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이야기] 지리산 둘레길 베낭여행 - 김명환 안드레아
지리산 둘레길 베낭여행 - 김명환 안드레아(글/사진 제공)
지난해 10월에 은퇴하고 11월에 평생 처음 배낭 여행을 해보며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여행 일지도 써보았습니다. 집에와 여행 일지와 기억을 더듬어 보충을 해서 여행기를 썼습니다. 맟춤법이 많이 틀려도 이해 바랍니다. 국어는 학교때도 어려웠지만 철자와 띄어쓰기만 신경써도 되는 지금도 계속 어렵네요.
여행기를 고등학교 동창 싸이트에 올렸는데 재주 좋은 친구가 지리산 전체 둘레길과 나의 일정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내가 묵은 곳은 색갈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
Day 1 (11/11/14 화요일: 서울 - 남원 - 운봉)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운봉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주천-운봉을 1구간이라고 하고 운봉-인월을 2구간이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주천보다는 운봉이 남원에서 교통이 좋을 것 같아 운봉을 출발점으로 했다.
처음 3일은 동갑내기 사촌 덕윤이가 함께 걸어 주기로했다. 덕윤이는 나보다 7개월 형인데 우리는 육이오후에 한집에서 오랫 동안 같이 살아 정이 많이 들었다. 물론 라이벌 의식도 좀 있었지만 (덕윤이는 몰라도 나는 덕윤이가 부러운 점이 많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이고 나이가 들면서 더욱 편안하게 서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오전 11시 30분에 고속 터미날에서 만나 남원으로 가기로 했는데 덕윤이는10시50분부터 터미날에서 전화를 걸기 시작해서 어디에서 만날지, 남원행 버스시간, 표구입등을 챙겼다. 우리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이었다.
남원에 내려 지리산 둘레길 인월 쎈터에 전화해서 운봉의 민박집 전화 번호를 얻었다. 모두 5곳이었다. 처음 전화한 곳은 방이 없다고 하여 두번째 통화한 갑을 식당/민박을 찾아 짐을 풀었다.
읍의 규모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는 운봉읍이 꽤 크다고 생각했다. 상점도 많이 있고 농협 하나로 마트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산청, 하동, 구례등 다른 읍들을 보고 난 후에는 운봉읍이 별로 개발되지 않었음을 깨달았다.
저녁은 민박집 식당에서 김치 찌개를 먹었다. 덕윤이가 특별히 주인 아줌마에게 고기 많이 넣고 잘 해달라고 주문해서인지 푸짐하고 맛이 있었다. 덕윤이는 자기와 같이 걷는 동안은 나에게 10원 한장도 못쓰게 하겠다고 별렀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와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나누던 이야기를 계속하다 잠이 들었다. 덕윤이는 은행원이시던 아버지 (나의 고모부) 보호아래 편안하게 성장할수 있었을 텐데 육이오 전쟁때 아버지가 납북을 당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을 하며 컸다. 그 고생의 정도가 내가 알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내가 엄청 코를 골았다고 덕윤이가 놀리듯 불평한다. 어젯밤에 정신없이 잠을 잔 것 보아 틀림없다. 나는 속으로 간접 흡연 영향과 퉁치자고 했다. 덕윤이가 창문을 열고 조심해서 피운다 해도 비오는 추운밤에 연기가 밖으로 퍼져 나가 주지 못하고 방안으로 자꾸 되돌아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이틀 밤은 덕윤이가 손해 봤다. 민박집들이 모두 집안에서 담배를 금했기 때문이다.
갑을 식당/민박 (평점 3.0: 아주 좋음 5 아주 나쁨 1 가격: 보통 = 30,000원)
Day 2 (11/12/14 수요일: 운봉 – 인월 - 중황마을)
지리산 둘레길 걷기는 논뚝길에서 시작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꽤 쌀쌀해 단단히 챙겨 입고 비옷으로 무장하고 걸으니 따뜻하고 편안했다. 그전 일요일 고등학교 동기 또래 산행에서 병준이가 준 통자루 반다나로 목을 덮으니 바람도 막고 포근했다. 아직 둘레길 표식에 익숙치 않아 길 바닥에 써있는 방향을 못봐 대덕 리조트 근처에서 큰 차도를 따라 한 100미터쯤 잘못가다 아닌 것 같아 되돌아 왔다. (둘레길 표식은 장승형 이정목과 길 바닥의 페인트 표시가 주종인데 대체로 잘 되어있는 편이다. 남원시와 산청군에 있는 구간들은 훌륭한데 하동군, 구례군으로 오면서 점점 나빠졌다. 그외에도 산악회에서 달아논 리본이 많은 도움이 됬다.)
대덕 리조트를 지나 인월로 가는 고개길은 대부분 폭 1미터 정도의 오솔길이고 쭉쭉 뻗은 소나무, 노랗게 물들어진 전나무, 물이 많은 계곡, 부드러운 앞산의 등선등 모두 정이 가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여 시계는 길지 않어도 비안개에 들락거리는 먼 산봉우리들도 운치가 있었다. 야외 수업을 하는지 중학생 한 무리가 왁짜지껄 하면서 지나간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이런 환경에서 만나는 것이 신선하고 흐뭇했다.
지리산 둘레길 인월센터에 들려 민박집 리스트를 받았다. 열심히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여직원이 주천에서 회덕간의 둘레길이 보수공사로 폐쇄되었다고 알려주어 운봉에서 시작하기를 잘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인월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나섰다. 오늘 금계까지는 도착 못 할 것 같은데 리스트를 보니 중간에 민박집이 많아 보여 잠자리 걱정은 안하고 걸어도 될 것 같다 . 서너개의 작은 고개를 넘어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등고개가 3.4Km 남었다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 깨끗해 보이는 민박집이 있어 묵었다. 대구에서 왔다는 청년이 이미 묵고 있었는데 같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재미가 괜찮았다. 민박의 좋은 점 하나가 다른 숙박객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임을 알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이후에는 그럴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 비수기여서인지 다른 숙박객이 없었다.
