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이야기 제 20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3편) -김명환 안드레아
[교우 이야기 제 20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3편) -김명환 안드레아
기사/사진 제공: 김명환 안드레아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1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2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3편) -지금 보시는 편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4편)
5월 18일 (월: Day 24) Villadangos del Paramo – Astorga
오늘은 30km 정도 걸어 Astorga까지 가려고 조금 서둘러 7시에 나섰다. Villadangos에는 아침을 파는 곳이 없어 다음 마을인 San Martin에 와서 먹었는데 주인 남자가 밝은 태도로 사람들을 대해 기분 좋게 아침을 먹었다. 돈 안드는 친절로 장사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다. 하이웨이를 따라 옆길로 걷는데 물이 흔해 선지 달팽이가 많이 보여 밟을까 신경이 쓰인다.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우는 소리가 계속된다. 새소리도 요란한데 멀리서는 역시 뻐꾸기가 운다. 이 정도면 걷기에 나쁘지 않은 배경이다.
Puente de Obrigo의 다리는 굉장히 길었다. 로마시대에 지은 다리를 중세때 보수해서 쓰고 있다는데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잘 보존된 다리중의 하나라고 한다. 다리가 긴 이유는 중간에 섬이 있어 그렇다. 이 다리는 사랑과 명예에 관한 전설로 유명하다. Leon의 부유하고 권력있는 기사인 Don Suero가 어떤 여인에게 사랑에 빠져 결혼 허락을 얻으려 온갖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단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무언가 큰 일을 해서 그 여자가 절대로 자기를 잊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카미노에 범죄와 싸움이 많다는 말을 듣고 그 큰일을 찾았다. 자신이 카미노에서 최고 기사이니 다른 기사들에게 도전하라고 순례자들을 통해 알렸다. 한달동안 도전을 받겠고 조건은 도전자가 패하면 다시는 싸우지 않고 오직 순례자를 보호하는 임무만 수행하겠다는 맹세였다. 도망가는 것을 막기위해 대결은 항상 이 다리위에서 열렸단다. 7월 10 일에 첫 도전자가 도착해 8월 9일까지 수백명의 도전자를 상대했는데 아무도 Don Suero를 이기지 못했단다. Don Suero는 이 대결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단다. 그래서 이 다리는 passage of honor 라고 불린다. 이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는지 섬에는 깃발들이 있었고 운동장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다리를 지나 조금 가면 하이웨이를 따라 가는 길과 밭사이로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밭사이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곡류 아닌 작물을 심는 밭이 많았다. 대파나 마늘처럼 보이는 것도 눈에 띄었다. 조그만 땅이라도 이용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카미노의 들에 피는 양귀비는 꽃이 빨간색으로 밭의 가장자리에 많이 피어 있다. 이밭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인지 양귀비가 반이다. 밭 주인은 속상하겠지만 보는 사람은 괜찮은 광경이었다. 농사꾼도 운동하며 즐기라고 시멘트로 탁구대를 만들어 놓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운동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Astorga 에 오기 바로 전의 마을인 San Justo de la Vega에 있는 교회는 옛날의 종탑만 그대로 보존하고 나머지를 현대식으로 지어 특이했다. 안을 보고싶었지만 잠겨 있었다.
Astorga는 인구 12,000의 아름다운 도시다. 로마시대부터 교통의 요지였고 프랑스 순례길과 로마 순례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옛날에는 순례자 병원이 20개가 넘었다고 한다. Astorga의 시립 알베르게에 들어 샤워를 마친후 대성당과 가우디 건물을 보러 나섰다. 운좋게 오늘은 모두 무료인 날이었다. 대성당에 딸려 있는 뮤지엄에는 많은 소장품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옛날 주교들의 모자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신발이 꼭 여자들이 신을 것 같은 색깔과 모양이다.
가우디의 건물은 주교관으로 지은 것으로 지금은 미술관과 뮤지엄으로 쓰이고 있다. 가우디의 독특한 스타일 건물에 많은 소장품이 있는데 물론 성모님상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Sant Iago 전시관이 따로 있었다. 순례자와 전사로서의 Sant Iago 그림과 조각품, 카미노 지도, 카미노를 상징하는 조개 껍질 모양의 장식품들이 있었다. 사본이지만 12세기에 출간된 최초의 카미노 가이드북 Codex Calixtinus 도 있었다.
