이블에서도 남자가 많이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셋째날 Zubiri에서 조용한 곳에 묵고 싶어 사설 알베르게에 들어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둘이 들어 왔다.  반가워하기 보다는 어쩐지 겸언쩍게 인사를 받았다.   나중에 보니 내가 묵은 여러명이 자는 방에서 묵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후 Zarquiegui에서 점심을 먹는데 그 아가씨가 혼자 있었다.  표정이 별로 밝아 보이지 않았다.  점심후 길에서 만났는데 자기가 감기에 걸려 상태가 좋지 않다고 먼저 말한다.  어제 잘 잤냐고 물으니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밤은 잘 자고 많이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해줬다.  오늘 보니 조금 회복되어 보인다.  그 아가씨는 착하게 생겼는데 독일 사람답지 않게 살이 쪄 카미노 걷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다 시작부터 제비를 만난 것 같다.  카미노에 제비 (butterfly) 가 있다는 경고는 카미노 동호회 (American Pilgrims on the Camino) facebook에 가끔 나왔었다.  사람의 됨됨이가 가방끈하고 전혀 상관 없는 것은 동서양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곳이 점심 먹기에는 좋은데 시장기가 없어 그냥 떠나기로 했다.  가이드 북을 보니 6km 정도 가면 이동식 카페가 있다고 하여 그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다.  포도밭과 밀밭을 가르며 나있는 카미노 길에 점점히 박힌 순례자들이 보인다.  비가 오락 가락하여 비옷 상의와 하의를 입었다 벗었다 했는데 바지는 배낭에 다시 집어 넣고 상의를 말린다고 배낭에 묶고 걸었다.  가끔 확인을 했는데도 얼마 있다 자전거 순례자가 내 비옷 상의를 내밀며 네것이냐고 묻는다.  그 사이 떨어진 모양이다.  많이 고마웠다.  

Los Acros의 성당은 (Iglesia de Santa Maria de Los Arcos)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도 특이하고 인상적이었고 성당 입구에 있는 순례자 싼티아고상도 순례자들이 많이 찾았다.  몇가지 언어로 순례자 기도문이 써있고 봉헌초가 구비되어 있어 많은 순례자가 이용하고 있었다.
     

저녁으로 파에야가 메뉴에 있어 먹었는데 집에서 먹은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부실했다.  집에서 먹은 것이 요리라면 이건 그저 한끼 때운 식사였다.  그래도 오랫만에 밥을 먹어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카미노에서 파는 많은 파에야가 한 회사가 만들어서 얼려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냥 오븐에 넣어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맛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저녁은 이곳 시립 알베르게에서 자원 봉사하는 벨기에 여자와 같이 했다.  침대 72개가 있는 시립 알베르게는 벨기에의 네델란드계 사람들이 (Flemish) 와서 자원 봉사를 하는데 2주간  봉사를 한단다.  그런데 본인은 아직 카미노를 걷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은 벨기에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는데 내일쯤 도착할 것이란다.  시립 알베르게에 한국인이 많이 묵는데 전혀 말썽 없고 모범적이라고 칭찬이다.

  5월 2일 (토:  Day 8)  Los Arcos – Viana  

이곳에서 Logrono까지는 27.8km 인데 아직은 감기 회복을 위해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오늘은 Viana 까지 18.4km 만 걷기로 작정하고 나섰다.  길은 대부분 평평하고 포도밭과 밀밭사이로 나아 있었다.  내가 좀 늦게 출발했는지 별로 사람이 많지 않다.  프랑스에서 온 젊은 남녀와 같이 걸으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젊은 사람인데도 영어가 무척 서툴렀다.  프랑스의 자존심이 너무 센 것인지 아니면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세대가 외국인과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강 이해한 바로는 일주일 휴가 기간 동안 걷는데 오늘 Logrono까지 가서 버스로 프랑스 리옹으로 돌아 갈 예정이란다.