주인 아저씨는 예전에 건축업을 하다 이 집을 손수 지어 펜숀/민박업을 하고 있는데 100% 황토집이란 자부심이 컸다. 시멘트 블럭 대신 황토로 된 블럭으로 집을 지으면 황토집이 된다는 간단한 사실을 주인 아저씨에게서 처음 알았다. 나중에 황토 블럭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단단한 것이 어떻게 황토만으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맛있는 된장 찌개로 저녁을 만들어 줘 잘 먹고 바닥이 잘 덮혀진 방으로 들어왔다. 목이 칼칼하고 기침이 조금 있어 감기 예방약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래랑 머루랑 펜션/민박 (평점: 3.5; 가격: 약간 비쌈)
Day 3 (11/13/14 목요일: 중황 마을 – 금계 – 동강)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약간 내리고 있었다. 대구 청년이 신이나서 알려 줘서 창밖의 눈을 보았지 그렇지 않았으면 밖을 볼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여유를 갖고 지금 여기를 바라보는데 익숙해지려면 아직 한참 더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도 날씨가 쌀쌀해 중무장을 했다. 중황리에서 동강까지의 경치가 참 좋았다.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바뀌는 등구재에서 보는 전망도 일품이고 등구재를 지나 금계로 가는 길에서는 멀리 보이는 지리산 줄기들과 가까운 곳의 단풍들이 잘 어울리며 시야에 들어왔다. 지리산 줄기들의 등선은 부드러운 느낌을 줘서 정감이 더 간다. 날씨가 흐려 뚜렷하지는 않지만 먼 곳의 천황봉과 높은 봉오리들은 눈에 덮여 있었다. 단풍도 절정이 지났다고 하지만 만족하고도 남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이 정겨웠다. 그러나 언덕을 깎어 만든 다랭이 논을 보면 옛날에 그 마을에 사신 분들의 삶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금계에서 동강 (4구간)은 처음 용유담까지는 강을 따라 나있는 차도를 따라 걷는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인도가 따로 없었다. 다행이 차량 통행은 많지 않았다. 용유담에서 동강 까지는 마지막 부분의 내리막 길 구간이외에는 대체로 완만하고 모두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 별 특징이 없었다. 첫날에는 못 느꼈던 배낭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집을 나올 때 물통에 물을 채운 내 배낭의 무게는 8.8Kg 이었다. 내년 4월에 싼티아고를 걸으려고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 지고 갈 물품을 그대로 챙겨서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아무래도 1Kg 정도는 줄여야 할 것 같다. 덕윤이가 무릎 때문에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부터 스틱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그 도움을 받은 것 같다. 스틱 하나를 처음부터 줬으면 좀 달라 지지 않았을가 하고 후회했다.
동강에 들어가는 길가에 붙어있는 광고를 보고 유키 민박에 전화하니 주인 할아버지가 마중 나와 안내했다. 딸 부자인 할아버지는 둘째 사위가 키가 커서 유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민박 시설을 갖추는데 많이 애썼다며 사위 별명을 따서 민박집 이름을 지었단다. 방, 화장실, 이부자리등이 깨끗하고 부부가 정성을 다해 민박업을 하는 것이 보였다. 민박의 장점들을 느끼게 하는 기분 좋은 체류였다.
유키민박 (평점: 4.0; 가격: 보통)
Day 4 (11/14/14 금요일: 동강 – 수철 – 성심원)
오늘 덕윤이가 서울로 올라갔다. 마침 함양장이어서 민박집 주인이 장에 가는 길에 태워 주기로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출발했다. 동강에서 3Km 정도 떨어진 산청 함양 사건 추모 공원까지는 차도를 걸어야 했다. 신경은 쓰이지만 이제는 약간은 익숙해졌고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추모 공원에 도착하기 수백 미터전 차도옆의 조그마한 터에 추모탑이 세워져 있고 산청 함양 사건을 설명 해놨다.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상기시킨다. 추모 공원은 규모가 상당했는데 사건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모 공원을 지나 상사 폭포까지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좁은길인데 걷는 맛이 좋았다. 계곡의 물소리와 꽤 가파른 좁은길을 오르는 긴장감이 잘 조화되어 기분 좋게 힘들었다. 폭포를 지나 산불 감시소까지 오는 고갯길은 낙엽이 수북이 싸여 밟으며 걷는 소리가 귀에 즐거웠다. 산불 감시소는 물론 사방으로 전망이 좋은 곳에 있었는데 사람의 기척을 전혀 못 느꼈다. 그 옆에서 잠깐 쉬고 일어 나려는데 조그만 창문이 열리며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약간은 허를 찔린 것 같고 얌전히 쉬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서 일하시는 분은 출퇴근만 해도 하루 운동량은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 갔다.
수철에서 성심원까지는 오르막이 별로 없는 편안한 길이다. 대부분이 강을 끼고 걸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지리산 둘레길 산청 쎈터에 들려 산청 구간 민박 리스트를 얻었다. 안내원은 성심원이 오늘의 도착지로 좋을거라며 성심원에 대해 설명해줬다.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한센인 요양 시설로 아직도 나이 많은 예전 환자분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성심원으로 걸으며 리스트에 있는 수사님께 전화해서 숙식하고 싶다고 예약했다. 리스트에 펜으로 써 놓은 숲길이라는 전화 번호도 있었는데 수사님께 예약했으니 됬으려니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사단 법인 숲길이 성심원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방은 많아 문제가 없는데 식사룰 성심원 주방에 미리 주문해야 한다는데 마감 시간이 지났단다. 다행이 여분이 있다하여 나는 괜찮았는데 조금 늦게온 두 청년은 택시를 타고 마을애 나가 식사를 해결해야 되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숲길 사무소는 숙박객의 쉼터로도 쓰이는데 와이파이가 있어 오랬만에 메일도 보고 패북에 사진도 몇장 올렸다. 두 사람이 일하고 있었는데 모두30대 중반 정도로 한사람은 요가 선생이고 다른 한사람은 한국 전통 명상을 한다고 했다. 한국 전통 명상을 설명하다 내가 천주교 신자임을 알자 기독교의 명상인 향심기도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침 내가 해오고 있는 기도이므로 한참 같이 대화를 나누었다.