Astorga 부터 Molinaseca 사이에는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지대를 30km 이상 걸어야 한다. 이 산악 지대에 살던 Maragato 사람들의 문화와 음식을 Astorga 에서 많이 선전하고 있다. Maragato 음식 레스토랑에서 저녁으로 붕장어 (conger eel) 감자 soup 과 maragato meat를 시켰다. 붕장어는 토막이 상당히 컸고 감자를 넣어 약간 얼큰한게 끓인게 맛이 있었다. Maragato meat는 밥과 같이 주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밥이 양이 적어 아쉬웠다. 고기는 dark source에 졸였는데 기름기가 없이 약간 팍팍한게 괜찮았다. 그런데 꼭 예전에 먹어 본 맛이었다. 노루는 아닌 것 같고 송아지 (veal) 같다. Maragato 사람들이 높은 지역에서 사냥해서 먹던 고기가 송아지일리는 없고 노루나 멧돼지 고기를 구하기 힘드니 대신 쓰나 보다.
5월 19일 (화: Day 25) Astorga - Rabanal del Camino
아침은 어제 사놓은 과일로 해결했다. 아보카도는 아직 너무 단단해 익히려고 배낭에 넣고 나왔다. 대성당이 있는 광장을 통해 Astorga를 나오는데 한 카페에서 Maragato 사람들의 케익인 mantecadas를 선전하고 있어 들어가 커피와 함께 시켰다. 그집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된 것을 상자에서 꺼내 주는데 두 종류가 있었다. 둘을 모두 먹어 보았다. 특별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카미노에 한국인들이 많이 걷기때문인지 가끔 상점에 한글 선전이 보인다. 이 상점은 의욕은 있어 한글 선전을 해 놨지만 (써놓은 것을 봐선 구글 번역을 이용한 것 같다) 한국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는지 북한의 국기를 붙여 놓았다. 상점이 닫혀 있어 알려줄 수가 없었다. 카미노에서 세번째 현대식 교회 건물을 보았다. 멀리서 볼때는 프로테스탄 교회인 것 같아 관심을 갖고 가까이 가보니 성당이었다. 카미노를 걸으며 개신교 교회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Murias de Rechivaldo에 와서 전형적인 Maragato 사람들의 마을을 복원해 놓았다는 Castrillo de Polvazares로 가기로 했다. 그리로 가는 카미노 표시를 찾지 못해 그곳 시립 알베르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말로 설명해주다 내가 못 알아 듣자 근 200m를 같이 걸어 카미노가 시작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무척 고마웠다. 길은 카미노 방향 표시가 거의 없었는데도 샛길이 없어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다. Maragato 마을의 집들은 돌로 만들어졌고 길도 모두 돌이다. 길 중간을 다른 색갈의 돌로 만든 것이 특이했다. 대문도 윗 부분이 둥글고 진한 초록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 있었다. 평소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지 호스탈, 알베르게, 레스토랑이 꽤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은 모두 닫혀있고 관광객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도 안 보인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은 접어야겠다.
마을을 나와 3km 정도 걸으면 원래의 카미노와 다시 만나게 된다. 원래의 카미노는 계속 하이웨이를 따라 걷는데 차는 별로 많지 않았다. El Ganso에 도착해 Cowboy Bar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bar는 이름 때문인지 미국 순례자들에게 잘 알려져있다. 파스타를 시켰는데 알덴테로 아주 잘 삶아 맛있게 만들었다. 이곳은 다른 bar도 없고 가까이에 마을이 없어 경쟁이 없는데도 가격이 싸서 인상이 좋았다.