Torres del Rio 에 있는 8각형 교회는 (Iglesia de Santo Sepulcro) 예루살렘의 Church of Holy Sepulchre 를 본따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Eunate에 있는 8각형 교회와 마찬가지로 Templar 기사단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내부를 보고 싶었는데 문이 걸려 있었다.   보고 싶으면 전화를 하라고 푯말이 붙어 있었다.  1유로를 받는단다.  얼마나 빨리 와서 문을 열어 줄지 몰라 그냥 가기로 했다.  포도밭이 많이 보이는데 일렬로 나란히 심은 포도나무 끝자락에 장미 나무를 심어 놓은 것이 여러번 눈에 띄어 포도밭 주인에게 호감이 갔다.

Viana는 인구 4,000명으로 카미노 마을중에서는 큐모가 큰편이다.  도시에 도착하니 무슨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며 퍼레이드를 하고 있고  Bar들은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에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어 오늘 그곳에 묵으려고 했다.  그런데 축제때문에 운영을 안 한단다.  할수없이 사설 알베르게에 묵었다.  이곳은 베드로 성당의 잔재가 유명하다.  교회의 정면 부분이 남아있고 그 앞쪽의 정원을 보니 옛날 이 성당이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다웠는지 알 것 같다.

       

현재 이 도시의 주 성당은 Iglesia de Santa Maria 인데 입구와 내부가 모두 화려했다.  저녁 8시에 있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례했다. 정장을 하고 나온 동네 노인들과 순례자들이 큰 성당에 40-50명 정도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더 인상적인 것은 미사전에 묵주 기도를 바치는 것이었다.  내가 다녀본 미국 성당에선 묵주 기도를 미사전이나 후에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지금이 5월 성모 성월이어서인지 이 이후에도 여러번 묵주 기도를 미사 전이나 후에 하는 것을 보았다.   미사후 순례자 강복때에는 순례자를 일일이 불러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 성수를 뿌리고 안수 강복을 주었다.  “Buen Camino”와 “Ultrea”라고 축복하였는데 Ultrea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카미노중 여러번 들어 봤는데 내가 갖고있는 사전에선 찾아지지 않았다.  나중에 몇몇 스페인 사람에게 물어봤어도 신통한 대답을 못 들었다가 얼마후 하루에 40km씩 걷는 스페인 대학원생이 “더 멀리 더 높이”라고 알려 줬다.      

   

Viana는 옛날에 싸움이 많았는지 성벽이 높게 쌓여있고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높은 성벽에 나있는 성문을 통해 시내를 출입하게 되어있다.  높은 성벽의 위나 옆에 붙여서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는 광경이다.

  
5월 3일 (일:  Day 9)   Viana – Navarrete    (빈첸시오와 성물방 봉사자, 향심기도 회원)

카미노를 걸으며 매일 지향할 사람(들)을 정한다.  걸으며 그사람들을 생각하고 열린 성당이 있으면 잠깐 앉아 그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미사 참례를 할 수 있게되면 그사람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  오늘은 빈첸시오와 성물방 봉사자들 그리고 향심기도 회원들을 지향했다.  내일은 신부님과 사목위원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을 지향할 것이다.

어제 묵은 사설 알베르게는 3유로에 아침을 팔았다.  카미노를 걸은 후 처음으로 보는 whole wheat toast, 바게트, 커피, 우유, cereal등이 있었다.  과일이 없는 것은 섭섭했다.  Logrono 까지 가는 길은 평평했고 스페인 자치 지역이 Navarra 에서  La Rioja로 바뀌었다.  La Rijoa는 유명한 와인 지역이다.  카미노는 스페인의 자치 지역 넷을 지나는데 이제 두번째 지역에 들어 온 것이다.
   

Logrono는 인구가 155,000의 큰 도시다.  시로 들어 가는 외곽에 주말 농장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자기 밭을 돌보고 있는 주말 농부들이 보여 반가웠다.

 
   
시내로 들어가며 Kate와 Kiko를 또 만났다.  Roncesvalles에서 새벽에 출발할때 길을 가르쳐 준 키다리 카나다 아가씨 Kate과 쬐끄만 스페인 남자 Kiko는 눈에 잘 띄는 커플이다.  누군가 Kate에게 둘의 관계를 묻는 것을 들었는데 특별한 사이는 아니고 그냥 길동무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번 만났는데 항상 같이 있었고 서로 배려하는 좋은 길동무 같았다.  엊그제 만났을때 통성명을 하고 오늘 또 만나게 되어 사진을 찍었다.  우리 셋을 같이 찍어 달라고 부탁할 사람을 못 찾아 돌아가며 찍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에는 한번도 이 커플을 만나지 못했다.