성심원 게스트 하우스 (평점: 3.5; 가격: 약간 쌈. 객실은 깨끗하고 따뜻했음. 단지 객실은 이층에 있으나 남자 화장실은 일층에 있고 공동 샤워실 구조가 약간 불편했음)
Day 5 (11/15/14 토요일: 성심원 – 운리 - 백운 계곡 – 백운 마을)
성심원에서 아침 7시 미사를 봤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은 연세가 아주 많으신 외국 신부님이신데 아마도 이곳에서 반평생 이상을 보내셨을 것 같았다. 70-80명이 참석한 미사에는 한센병을 앓으셨던 분들이 여러분 눈에 띄었다. 모두 곱게 나이드신 것 같았다. 1959에 이곳에 부지를 매입하고 자리 잡을 때 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해 낮에는 산속으로 피신했다가 밤에 몰래 내려와 호롱불도 켜지 못한 채 잠을 청해야 했다고 하니 모두 아주 어려운 시절을 보내신 분들이리라. 지금은 한센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없으니 성심원은 새로운 미션을 찾고 있을 것 같다.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다가 간단한 예식을 목격했다. 아마도 그곳에 사시다가 돌아 가신 분을 납골당에 모시는 것 같았는데 가족과 수녀님이 조촐하지만 엄숙하게 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성심원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을 4km 정도 가니 멋진 계곡이 나타났다. 징검다리가 놓여진 계곡 주변의 경치가 좋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베낭을 벗고 앉아 10여분을 쉬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곳부터 웅석봉 헬기장까지는 지리산 둘레길중 가장 급경사가 진 부분이었다. 400m 이상의 높이룰 계속해서 급경사로 올라야 했다. 뒤 돌아 보는 아래의 경치가 멋지다는 생각보다는 아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헬기장에 올라와 둘레길 이정표 장승목 앞에 주저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곳부터 점촌까지는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 내리막 길인데 앞산의 단풍이 화려했다. 단풍 절정기였으면 더욱 환상적이었을 것이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경치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운리 마을에 오후 2시 30분정도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묵기는 너무 이르고 다음 구간 끝인 덕산까지는 해지기전에 도착하기 힘들 것 같았다. 민박 리스트를 보니 그 중간엔 마땅히 묵을 곳이 없었다. 백운 계곡의 경치가 좋다고 하니 오늘은 둘레길의 백운 계곡 지점까지 가서 2k 정도 아래에 있는 백운 마을에서 묵기로 마음 먹었다. 마을로 내려가며 계곡 구경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둘레길을 걸으며 다른 일행을 만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첫날 인월가는 길에 만난 중학생들과 인월읍에서 만난 몇 명이 전부였다. 운리에서 백운 계곡을 가는길에 가족인듯한 3명 일행을 만났다. 아빠 엄마와 고등학생 또래의 아들인 것 같았고 운리쪽으로 가고 있었다. 서로 지나칠때 엄마가 목례를 했다. 나도 사람들을 보는 것이 반가워 답례를 했다. 남자들은 계속 무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만 배낭을 지고 있었다. 배낭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었다. 어쩌면 서로 돌아 가며 배낭을 지는데 엄마 차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남자가 둘인데 엄마까지 순서에 넣는다? 내가 너무 민감한가?
서둘러 백운 계곡에 도착해 마을로 내려 가는데 그 길이 너무 엉망이었다. 마치 물난리에 쓸려져 나간 길 같아 길인지 좁은 개울인지 헷갈리는 곳이 많았다. 아주 조심해서 어렵게 내려오니 무릎과 발목이 시큰 거리는 것 같다. 마을 입구에 깨끗해 보이는 펜션/식당이 보인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날도 어두워 졌고 내려오며 신경을 많이써 다른 곳을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묵었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와 누우니 바로 방 밖에서 단체로 놀러온 사람들이 노래 자랑을 한다. 마이크로 큰 소리내서 부르는 노래가 잠깐은 신경쓰였지만 곧 자장가가 되었다.
Day 6 (11/16/14 일요일: 백운마을 – 덕산 – 위태)
어제 둘레길 백운 계곡에서 마을로 내려 오던 길이 험했던 것과 무릎이 긴장한 것을 생각하니 다시 그곳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다른 길로 지리산 둘레길의 남양 조식 기념관이나 덕산까지 가서 다시 계속하면 어떨까 싶었다. 아침을 먹으며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덕산까지 차로 7-8분 걸리고 걸어서는 40분 정도 걸린단다. 남양 조식 기념관은 조금 덜 걸리고. 기념관까지 찻길로 걸어서 가서 둘레길 걷기를 계속 하기로 했다.
덕산으로 가는 길은 차량통행이 많았다. 긴장하며 한 시간을 걸었을때 덕산이 다음 정류장으로 표시된 시외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감을 다듬고 있는 동네 사람에게 덕산이 걸어서 얼마나 되느냐 물으니 한 40분 정도 걸린단다. 남양 조식 기념관은 30분 정도 걸리고. 마침 산쪽으로 나있는 길이있어 이 길이 지리산 둘레길로 이어지냐 물으니 그렇타고 한다. 자기의 감나무 밭이 그길 위에 있는데 쭉 올라가면 둘레길이 나온다고 한다.
더 이상 차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길로 올라 둘레길에 합류하기로 했다. 한 40분 정도 오르니 길이 개인 집으로 들어간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그집의 개가 성나게 맞는다. 둘레길을 걸으며 흔히 보는 흰색 삽살개(?)이다. 대부분의 집들이 개를 묶어 놓아 요란히 짖어도 별 문제가 없는데 이 개는 풀어져 있고 으르렁 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싼티아고 여행 가이드북에서 읽은대로 우선 등산 스틱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냈다. 호루라기를 불기전에 주인을 큰 소리로 찾아봤지만 무응답이다. 호루라기를 부니 개가 움찔하며 짖는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뒤를 계속 돌아다 보는 것이 이놈도 주인이 나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집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개는 기세는 꺾였지만 주인집을 지키겠다는 자세는 조금도 흐트려지지 않는다. 그집 넘어 길이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니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집에서 끝나는 것 같았다. 올라 오면서 보았던 어떤 절로 향하던 갈래길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길이 둘레길로 향하는 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후퇴해서 내려와 그 갈래길로 다시 들었다. 조금 올라가니 집이 나온다. 확인을 하고싶어 주인을 부르니 대답이없다. 그집 개는 강아지인듯 개집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울음 소리를 내며 짖고있다. 몇번 불러도 대답이 없어 아무도 없는 것 같아 그냥 오르기로 했다. 길은 계곡을 따라 나있는데 계곡 양쪽으로 감나무 밭이 계속된다. 감나무 밭은 거의 산등성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길은 감나무 밭으로 이어지고 그곳에서 끝났다. 등산로로 향하는 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침 8시 이전에 백운 마을을 떠났는데 벌써 11시가 넘었다. 더이상 둘레길 찾는 것은 포기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와 덕산행 버스를 탔다.