오늘 출발한 Astorga 가 해발 900m에 있고 지금 있는 El Graso가 해발 1000m 조금 넘는데 오늘 목적지인 Rabanal del Camino는 해발 1160m 에 위치해 있다. 계속 오르막 길을 올라 도착해서 카미노를 준비할 때부터 점찍어 두었던 수도원으로 찾아갔다. 숙박이 가능한지 알아보려 했는데 씨에스타로 문이 닫혀있다. 독일의 베네딕토회에서 운영하는 이 수도원은 최소 2박을 하도록 만들어 하루를 온전히 피정으로 보낼수 있게 한다. 이틀전 전화해서 물어 보았더니 자리가 있을지는 오늘 도착해봐야 안다고 한다. 예약은 안 받았다. 수도원 바로 옆에 있는 영국 자원 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들려 사정을 설명하니 우선 알베르게에 등록을 하고 나중에 수도원에 자리가 있으면 옮겨 가라고 한다. 알베르게에서 샤워와 빨래를 하고 기다리다 수도원에 가서 물어 보니 자리가 없다고 한다. 대답을 해준 젊은 수사가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알아 보라고 한다. 아침에 나가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단다. 내일 자리가 있다고 해도 3일을 이곳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포기했다.
알베르게에서 가진 tea time에 그 젊은 수사가 동석해 수도원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수도원은 독일 뮌헨지역의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운영하는데 겨울에는 2명 (신부와 수사) 이 있고 여름에는 1명의 신부가 더 나와 있단다. 보통 일정은 아침 기도, 미사, 저녁 기도와 마침 기도로 되어 있단다. 수도원에 묵는 10명의 순례자는 이 일정을 따르고 식사는 같이 하지만 그 외에는 각자 자유 묵상 시간을 갖는단다. 오늘은 신부 한분이 출장중이어서 저녁 기도 (Vespers) 대신에 미사를 한다고 했다. 독일의 수도회는 30세인 자신이 가장 어렸었는데 얼마전 18살의 수사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 젊은 수사는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매년 10%씩 증가하는 것 같다고 한다. 미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수도원에 묵고 있는 사람들과 내가 묵는 알베르게와 그 마을 다른 알베르게에서 온 사람들로 조그만 교회가 가득찼다. 한국 사람이 10명도 넘어 보인다. 수도회 신부는 South Africa에서 오랫동안 사목을 하여 영어에 능통해서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를 번갈아 가며 미사를 진행했다. 미사후 수도원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부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4월 중순부터 시작해 조금씩 걷고 있는데 어제 마침 이곳에 자리가 있어 잘 쉬면서 묵상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하루를 마치는 기도는 9시30분에 했는데 수도원에 머무는 사람과 내가 묵는 알베르게에서 몇사람 참석해 함께 했다.
5월 20일 (수: Day 26) Rabanal del Camino – Molinaseca
알베르게에 부엌이 있어 아침으로 해 먹으려고 달걀과 토마토를 사다 놓았는데 막상 쿡을 하려 보니 레인지가 없었다. 어제 저녁에 건성으로 본 것이 잘못이다. 토마토는 그냥 먹었지만 날계란 먹을 생각은 없어 봉사자에게 이야기하고 그곳에 두고 나왔다. 7시30분의 아침 기도회에 참석해 오늘 생일인 옆지기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했다.
오늘은 카미노중 가장 높은 해발 1505m 의 Cruz de Ferro 를 지나 해발 900m 를 내려간 Molinaseca까지 갈 예정이다. 출발지가 이미 해발 1150m 이기 때문에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높은 곳이라 쌀쌀하지만 날씨가 맑아 걷기도 좋고 전망이 좋았다. 굉장히 많은 꽃들이 산 전체에 피어 있었다. 붉은색, 노란색, 흰색의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자주색 꽃이 산을 덮고 있는 곳이 많아 눈이 즐거웠다. Foncebadon은 아마도 카미노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마을이리라. 카미노때문에 생긴 이 마을은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 닫혀 있던 집들이 새로 수리 단장하여 오픈해서 마을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카페에 들어가니 나이든 한국 사람들이 한 무리 앉아 있다. 서울에 있는 성당의 중고등부 합창단원 출신들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데 이번에 13명이 카미노를 같이 걷는단다. 이 그룹에 관해 몇번 들은 적이 있었다. Estella에서 저녁을 같이한 오스트랄리아의 Lisa 와 Gale은 Orisson 알베르게 저녁 식사에서 노래를 부른 이 그룹을 초등학교 합창단 동창으로 알려 줬었다. 어제 저녁 미사에 온 사람들도 이 그룹이었다. 혼자 걸어도 잠자리를 마련하는게 힘들때가 있는데 13명이 묵을 곳을 매일 예약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것이다. 그룹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 “죽지 못해 하고 있다” 고 말한다.
