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to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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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에서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으로 이사 온 이후 가장 잘 한 일이 기존에 있던 상수리 독서모임에 합류한 것이다. 책거리를 정해 읽은 뒤 한 달에 한 번 모여 강독회를 가지는 모임에 참석한 게 그럭저럭 십여 년이 되었다. 십여 명의 회원들은 농담도 스스럼 없이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고 강독회가 끝나면 페스트 푸드점에 가서 아점을 즐겼다. 감보다 고욤이 더 달더라고 아점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시간이 더 달았다. 그 중 이십 여 년 전에 시작된 상수리 독서모임 창립 멤버 중의 한 명인 H가 지난 주 돌연사 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있다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새해 첫 토요일, 독서모임을 끝낸 뒤 우리는 예전과 다름 없이 아점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녀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전에 없이 손을 잡았다. 불과 몇 걸음 안 되는 거리였지만 애들처럼 잡은 손을 흔들며 깔깔거렸다. 그녀의 사고소식을 듣자 느닷없이, 나와는 마지막이 되었던 그 날, 내 손에 느껴지던 체온이, 손바닥의 감촉이 유난히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거였다.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끝내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였다. 한의학 박사인 남편도 의사인 아들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장례예배 날짜와 장소를 전달 받은 뒤, 떠난 이보다 남은 가족들의 충격과 슬픔과 아픔이 더욱 절절하게 가슴에 스몄다. 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도 어느 날 예고도, 예감도 어떤 징후도 느끼지 못한 채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지금으로 치면 꽃띠(?)인 오십 대 중반. 내 어머니는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어주리란 믿음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기에 충격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여명이 짙은 이른 새벽. 시신이 모셔진 병원으로 가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는 시간, 갑자기 늙은 고아가 되어 버린 우리 형제들은 애써 서로의 눈길을 피하며 꺽꺽 목 울음을 삼켰다. 이미 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그 기억을 그간 잘도 잊고 살았다. 그처럼 사람의 망각기능은 축복이지만 야속하기도 하다. 며칠 밤잠을 설치는 동안, 마음의 수면을 강하게 치며 떠오르는 깨달음. '아, 나도 언젠가는 우리 엄마나 H처럼 가족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떠날 수 있겠구나!' 병든 몸으로 고생하면서도 마지막에 종부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후, 가족에게 인사를 받으며 떠날 수 있다면 그 죽음은 죽음조차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지 모르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오직 하나. 진심을 담은 사랑 고백이 아닌가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습관을 기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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