덕산에 와서 9구간 (덕산 – 위태) 시작하는 곳은 어렵지 않게 찾았다. 마침 그곳에 카페가 있어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먹었다. 손님 한분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쌘프란씨스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여자분은 10년전에 쌘프란씨스코에 왔었는데 수많은 Gay들을 보고 너무 놀라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 날이 Gay/Lesbian Pride 날인 것 같았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보여 주기위해 일년에 한번 시내를 퍼레이드하고 시청 광장에서 파티를 하는데 수만명이 갖가지 복장을 하고 모이는데 민망해서 처다보기 힘든 복장 (더 정확히는 lack of 복장)이 많다. 그곳에서 몇 년을 살았던 나도 처음 봤을 때 shock였는데 그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지난 10년 사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여론이 많이 바뀌어 이제는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알려 줬다. 말은 않했지만 속으로 미국이 망쪼가 들렸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덕산에서 중태마을까지는 거의 평지에 가깝디. 중태 마을의 둘레길 안내소에 들려 오늘 목적지인 위태의 민박집 정보를 얻었다. 두곳이 있는데 정돌이 민박집을 적극 추천했다. 중태와 위태 사이의 갈치재를 넘으면서 산청군에서 하동군으로 바뀌었다. 하동군으로 넘어 오니 대나무 숲이 많이 보였다.
위태에 도착해 안내소에서 추천한 정돌이 민박에 들어섰는데 망설여 졌다. 방이 치워져있지 않고 화장실이 밖에 있는데 옛날식이었다. 화장지도 없어 주인에게 챙겨야 했다. 그렇지만 다른 곳이 이곳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고 그곳에 가려면 500미터 정도를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냥 묵기로 했다. 짐을 내리고 샤워를 하려하니 더운물이 않나와 포기했다. 밤에 화장실 가는데 턱이 있어 플래쉬를 키고도 조심해야지 위험했다. 주인 부부의 인상은 좋았는데 곶감 만드느라 많이 바쁜 것 같았다. 주농사는 벼와 콩, 그리고 파도 많이 한단다. 그래선지 민박에는 신경을 못(않)쓰는 것 같았다.
산청군은 곶감으로 알려져 있다는데 산청군 둘레길에서는 정말 많은 감나무를 볼 수 있었다. 한창 감들을 수확해 곶감을 만들고 있었는데 금년은 감이 풍년이라 따지 않고 버려둔 감도 많았다. 하나씩 따지 않고 아래에 비닐을 깔고 나무를 후려처서 떨어트려 따는 것도 보았다. 중태 안내소의 아가씨가 나무에 달란 홍시를 따먹어 보라고 해서 먹어 봤는데 아직 덜 익었는지 약간 시고 떫었다. 우리집 감나무 홍시보다 맛이 훨씬 덜헸다.
정돌이 민박 (평점: 1, 가격: 보통)
Day 7 (11/17/14 월요일: 위태 – 하동호 – 삼화실 – 서당마을. 하동읍)
아침 8시에 민박집을 나서 하동호로 출발했다. 지네재 오르는 초입에 가파른 곳이 있어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정작 밧줄이 끝난 곳부터 더 위험을 느꼈다. 돌계단이 너무 낮은 높이로 설치되어 발디디기가 오히려 불편했다. 경사가 가파러 잘못 디디면 걸리는 곳 없이 아래로 굴르게 생겼다. 지네재를 넘어 오자 대나무가 훨씬 많아 졌다. 하동군은 산청군에 비해 감이 적고 대나무와 밤나무가 많았다. 내려오며 지리산 둘레길에서 처음보는 은행나무를 만났는데 낙옆이 수북히 떨어져 운치가 있어 밢고 걷는 맛이 좋았다.
하동호를 끼고 가는 둘레길은 인도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섞여 있는 차도인데 인도에서 바라보는 호수 경치가 좋았다. 하동호 댐 건너편에 콘도나 호텔 같은 흰색의 고층 건물이 보이는데 이 지역에서 소화하기 어려울 것 같은 큰 규모 였다. 댐을 건너며 유심히 보니 사람이나 차의 왕래가 없어 보였다. 어째서 그런 곳에 그런 큰 건물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동호를 지나 호수에서 내려오는 개천을 따라 한참 평지길을 걷다 존티재를 넘어 삼화실로 내려갔다. 옛 삼화초등학교를 개조해 둘레길 방문자들이 숙박할 수 있는 편의 시설을 만들었는데 비수기여서 문을 닫고 있었다. 조금 힘들어도 서당 마을까지 가서 그곳에서 차를 타고 하동읍에 나가서 자고 내일 아침 하동읍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을 걸어 서당마을로 다시 돌아와 대축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버디재를 넘어 서당마을로 내려오는 길에서 마을 사람을 만났다. 나의 큰 형과 동갑이시고 대봉감과 고사리 농사를 하는 분인데 술이 기분 좋게 취해 있었고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하동읍에 나가서 잘 예정이라 했더니 동네에 사는 콜 택시 기사 전화 번호를 알려 줬다. 그리고 그 기사가 모텔이나 식당을 잘 소개해줄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외국 여행 다닌 애기,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애기, 한국이 살기 좋은 애기를 하며 한참을 보냈다. 혼자 산다는 것을 몇번이나 강조했는데 그 사연이 약간 궁금했지만 물어 보지는 않았다. 사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한 시간이상은 족히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헤어지는데 먹어 보라며 대봉을 여러개 권하여 사정해서 하나를 받았다. 소개받은 기사분이 모텔 앞에 내려주고 식당도 알려 줬다. 모텔 시설은 아주 훌륭했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소개해준 식당에서 재첩국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식당옆에 있는 카페에 들려 아메리카노를 좀 진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니 아주 정성드려 내려 주었다. 정말 고마웠고 맛이 있었다. 모텔에 돌아와 마을에서 만난 천사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인사 전화했다.