Cruz de Ferro는 카미노에서 제일 높은 곳에 세워진 십자가다. 순례자들은 집에서 가져온 소품에 자신의 염원을 담아 십자가 밑에 놓는다. 나도 집에서 가져온 조약돌에 나의 염원을 담아 십자가 밑에 놓았다.
카미노가 활성화 되면서 순례자에 의존하던 마을들이 살아나고 성당이 복구되는 것을 자주 본다. Manjarin도 그 경우이다. 12세기부터 순례자 병원이 있었던 이 마을은 한동안 죽어 있다가 지금은 상주 인구도 한 사람있고 알베르게도 있다. 그 주민은 gift shop을 운영하며 커피, 티, 비스킷을 무료로 제공하고 도네이숀을 받는다.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길 건너 직진하다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가보니 길에서 잘 안 보이는 노천이었다. 볼일을 보고 오니 얼마나 자연스럽고 좋으냐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내리막 길이 더 신경 쓰이고 힘이 든다. Molinaseca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곳이 많고 돌과 자갈이 많아 위험했다. 비라도 와서 습기가 있었으면 끔직할 수 있는 길이다. 만발한 꽃과 깊은 계곡의 경치를 즐기다가도 발걸음에 신경을 써가며 조심해서 무사히 내려왔다. 오늘은 혼자 쓰는 방을 얻어 목욕도 하고 깨는 시간에 자유롭기로 했다.
5월 21일 (목: Day 27) Molinaseca - Cacabelos
거의 7시까지 잠을 자고 어제 사다놓은 토마토와 오렌지 그리고 이틀째 끌고 다니는 아보카도로 아침을 먹었다. 꽤 더운 날씨에 이틀이나 배낭에 있었지만 아보카도는 아직 딱딱했다. Molinaseca에서 걸어 나와 얼마 안 되는 곳에 주택이 많이 보이는데 인구 69,000의 Ponferrada 교외 지대인 것 같다. 주택지가 아닌 곳은 거의 포도밭이다. 이곳 Bierzo 지역은 기후가 독특해 좋은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재배 할 수 있단다.
Ponferrada에는 Templar 기사단의 옛 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Templar 기사단은 카미노를 걷는 사람들에게 낭만의 대상이다. 카미노에 기여한 영향도 컸지만 그 종말이 비극적인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에 종군한 9명의 기사들로 12세기 초에 창단되었는데 목적은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것과 종교 생활의 병행이었다. 14세기 초에는 전 유럽에 5000명 이상의 단원이 있을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그동안 신용을 많이 쌓아 왕족과 귀족들이 어디든 Templar 기사단에게 재물을 맡기고 증서를 받으면 그 증서로 다른 어떤 Templar 성에서도 재물을 찾아 쓸 수가 있었단다. 신용장의 시초인 셈이다. 종교적으로도 이들은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의 화합을 추구하고 순례자들은 종교에 관계없이 보호했단다. 교회 건물을 지을때 유대교 사원의 둥근 지붕에 아랍 회교 사원의 8각형 벽을 짓고 내부 본당은 기독교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4월29일 들러본 Eunate의 성당이 바로 이 모양이다. Templar는 또 비밀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코엘료의 ‘순례기’에 기사 서품식에서 행하는 비밀 의식이 묘사되어 있다. 기사단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프랑스 왕과 개방적 종교관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교황이 손을 잡고 기습적으로 기사단 총수와 간부들을 잡아들였다. 많은 기사가 처형되었는데 총수인 Jacques de Molay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며 죽고싶다 하여 그곳에서 처형되었단다. 1314년 10월 13일 금요일에 일어난 이 사건 이후 서양에서는 금요일과 13일이 겹치는 날을 불운의 날로 믿게 되었단다.
성은 언덕위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었다. 강을 한쪽에 끼고 있는 전략적인 위치였다. 잘 복원되어 개방하고 있었는데 중세때 성의 중요성, 성을 쌓는 장인들, 기사, 일반 농민의 삶을 영어, 스페인어, 불어로 잘 설명해 놓았다. 성에서 강으로 비밀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여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Templar 기사단 박물관은 스페인어로만 되어 있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에서 나와 Bacilica de la Encina 의 아침 미사에 갔다. 어제 만난 성당 합창단원들이 많이 있었다. 미사후 광장을 걸어가는중 내 배낭에 붙여 있는 American Pilgrims on the Camino 동호회 패치를 알아보는 두 여자를 만났다. 40대로 보이는 이 두 사람은 3년전에 카미노를 걷고 그 다음해에 자원 봉사를 했는데 지금은 이곳에 아주 정착해서 살고 있단다. 너무 살기가 좋다고 한다.
