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재의 수요일, 십자가의 길 - 2024 2.14
(사진: 바오로의 딸 콘텐츠)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은 기독교에서 사순절의 시작, 즉 부활절의 준비를 알리는 교회력의 절기를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재를 이마에 바르고 죄를 고백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40일간 부활절 전까지 묵상하는 사순절 의미를 생각한다. 이때 사용한 재는 성지주일에 사용한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것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일부 교파(성공회, 루터교, 감리교)에서 지켜진다. 재의 수요일에 가톨릭교회에서는 미사를, 루터교와 감리교에서는 예배를,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를 봉헌하는데,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와 대한 성공회에서 '재의 수요일 예식서'를 확인할 수 있다. - 출처: 위키피디아 -
사진제공: 박미아 마가렛
재의 수요일 기원과 의미
성경에서 재(灰)는 참회를 상징한다. 구약에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자 백성들과 임금이 단식을 선포하며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 3,4 참조) 신약에서 예수님도 죄인들에게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마태 11,21)하는 일에 대해 언급했다.
유다인들에게는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후 예를 갖춰 참회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를 받아들여 사순 제1주일 전 수요일, 머리에 재를 바르는 일을 참회 예식으로 거행했다. 여기에서 재의 수요일이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재의 수요일을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사순 시기 첫날로 제정했고,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모든 신자가 재의 예식에 참여토록 권고했다.
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재는 우리가 죄를 지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된 ‘슬픔’을 상징한다. 물질이 타고 남은 잔재물인 재. 이는 인간이 지은 죄의 잔재로서, 지은 죄에 대한 ‘보속’ 행위도 기억하게 한다. ‘열정’을 뜻하기도 한다. 불로 단련 받아 자신을 모두 태워버린 재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항한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다 태우고 남은 재에는 불순물이 없다. 재를 머리에 얹는 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빚었던 처음 그때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화돼야 한다는 의미도 함축한다.
성 바오로 6세 교황 때, 교회는 재의 수요일에 금식과 금육을 실천하도록 규정했다. 신자들은 이날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야 한다. 금식은 하루 한 끼 식사만 거르면 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금식재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날까지 지킨다. 금식과 금육은 절제와 극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단식과 금육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봉헌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실천 과제도 내포한다.
-출처: 가톨릭 신문
십자가의 길 기도의 유래
사순시기 동안 교우들의 신심행사 중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것은 주님이 걸어가신 길, 즉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이다. 고통의 길이라고도 하는 십자가의 길은 초대교회 때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전설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께서도 예수 승천 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자주 걸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도 자주 이 길을 찾아 그분을 생각하고, 흠모하며, 눈물로써 기도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초기에는 오늘날과 같은 구체적인 형태나 기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한 것은 14-5세기 경부터이다.
1342년 프란치스코회가 성지에 대한 관리를 맡으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는 하나의 신심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그 장소들에 대한 신심을 증진시기는 것을 그들 사명의 한 부분으로 여겼으며, 이에 따라 더욱 대중화된 이 신심은 십자가의 길 각 처에 대한 신심에서 잘 표현되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신심은 먼저 세계 곳곳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들과 그 수도원의 성당들에서 일반화되었고, 이런 곳에서부터 근처 성당에로 확산되었다.
15-6세기에는 각 처의 숫자가 고정되지 않았으나, 1637년에 이르러서는 교황청에 의해 오늘날처럼 되기 시작하였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처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세계에 퍼져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서 특별히 사순시기에 널리 행해지고 있으며, 성당이나 그밖의 공적인 기도 장소에서도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공동으로 행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의 길은 14처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느 지역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15처를 추가하기도 하였다.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하여 부활로 끝을 맺는 이런 형태의 십자가의 길을 승인하였다.
십자가의 신심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신심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가 가지고 있는 엄격한 틀이 아니라 각 처가 기념하는 예수님의 수난 사건들을 통해 이끌어내는 기도와 묵상이다. 이 신심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광으로 기념하고, 그 안에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부활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로써 우리가 구원과 자유를 얻게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출처: 굿뉴스 (https://maria.catholic.or.kr/)
[생활성서, 1998년 3월호, 정의철 신부]
- 127 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