Day 8 (11/18/14 화요일: 하동읍 – 서당마을 – 대축)
하동읍은 크고 부유하다는 인상을 줬다. 여기 저기서 박경리씨의 토지와 관련을 지으려는 흔적이 보였다.
아침 일찍 문을 열려고 준비하는 뜨레드 쥬르에 가 기다렸다가 빵과 커피를 먹고 간식으로 부라우니를 샀다. 일주일 정도 빵을 못 먹었더니 빵 생각이 많이 났었다. 지리산 둘레길 하동 쎈터에 들려 민박집 리스트를 받으려면 9시30분 문을 열 때 까지 기다려야했다. 모텔에서 나와 기다리는 동안 돼지 국밥으로 아침을 하기로 했다. 빵을 먹은지 얼마 안되어 배는 별로 고프지 않지만 경상도의 로칼 음식인 것 같은 돼지 국밥을 먹어 본 적이 없어 먹고 싶었다. 하동 시장에 들어가 가게를 열고 있는 할머니에게 잘하는 국밥집을 물어 보니 하시던일을 다 제쳐놓고 나를 데리고 국밥집으로 향한다. 본인이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하던 집이 아직 문을 안열고 있자 다시 시장 반대편쪽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주인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외지에서 온 관광객 한명이라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현지인의 정성을 보았다. 처음 먹어 보는 돼지 국밥은 훌륭한 아침 식사였다. 부추 무침을 듬뿍 집어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것이 구수한 돼지 고기 국과 잘 어울리고 냄새도 없애 주었다.
하동 쎈터에 들려 하동군 민박집 리스트를 요청했다. 책임자처럼 보이는 남자가 전화 번호를 찍어 가라고 한다. 도착지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리스트가 필요하다고 재차 부탁을 해도 대답은 똑같다. 인월과 산청에서 밭은 리스트를 보여 주며 이런 것이 여기는 없냐고 물었다. 쳐다도 보지 않고 계속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여직원에게 리스트를 주라고 한다. 어이 없고 이해가 안되 오면서 한참 되삭였다. 안내 쎈터가 하는 일이 무엇이며 일하는 사람들이 자원 봉사자인지 아니면 보수를 받는 직원인지, 보수를 받는다면 그것이 세금에서 나오는지 등등이 궁금했다. 인월과 산청 쎈터에서는 고마운 마음으로 약간 궁금했었는데 이곳에서는 서비스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이 궁금해졌다.
하동읍을 나서며 언덕길에서 보이는 읍 경치에 넋을 팔다가 둘레길 표시를 놓쳤다. 한참 동안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것을 보니 길을 잘못 들은 것이 확실했다.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둘레길로 합쳐지는 길을 열심히 가르쳐 준다. 이틀전의 헛수고가 생각났지만 여기서는 헤매도 다시 되돌아 가면 될 것 같아 가르쳐준 길로 따라갔다. 한 30분을 걸으니 둘레길에 합류 할 수 있었다. 반가웠다. 하동읍에서 서당마을까지는 고개를 하나 넘지만 수월한 편이다. 밤나무, 매실, 감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관동 마을에서 만난 중년의 농부는 금년은 밤, 감, 매실 모든 것이 풍년이어 가격이 나쁘다고 걱정하고 막 타결된 한중 FTA를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농사하시는 분들이 사면초가에 빠져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당마을에 도착해 다시 대축으로 향했다. 신촌재를 넘어 내려 오면서 보이는 섬진강과 그 주변의 마을 풍경이 멋있었다. 그리고 넓직한 논이 눈에 확 들어 왔다. 옛날에 천석꾼, 만석꾼들이 있었을 마을일 것 같다. 미동마을에서 대축마을로 갈리는 길은 오르막 길인데 갈라지는 길에 이정표가 높은 곳에 있어 못 보고 지나쳤다. 오르막 길이기에 힘들어 땅만 보고 걸었기 때문이다. 그냥 한참 오르다 이정표가 않나와 이상해서 다시 내려오니 높이 있는 이정표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오르막 길에는 바닥에 표시를 해 놓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을로 내려 오다 처음 만난 들꽃 민박에 들었다. 인상 좋은 주인 내외가 아들과 함께 곶감을 준비하다 방을 안내해준다. 방에 화장실이 달려 있는 깨끗한 방이다. 민박을 하면서 처음으로 주인집과 같이 식사를 했다. 대축 마을이 있는 악양면은 대봉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감은 연시가 되면 보관과 택배가 힘들기 때문에 이곳 대봉도 곶감으로 만들어 고급 곶감으로 판다고 한다. 감이 말랑해지기 전에 곶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바쁜 시절이란다. 대봉 맛을 보라고 냉장고에서 차게한 감을 방에 들여다 준다. 둘레길 걸으며 먹어본 감 중에서 제일 맛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니 8시도 전인데 잠이 왔다.
들꽃 민박 (평점 4.0; 가격 보통)
Day 9 (11/19/14 수요일: 대축 – 원부춘 – 도심)
대축 민박집에서 나와 개울을 건너니 소설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 들판이다. 아주 널직한게 어제 신촌재를 넘으며 보았던 그 넓은 논인가 보다.
왼편으로 가면 평사리 들판을 지나 최참판댁을 들러 입석마을로 가는 둘레길이고 오른편으로 가면 입석마을로 직접 가는 둘레길이다. 2년전 고등학교 졸업 45주년 여행때 최참판 댁을 가 보았으므로 직접 입석 마을로 가기로 했다.
입석에서 원부춘까지는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웃재를 넘어 원부춘으로 내려가는 길이 거의 바위길이어서 발목과 무릎에 영향이 많아 조심스레 걷게 되었다. 웃재에 올라 쉬면서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실구름 흐르는 가을 하늘을 내가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원부춘에서 형제봉 임도 삼거리까지는 포장된 도로로 완만하게 올라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중촌으로 내려오는 길은 급경사인데 돌대신 나무로 만든 계단이 많아 이색적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은 돌이 귀한가 보다. 지리산 둘레길은 재(고개)를 넘는 길이다. 재를 넘으면 도가 바뀌고 군이 바뀐다. 자라는 나무도 달라지고 기르는 작물도 달라진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계단으로 만드는데 주로 돌을 이용하지만 이렇게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대나무가 많은 곳에서는 대나무 뿌리가 자연적 계단이 되기도 했다. 아주 가파른 곳엔 붙들고 올라 가라고 옆에 밧줄도 있다. 재를 오르고 내려 오는데는 스틱이 아주 효자다.