오늘은 Cacabelos까지 가고싶어 5시 이후까지 걸었다. 마을을 여럿 지났는데 처음으로 납골당이 있는 현대식 묘지를 봤다. 카미노에서 묘지는 보통 성당에 붙어 있었는데 이 묘지는 옆에 성당이 보이지 않고 깔끔한 납골당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걷는 길에는 포도밭이 많았다. Camponaraya에서 Cacabelos 로 가는 길은 한적한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택했는데 큰 개 한마리가 돌아 다닌다. 주위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카미노에 개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들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개가 많다고 생각될 정도가 아니었고 대부분의 개가 묶여 있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약간 긴장이 되어 호르라기를 꺼내 물었다. 개는 내가 신기한지 쳐다보며 다가온다. 여차하면 호르라기를 쓸려고 할 때 멀리서 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없이 떠도는 개는 아니었다.
Cacabelos에 들어가기전 사설 알베르게에 전화해 예약했다. 와 보니 hostal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개인방이 아주 싸고 좋은 시설이어서 알베르게 대신 개인방에 들었다. 카미노의 숙박 시설 가격은 일관성이 없어 짐작이 어렵다. 마을의 규모와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수요 공급 법칙이 있는 모양이다. 그반면 저녁 식사값은 거의 일정하다. 바가지는 정말 예외이다.
5월 22일 ( 금: Day 28) Cacabelos - Vega de Valcarce
늦으막하게 일어나 방에서 어제 사온 과일로 아침을 먹고 8시쯤 떠났다. 산을 넘는 길이 아닌 하이웨이를 따라 걷는 길을 택했다. 같은 hostal에서 묵고 비슷한 시간에 나온 젊은 남녀가 앞서 간다. 여자가 길건너 집을 가르키며 무엇이라고 하니 남자가 길을 건너 돌담위로 올라간다. 보니 체리나무에 체리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배낭에서 주머니를 꺼내 따서 담는다. 카미노에서 처음 목격한 무례한 행동이다. 갑자기 아담과 이브가 생각이 났다. 너무 오랬동안 욕심부려 따고 있어 뒤돌아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까지는 카미노에서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 팻말을 본적이 없는데 이런 일이 자주 생기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포도밭을 지나 Villafranca del Bierzo에 도착해 마을 입구에 있는 Iglesia de Santiago 를 보러 갔더니 문이 닫혀있다. 싼티아고까지 갈 수 없는 순례자들이 이 성당의 ‘용서의 문’ 이라 불리는 북쪽문으로 들어가면 싼티아고 성당에서와 똑같은 속죄를 받았다는 ‘작은 싼티아고’ 로 불리는 성당이다. 마을에 들어가 프란씨스코 수도원에 가니 역시 문이 닫혀있다. 중앙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카나다의 Pat 과 Shelly가 나타났다. 한참을 얘기하며 쉰 다음 마을을 나오면서 들린 성당이 열려 있어서 들어 가는데 안에서 일을 마친 여자가 나온다. 닫느냐고 물으니 아니라며 들어 가란다. 성당을 둘러 보고 잠깐 앉아 오늘의 지향을 위해 기도했다. 제대뒤가 보통 보는 것과 좀 달랐다. 아주 간결한 편과 복잡한 편의 중간쯤 된다고 할까? 나오며 보니 그 여자가 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고 미안했다
Villafranca를 나오면 세가지 카미노 길이 있는데 하이웨이를 따라 걷는 편안하고 짧은 길을 택했다. 도로 바로 옆이지만 씨멘트 블락으로 담을 쌓아서 위험하지 않았다. 하이웨이가 강을 따라 나있었기에 계속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카미노의 거의 모든 지역에 물이 풍부한 것이 부러웠다. Trabadelo 마을을 지나는데 공정 임금을 지불하고 친환경적인 물품만 취급한다는 Bar가 있어 들어갔다. 태극기도 걸려 있었다. 파스타가 있느냐고 물으니 이태리 파스타를 원하는지 한국 파스타를 원하는지 묻는다. 한국 파스타가 무엇이냐고 되물으니 라면, 공기밥, 김치를 6유로에 파는 메뉴를 보여준다. 라면은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에서 고를 수 있다. 신라면을 시켜 오랫만에 밥과 김치하고 맛있게 먹었다. 라면을 아주 잘 삶아 내왔다. 아메리카노도 있어 시켰다니 마음에 들게 만들어 주었다. 마침 성당 합창단원 한사람이 들어와 라면 이야기를 해주니 그분도 라면을 시켰다. 어떻게 라면을 팔게 되었는지 아시아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많겠다.