 

 
 

시내에 들어가며 안내소에 들려 대성당 미사 시간과  중심지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일요일이라 미사는 자주 있었다.   미사 시간이 남아 있어 중심 광장을 둘러 보았다.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즐기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골동품 벼룩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일요일 정오 미사였지만 순례자들을 빼고는 대부분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미사후 성당을 둘러보니 제대의 뒤와 옆에 여러 모양의 성모상들이 가득하다.  대부분이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지만 예수 시신상을 아래에 둔 성모상이 있어 특이했다.  피에타의 일종인지 모르겠다. 이 이후에도 예수 시신상을 모셔놓은 성당을 가끔 보았다.  이 지역의 전통인지 스페인이나 더 광범위한 지역의 전통인지 모르겠다.  

대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조금 떨어진 San Bartolome 성당을 보러 갔다.  성당 입구가 정교하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었다.  입구도 멋있지만 돔으로 되어있는 내부에는 예수 십자상만 걸려 있어 복잡하고 화려하게 꾸며놓은 성당들보다 오히려 강한 인상을 전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것이 채워진 것보다 더 강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성당 한쪽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완성되면 다시 한번 와서 보고 미사도 드리고 싶었다.  

 

점심은 동네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는 Bar 에 들어가서  보카디오 (bocadillo) 를  먹었는데 카미노 에서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  빵도 제대로 된 것을 쓰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오니 거대한 규모의 공원이 나온다.  연휴 마지막 날이어선지 많은 가족들이 나와 바베큐를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니 포도밭이 계속이다.  La Rioja 지역이 와인으로 유명한 것이 실감났다.

   

 

Navarette로 들어오는 입구에 옛날 순례자 병원의 자리를 보존해 놓은 곳이 있었다.  그  근처에 있는 양조장 앞에 싼티아고까지 576km가 남았다는 안내 표시가 있었다.  그래도 많이 걸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Navarrete 에 도착해 시립 알베르게에 가보니 아랫층 침대가 없다고 한다.  자다가 화장실을 가기 때문에 윗층 침대에서 자면 나도 불편하고 아래서 자는 사람도 불편하게 된다.  근처에 있는 사설 알베르게에 전화하니 아래층 침대가 있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Pilgims 라는 이 알베르게는 젊은 독일인 커플이 한달전에 인수해 운영하고 있었다.  여자가 숙박객을 상대하는 리셉션 일을 하고 남자가 쿡킹을 담당하고 있었다.  여자는 카미노를 두번 걸었는데 한번은 베르린에서 부터 걸었다고 한다.  남자는 네번 걸었다고 한다.  여자는 독일인 답게 일을 확실히 처리하는 유능한 host였고 남자는 여자보다 오히려 상냥하고 음식도 잘 했다.  저녁은 숙박객이 모두 함께 모여서 먹었는데 샐러드가 눈부시도록 싱싱했다.  내가 선택한 생선 구이도 (이곳의 생선은 대부분 대구 (hake) 다)  아주 훌륭했다.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는데 독일인이 많고 (첫날 Orisson에서 만났던 쌍둥이 형제도 있었다)  이탈리아, 미국, 카나다, 프랑스인등이었다. 내 옆에 카미노를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는 이탈리아 청년이 앉았다.  예전에 싼티아고 까지 걸었기때문에 이번에는 싼티아고에서 출발해 걷는단다.  (그후 아주 드믈지만 카미노에서 마주 오는 순례자들을 볼 수 있었다. )   

입구에 오후 1시 30분에 문을 연다는 공고를 여러 나라 말로 써 놨는데 한국어가 아주 어색했다.  출처를 물었더니 구글 번역 앱이란다.  앱에 나온 번역문을 한글 font 를 찾아 프린트를 했으니 상당한 노력이었다.  제대로 번역을 해서 써 주었다.  한글 font로 프린트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 알베르게에서 묵은 경험이 좋아 동호회 페이스 북에 추천했다.

 

제1편 끝

- 기사정리및 포스팅 홍보부, 천다니엘 -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1편) -지금 보시는 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2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3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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