중촌을 지나니 차밭이 많이 보였다. 도심 삼거리에서 민박 리스트에 있는 유로 산장에 전화해서 민박이 가능한지 물어 보았다. 원래는 펜션인데 민박으로 대여해 주겠단다. 주인은 48세의 부산 사람인데 20년전에 이곳에 들어와 여러가지 일을 하다 이제는 차재배와 목수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집짓는 것을 많이 보아 일이 많겠다고 하니 큰일은 주로 서울에서 목수를 데리고 와서 하기 때문에 자기는 수리를 많이 한단다. 본인이 지었다는 펜션은 전망이 좋고 편리했다. 그리고 방에서도 와이 파이가 되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차 대접도 잘 받았다. 방에 돌아오니 그래도 커피 생각이나 가져온 스타벅스 봉지 커피를 끓여 먹었다.
유로 산장 (평점: 4.5; 가격: 보통)
Day 10 (11/20/14 목요일: 도심 – 가탄 – 기촌)
펜션에서 내다 보는 차밭 풍경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언덕에 층층히 만든 차밭은 잘 손질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고 가니 그집 중학생 외동 아들이 등교하러 나서고 있었다. 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는데 버스를 타기도하고 차로 데려다 주기도 한단다. 아빠는 벌써 아들의 취직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젊은 사람들 취직이 어려운데 아들이 취직할때쯤은 더 나빠질 것 같다는 것이다.
같이 아침을 먹고 감잎차 만드는 법을 배웠다. 비타민 C가 제일 많은 시기는 7월이지만 그때는 잎이 커져서 차를 만들면 뜳을 수 있단다. 봄에 감꽃이 피고 난 후 잎을 따서 찌고 그늘에서 바짝 말려 통째로 우려 먹으면 좋단다. 집에 감나무를 심고 감을 따먹은지가 4년이 넘었지만 나는 감꽃을 본 기억이 없다. 금년은 눈여겨 봐야 겠다.
도심 마을을 떠나 대비 마을로 가는 길 내내 차밭은 이어 졌다. 그러다 나즈막한 고개를 넘어 백혜 마을과 가탄으로 오면서 점점 줄어 들었다. 가탄에서 둘레길을 벗어나 화개시장을 보러 걸어 내려갔다. 화개시장은 완전히 관광지였다.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 택시로 쌍계사로 갔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때 삼법스님이 중국에서 선종 제 6대조인 혜능의 머리를 모시고와 이곳에 안치하며 세워졌다는데 절안의 중요 시설의 설명을 잘 해 놓았다. 들어가는 일주문부터 시작해서 건물 하나 하나를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 놓았는데 재미있었다. 혜능 선사의 머리를 모시는 석탑을 암자안에 세워논 것도 특이했다. 지금까지는 절을 봐도 건성으로 보아 왔는데 쌍계사에서 설명을 읽으며 보니 이해가 많이 되고 쌍계사에 호감이 갔다. 그리고 쌍계사는 너무 크지 않아 상업화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호감이 갔다.
쌍계사로 데려다준 택시를 불러 가탄으로 내려와 아침에 화개시장으로 내려간 곳에서 부터 다시 둘례길을 시작했다. 작은재를 넘어 기촌 마을에 오니 3시30분 이다. 구간 끝인 송정 마을까지는 해지기 전에 도착 못하겠고 그 사이에는 묵을 곳이 없으니 오늘은 기촌 마을에서 머믈기로 했다. 숨 게스트 하우스로 결정을 헸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차로 데려 간단다. 게스트 하우스는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도로변에 있었다. 조금 오래된 건물이지만 방은 편리했다. 휴지통에 작은 주사기가 있어 기분이 상해 저녁을 먹으러 나가며 다시 청소를 부탁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저녁을 제공하지 않는데 화개 장터가 멀지 않아 그곳 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와서 픽엎을 해준단다. 외떨어진 곳에 있어 이런 서비스를 해주는 것 같았다. 하루를 걸었는데 오전에 있었던 화개장터에 다시 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장터안에서는 트럭에서 마이크로 선전하며 야채와 반찬거리를 팔고 있었는데 장터 상인들이 꽤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나 있을 광경을 시장에서 보고 있으니 어쩐지 안 어울리고 약간은 희극적인 느낌이 들었다.
막걸리 한잔에 해물 파전을 곁들어 저녁을 맛있게 먹고 옛날 과자 한봉지 사들고 돌아와 픽엎나온 주인에게 고맙다고 전해 줬다. 둘레길 걷기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며칠 있다가 화개장터가 불이나 다 타버렸다는 뉴스를 들었다.
숨 게스트 하우스 (평점: 3.5; 가격: 약간 비쌈)
Day 11 (11/21/14 금요일: 기촌 – 송정 – 오미)
게스트 하우스의 아침은 민박에 비해 오히려 깔끔했다. 된장국에 반찬 4가지의 부폐였는데 모두 맛있었다. 토스트와 커피가 있어 오랜만에 peanut butter & jelly sandwich를 만들어 coffee와 후식처럼 먹었다. 다시 ride를 얻어 기촌에 와서 걷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송정까지는 산등성을 타고 한참 걷는다. 가끔씩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보이는 섬진강의 모습이 눈 부시게 아름답고 우아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아침 햇살을 받아 은빛을 내면서 흐르고 있었다. 둘레길에서 섬진강을 볼 수 있는 곳이 여럿 있었는데 이곳에서 보이는 섬진강이 가장 아름다웠다. 내 가슴속 어딘가 깊이 숨어 있는 토백이 정서를 건들이는지 눈물이 날 것 같이 정겨운 아름다움이었다.