가능한 많이 걸어서 내일 오르는 O’Cebreiro로 가는 언덕길에 가까이 숙소를 잡으려고 Vega de Valcarece 까지 왔다. 마을로 들어 오는데 O’Cebreiro 까지 말을 타고 갈 사람은 연락하라는 광고를 봤다. O’Cebreiro 로 가는 언덕은 카미노중 가장 가파르다. 700m 높이를 4.8km 의 거리로 올라간다. 말은 카미노에서 자전거와 함께 인정된 방법중의 하나다. 알베르게에 들어 얼마 있으니 Pat과 Shelly가 들어선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카미노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누며 한참을 웃었다. Pat은 배낭을 작은 것으로 바꾼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언덕 위를 올라가는 것을 보니 상당히 빨리 걸었다. 몸은 Shelly가 날씬하고 건강해 보이는데 오히려 처지는 것 같다. 낮에 알러지가 심해 약을 먹었는데 밤에 코를 많이 골까봐 신경이 쓰인다. 코에 숨쉬는데 도움이 되는 테입을 붙이지만 나는 내 코고는 소리를 못 들으니 알 수가 없다.
5월 23일 (토: Day 29) Vega de Valcarce - Biduedo
아침 6시부터 주변 사람들이 준비하고 떠나느라 소란스러웠다. 어차피 잠은 더 잘수 없는 상황이라 나도 일어나 짐을 싸고 6시40분에 출발했다. 조금 가니 문을 연 Bar가 보여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보통 7시에 문을 여는데 이집은 부지런하다. 카미노를 걸으며 터득한 것중의 하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다음 마을이 멀지 않고 그곳에 Bar가 있다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더라도 막상 가보면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아침을 먹고 계속 걷는데 깊은 계곡속에 있는 마을인지 마을뒤로 보이는 프리웨이가 아찔하게 높아 보인다. Herrerias에 오니 말을 대여해주는 곳이 있다. 모두 5마리가 보인다. 처음 얼마동안 올라가는 길은 도로를 따라 걷는데 완만한 편이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오르는 길과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냥 도로를 따라 걸었다. 나중에 가이드북을 보니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훨씬 짧다. 가이드북을 꺼내 보는 것이 귀찮아 그냥 직감으로 판단한 것이 잘못이었다.
올라갈수록 전망도 좋고 아래를 내려다 보며 쉬는 맛이 괜찮다. 드디어 카미노의 마지막 자치 지역인 Galicia에 들어섰다. Galicia는 옛날부터 아일랜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살아 Celtic 문화권에 가깝다고 한다. 첫 마을인 O’Cebreiro는 이름부터 벌써 그쪽 이름이다.
해발 1330m에 위치한 인구 50명의 O’Cebreiro는 완전 관광지였다. 버스로 순례하는 단체가 많은지 대형 버스가 여러대 주차되어 있고 음식점과 gift shop이 많았다. Santa Maria de Real 성당에 들어가니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스페인어는 아닌것 같고 대부분이 똑같은 스카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신부 수녀님을 모시고 단체로 여행을 하다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미사를 할 수 있었다. 성당 내부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 많이 다른 것이 Celtic 문화 영향때문일 것 같다. 한쪽에 아마도 카미노 순례자들의 모국어 성경을 모아 놓은 것 같은데 물론 한글 성경도 있었다. 이 성당에는 또 Elias Valinas Sampedro 신부의 묘가 있었다. 이 신부님이 카미노 루트를 복원하고 정리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고 카미노의 방향 표시인 노란 화살표를 고안했다고 한다. 성당 마당에 있는 그의 기념비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경의를 표한다고 한다.
성당에서 나와 이 산간 지역 (Os Ancares) 의 원주민들이 살던 초가집 같은 Palloza를 보았다. Celtic 영향을 받았다는 이 집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사용되었단다. 한 지붕안에 사람과 가축이 함께 거주하는데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어 쓰고 있었다. 모든 재산은 장남에게 물려 주면서 대를 이어 보존했다고 한다. 다른 형제들의 삶이 고단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을을 많이 떠났다고 한다.
짧은 거리지만 오르막 경사가 가파른 곳은 Alto do Polo로 가는 길이었다. 지리산 둘레길의 경사진 언덕에 버금갔다. 힘들여 올라가니 Bar가 기다리고 있다. 알베르게도 하는 이 Bar는 정말 명당에 자리 잡은 것 같다. 쉬면서 광주에서 왔다는 나이든 부부를 만나 이야기 나누었다. 며칠전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서 보았던 것 같다. 아들따라 미네소타에에서 1년 정도 살았다해서 그쪽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미네소타는 내가 미국와서 처음 10년을 살았고 형님 누님이 아직도 사시는 곳이다. 어머니도 돌아 가시기 전까지 그곳에 계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 부부는 배낭을 차로 보내며 걷기 시작하니 더 이상 메고 다니기가 힘든다고 한다.
가능한 조금이라도 더 가려고 Biduedo까지 와서 casa rural에 들었다. 이곳은 조그만 마을이라 알베르기가 없다. 저녁을 먹으러 가니 두 사람이 더 있다. 같이 합석해서 저녁을 했다. 독일 Frankfurt에서 온 두 여자는 오늘 O’Cebreiro 에서 카미노를 시작했는데 윗 마을에 자리가 없어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Susan은 영어를 잘해서 친구 Ipsun에게 통역을 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년전 프랑스 Le Puy에서 시작해 수백 키로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싼티아고까지 갈 예정이란다. 메뉴는 Galicia 지역의 soup인 caldo gallego와 역시 이 지역의 디저트인 싼티아고 타르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맛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집의 caldo galleo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식사 도중에 또 한 여자가 들어와 식사 주문을 하는 것을 Susan이 도와 주던중에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았다. 그 아가씨도 윗마을에 자리가 없어 이집 남편이 차로 데려왔는데 내일 아침 다시 데려다 주기로 했단다. 직장을 그만두고 카미노를 비롯한 유럽여행을 하고 있는데 진작에 카미노를 시작할 것을 괜히 다른 데서 시간을 보냈다며 카미노를 좋아했다. 집주인 눈치가 보일 때까지 독일 여자들과 이야기하다 들어와 잤다.
5월 24일 (일: Day 30) Biduedo – Samons - San Mamed del Camino
7시부터 아침 식사를 판다고 해서 기다렸다 가보니 아직 문이 안 열려 있다. 한국 아가씨도 윗 마을로 가는 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이 지난후 casa rural의 남편이 와서 태우고 떠난후 식당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몇번 불러 대답이 없어 그냥 떠나기로 했다. 숙박시설과 식당을 모두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설 호스탈은 대부분 이런식으로 운영하기때문에 아침을 무료로 제공하는 곳에서는 전날 저녁에 모두 차려 놓고 사람은 없다. 아침을 파는 곳도 주로 셀프 서비스로 주인은 그저 돈만 받는곳이 대부분이다.
오늘은 걷는 맛이 정말 좋았다. 내가 묵었던 마을이 해발 1250m에 있기 때문에 걷는 길의 전망이 일품이었다. 한쪽에는 아침 햇살에 안개가 걷히면서 먼 아래 경치가 보이고 안개낀 곳은 게속 안개가 흩어져 나가고 있었다. 정말 운좋게 처음 몇일 빼고는 아직까지 게속 좋은 날씨를 만나고 있다. 어제 이야기 나눈 독일 여자들에 의하면 독일에서 비행기로 싼티아고에 도착한 날의 날씨가 안 좋았고 싼티아고에서 기차로 Leon으로 가니 역시 날씨가 나빴다고 한다. 나는 나쁜 날씨를 피해가고 있는 셈이다.