산등성을 따라 계속 걸으면 목이재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전라남도 구례군으로 바뀌는 고개인 것 같다. 그리고도 한참을 산등성을 타고 가야 송정으로 내려 가게 된다. 송정에 도착해 시간이 넉넉해서 오미까지 가기로 했다. 송정 마을에서 고개 둘과 계곡 둘을 지나야 마침내 오미로 들어가는 평지가 나오는데 길은 험하지 않았지만 오늘 많이 걸어선지 힘들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문중 묘지를 잘 만들어 놓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대축 – 원부춘 구간에는 밀양 박씨 공원 묘지가 있었고, 송정 – 오미 구간에는 제주 고씨 공원 묘지가 있다. 많은 투자와 정성을 들인 표시가 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둘레길을 걷다 보면 올라가기 힘든 꽤 높은 고지에 위치한 묘를 가끔 보게 된다. 대부분은 돌보지 않아 흉측하게 남아 있지만 아마도 오래전에 풍수상 좋다고 해서 그 높은 곳에 자리를 쓰지 않았나 싶다. 자손들이 돌보지 않는 것을 보면 풍수의 효험이 있었는지 의아해 진다.
오미에 도착하니 5시 가까이 되어 곧 어두워 질 것 같았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편인지 대부분 민박이 한옥 민박을 테마로 하루 8만원을 요구했다. 하동 안내 쎈터에서 받은 리스트에 “산에사네”라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어 전화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방이 없다고 조금 떨어진 마을의 친구 민박집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로 막 출발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방을 제공할 수 있단다. 새로 지은 듯한 한옥방은 깨끗하고 샤워/화장실이 달려 있었다. 조그만 카페도 있어 쉼터로 쓰며 커피/차를 팔았는데 와이파이도 되었다. 저녁은 제공하지 않아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 오는데 마침 카페에 주인 아주머니가 있어 커피를 부탁했다. 구례가 고향인 주인 부부는 동경에서 살다가 10년전에 귀농을 했단다. 주인 아주머니는 야무지고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는 주관이 뚜렷한 인텔리였다. 제주도 강정 마을에가서 휴가를 보내고 어제 왔다고 한다. 고3 아들이 수능을 막 치렀다는데 아들의 인성 교육, 자기 인생에서 하고 싶어하는 것을 찿어 하도록 도와 주는 부모의 역할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카페에서 주인 아저씨와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부부가 카톨릭 농민회 소속으로 지역 농업 발전을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한달전에는 Farmers Market을 견학하기 위해 San Francisco 에서 LA 까지 여행을 했단다. 이곳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 시켜 보려고 한단다. 여행, 특히 오지 여행을 좋아해 히말라야, 티베트 지역 여행을 좋아한단다. 티베트 불교, 명상등에 관심이 많았다. 카톨릭 농민회 소속이라니 천주교 신자일거라 생각하고 카톨릭/기독교에도 명상의 전통이 있다고 향심기도 (Centering Prayer) 를 알려 줬다.
산에사네 (평점: 4.5; 가격: 보통)
Day 12 (11/22/14 토요일: 오미 – 구례읍 – 화엄사 – 방광 - 난동. 지리산 온천마을)
아침은 그곳에서 묵은 여대생 3명과 주인 아주머니와 함께했다. 그중 하나가 주인 아주머니 친구의 딸인 것 같았다. 아침에 카페에서 만난 주인 아저씨를 찿었더니 아들과 함께 산에 나무하러 갔단다. 이곳 남자들의 일과는 나무하는 것으로 시작한단다. 아침 반찬은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장아찌가 많았고 토종밀 가루로 만든 부침게도 있었는데 간이 맞고 깔끔하고 맛이 있었다.
오미에서는 구례읍을 통해 난동으로 가는 둘레길이 있고 방광을 거쳐 난동으로 가는 길이 있다. 방광쪽 길은 화엄사가 가까이 있어 들려 볼 수 있다. 나는 구례읍과 화엄사를 다 보기로 했다. 우선 구례읍까지 걷고 그곳에서 대중교통으로 화엄사로 가서 보고 다시 방광을 거쳐 난동으로 가기로 했다.
오미에서 구례읍으로 가는 둘레길의 표지판을 찾지 못해 민박집 아주머니에게 전화했다. 친절히 가르쳐 주어 따라 가는데 횡단 도로가 없는 사거리를 건너야 했다. 나중에 다시 한번 횡단로 없는 길을 건너야 했는데 모두 차가 많이 다녀 위험하였다. 오미에서 구례읍까지의 길은 강둑을 따라 걷는 평평한 길이다. 섬진강의 상류인것 같은데 물은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구례읍의 지리산 안내 쎈터에 들려 민박집 리스트를 얻고 구례읍을 구경했다. 운봉읍보다는 물론 훨씬 컸지만 하동읍 같이 크고 번화하지는 않다는 느낌이었다.
구례에서 버스를 타고 화엄사로 갔다. 버스 정류장인 화엄사 입구는 화엄사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였다. 올라 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넓은 계곡이 흐르고 길가의 단풍이 좋아 아름다웠다. 그런데 택시와 자가용은 절 바로 앞에 까지 올 수 있었고 게다가 주차료도 받지 않었다. 환경이나 교통 번잡을 줄이기 위해 대중 교통 보다 자가용을 훨씬 엄격히 억제시키는 것을 미국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이 상황이 이상했다. 나중에 보니 절 안팍에서 부피가 나가는 지역 특산물등 많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차를 갖고 오는 것을 장려하는 이유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화엄사는 쌍계사보다 크고 주말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래서인지 많이 상업화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대웅전에 올린 시주에 농산물이 많은 것을 보니 지역 신자들이 많이 오는 절인 것 같았다. 시주는 쌀이 많았고 감도 눈에 띄었다. 쌍계사처럼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실망했다. 화엄사는 부처님의 진 사리를 모시고 있는데 그 사리를 모시는 신라때 만든 탑이 국보이다.
화엄사 입구로 다시 내려와 점심을 먹고 방광으로 향했다. 별로 어려운 길은 아닌데 둘레길 표지판이 부실해 헤맬때가 있었다. 둘레길 표지판은 하동군으로 들어 오며 질이 떨어지더니 구례군에 와서는 많이 부실헸다. 산악회에서 붙여 놓는 리본도 별로 많지 않아 난감할때가 종종 생겼다. 방광에서 난동으로 가는 길은 마침 단체로 온 산악회원과 같이 걷게 되어 그들만 따라 왔다.
방광을 지나 난동으로 가는 길에 당동이란 곳에 이르니 수십채의 현대식 집이 있었다. “예술인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곳에는 카페와 갤러리를 운영하는 집도 보인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여기 저기 전원 주택을 지어 놓은 것은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한 마을을 만들어 놓은 것이 특이했다. 전체 분위기가 미국의 윤택한 교외 주택가 같았다. 이곳에 오기전 잠깐 이야기를 나눈 마을 사람이 이 예술인 마을의 존재를 알려 주며 딴나라 사람이 사는 곳 처럼 이야기 하던 것이 떠올랐다.
난동은 숙식 시설이 마땅치 않았다. 당동을 지날 때 여수에서 주말농장을 하러 왔다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지리산 온천 마을이 멀지않으니 그곳에서 묵을 것을 추천했다. 난동에 있는 콜택시 번호도 주었다. 난동에 도착해 전화해서 그 콜택시를 타고 온천 마을로 왔다. 내일 아침에 전화해 다시 난동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지리산 온천 마을은 굉장히 큰 유원지였다. 호텔, 모텔, 음식점이 가득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해 두리번 거리고 있을때 바로 앞 음식점 청년이 조금 떨어진 호텔을 가르키며 새로 생긴 호텔인데 가격도 좋고 시설도 좋다고 한다.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그냥 믿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 이름이 무인 호텔이다. 프론트를 통하지 않고 직접 체크인 체크아웃을 하게 되어 있고 방아래에 주차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외부와 내부 디자인이 아주 현대적 (전위적?) 이고 무인 시스팀이 낯 설어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방은 깨끗하고 편리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방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을 좀 보다 잠이 들었다.
Day 13 (11/23/14 일요일: 지리산 온천 마을 – 탑동 – 산동 – 주천)
어제 저녁을 먹은 음식점으로 걸어 내려와 아침을했다. 아침 메뉴로 콩나물 국밥을 선전하고 있었는데 맛있었다. 어제 호텔을 소개해준 청년이 반가워 한다. 식사를 하며 난동의 콜 택시에 전화를 했더니 바빠서 올 수가 없단다. 가이드북 지도를 보니 이곳이 지리산 둘레길 탑동에서 멀지 않은 것 같다. 그 청년에게 물어 보니 조금 걸어 내려가면 된 단다. 난동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탑동에서 부터 계속하기로 했다.
탑동에서 밤재를 넘기 전 까지는 산수유가 많았다. 열매가 빨갛게 익어 보기 좋았다. 봄에 산수유 꽃 축제가 열릴때에 온천 마을이 제일 붐빈다는 음식점 청년의 말이 떠올랐다. 이 구간은 국도 옆을 따라 나있는 둘레길도 꽤 있고 한두 곳은 어거지로 논밭을 거쳐 가도록 둘레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이정표가 부실해 여러 번 애를 먹었다. 밤재를 넘어 지리산 유스호스텔을 지나는데 공사중이니 임시 둘레길로 가라고 안내를 해 놨는데 임시 둘레길 표시가 없다. 안내에 써있는 인월 쎈터로 전화를 해 가르쳐 주는데로 가보니 아니였다. 다시 전화해 내가 있는 곳을 알리면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물어 봤다. 그랬더니 자기도 잘 모르니 유스호스텔에 들어가 물어 보란다. 일요일인데도 다행이 사람이 있었다. 그분이 직접 나와 갈 길을 가르쳐 주었다.
둘레길을 걸으면 여러 경고문을 접하게 된다. 무단 침입을 막기 위해 밭 둘레에 전기줄을 쳐논 경우가 많았다. 전기는 한 쪽 끝에 있는solar panel에서 만들고 있었는데 얼마나 강한 전류가 흐를까 궁금했다. 감전되어 사람이 다칠 정도면 그런 설치가 합법적일까, 피해본 사람이 손해 보상 소송을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소송 많은 미국에 살고 있어 그런가 보다.
현수막도 많이 걸려 있는데 전라도 구례군에서 형사처벌을 “행사 처벌”이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쓴 현수막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현천 마을을 지나 국도옆의 둘레길을 걸을때 “산수유시목지”를 영어로 “Sansuyu Something Unique” 라고 번역 해놓은 국도의 길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시목지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지만 번역이 재미있었다. 나중에 내가 그 Sansuyu Something Unique 란 곳을 걸어 지났다.
주천면에 도착하여 민박집 리스트를 보니 두 군데가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남원 호텔과 통화하고 그곳에 묵기로 했다. 비수기여서 인지 손님이 거의 안보인다. 저녁은 호텔의 한식 부폐로 했는데 마침 부페에 온 단체 손님들이 있어 북적거려 좋았다.
남원호텔 (평점: 3.5; 가격: 약간 비쌈)
Day 14 (11/24/14 월요일 (주천.회덕 – 운봉 – 남원 – 서울)
아침에 일어 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주천에서 회덕간 둘레길은 공사중이라 폐쇄되어 있어 회덕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운봉까지 걸어가 둘레길 일주를 마치려고 계획했다. 호텔 여주인이 구룡 폭포를 통해 회덕까지 걷는 다른 길이 있다고 알려 주었지만 비 오는 날에 길표시도 어떨지 모르는 길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버스를 타니 예상보다 한참 간다. 가다 보니 운봉읍을 들린다. 회덕가는 버스길이 주천에서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한참 돌아 가는 모양이다. 회덕에서 내리니 바로 둘레길이다. 비를 맞으며 운봉으로 향했다. 회덕에서 운봉은 평지길이다. 마을들과 큰 규모의 묘목장을 지나 처음 운봉을 떠날 때 처럼 논둑길을 한참 걸어 운봉읍에 도착했다. 첫날 묵고 식사했던 갑을 식당/민박집에 들려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이 나의 둘레길의 시작과 끝 지점이다.
점심후 버스를 타고 남원으로 나와 시외 버스 터미날에서 내렸다. 서울 고속 터미날가는 표를 사려하니 표파는 아가씨가 웃으며 고속 버스 터미날로 가라고 한다. 맞다. 처음 내려 오던 날도 고속 터미날에서 내려 시외 버스 터미날로 왔던 기억이 났다. 고속 터미날로 가서 서울로 오니 6시 정도다. 덕윤이가 저녁 사주겠다고 나와 있었다. 저녁을 먹고 일산행 전철에 앉아 있으니 내가 아침에는 비를 맞으며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무사히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고 그 사실이 뿌듯했다.
기사 정리및 포스팅: 홍보부 천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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