Filloval에 내려와 아침을 먹었는데 식당앞 메뉴 선전판에 한글로 시래기국이라고 쓰여있다. 이곳 지방 음식중에 시래기국에 가까운 것이 있는가 생각되어 물어 보니Galicia 지역 soup 인 caldo gallego 를 그렇게 선전하는 것이었다. 아침을 two fried eggs, Canadian bacon, toast & coffee로 했다. 다 괜찮았는데 토스트를 저녁에 주는 빵으로 만들어 실망이었다. 계산서를 보니 토스트까지 따로 값을 받았는데 전반적으로 가격이 꽤 비쌌다. 토스트 값은 좀 아까웠다. 마을을 지나가는 길은 나무가 많이 우거져있는 오솔길인데 한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 운치도 있고 귀도 즐거웠다, 대부분의 마을들이 소를 많이 기르는듯 어디나 소똥이고 여기 저기 소가 많이 보였다. 누렁이 소가 검정 흰색 얼룩소 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기분 좋게 Triacastela까지 와서 Samos를 둘러 가는 길을 택했다. 6.4km를 더 걷지만 그곳에 있는 수도원을 보고 싶었다. Samos로 갈라지는 길을 찾고 있을때 역시 Samos로 가는 길을 찾던 Sharon과 Sasha를 만났다. Sharon은 펜실베니아에서 왔다는데 아들이 내가 사는 동네 옆에 산다며 아들에게 이웃을 만났다고 알려 줘야겠다며 호들갑이다. 친구 Sasha는 브라질에서 왔고 둘은 같이 카미노를 걷고 있다. 걷게된 동기를 이야기하다 빠올로 코옐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코옐로가 토끼라는 뜻이라고 Sasha가 알려 줬다. Samos로 가는 처음 4km는 하이웨이를 따라 걷지만 계속 강이 옆으로 흘러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길은 하이웨이에서 벗어나 강을 따라 걷거나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아침처럼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 대부분이어서 좋았다.
Samos에 도착해 수도원을 가니 정오 미사가 거의 끝나고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 나이 많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힘들게 성당을 나가는 모습이 현재의 수도원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는것 같았다. 이 수도원은 6세기에 시작해서 10세기에 이미 베네딕토 수도원 규칙을 채택했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의 하나인데 아슬아슬하게 연명해가는 것같다. 입구로 가니 마침 1시부터 tour를 시작한단다. 스페인어로 하지만 가이드가 영어를 약간 할 수 있어 조금씩 설명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수도원 내부를 돌며 정원, 벽에 그려진 그림, 수도원의 현황등을 설명해줬다. 옛날에 이용하던 약국도 있었다. 현재 12명의 수도 신부가 있는데 폴란드와 루마니아 신부가 한명씩이고 10명은 스페인 신부란다. 대부분 나이가 많다고 하니 미사때 본 젊은 수사와 성물방에 있던 중년의 신부가 젊은 층에 속하는가보다. 수도원은 Burgos를 나오며 본 클라라 수녀원보다 검소해 보였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중요한 이벤트와 수도원 일상을 찍은 사진을 걸어 놓았는데 20세기 초의 수도원 생활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Tour가 끝난후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Sarria로 향했다. 길은 아침에 걸었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하이웨이를 따라 걸을 때는 강이 옆에 흐르고 하이웨이에서 벗어난 곳은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에 강이 옆으로 흐르는 곳이 많다. Not Bad! 원래의 카미노길에 다시 합쳐진 후 조금 걸어서 San Mamed del Camino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Sarria까지 4km정도 남았는데 시간이 늦어 계속 가는게 무리였다. 사설 알베르게/호스탈에 들어갔는데 아래층 침대가 없다고 해서 방을 쓰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밝고 깨끗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저녁은 채식이었는데 lentil soup도 맛있고 dessert로 나온 싼티아고 타타르도 훌륭했다. LA에서 온 한국 사람이 알베르게에 묵고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젬마씨는 5월2일 쌩장에서 시작했다는데 벌써 이곳에 와 있었다. 무척 빨리 걷는 셈이다. 2년전 은퇴하고 배낭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단다. 스위스에 동생이 살고 있어 그곳을 거점삼아 두달정도 유럽 여행을 할 예정이란다.
- 기사정리및 포스팅 홍보부, 천다니엘 -
Camino de Santiago(싼티아고 순례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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